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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Oct 10. 2022

항해하듯 아이와 밀당하기

아기발걸음 학습법의 개발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로 인해 썼던 <물건은 어느 방향으로 돌리는가?> 편에서 다시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에 <아기발걸음 학습법>을 즉흥적으로 응용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아기발걸음 학습법> 탄생을 낳았던 '아빠 꺼로 글씨 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빠 꺼로 글씨 쓰기

내 노트북을 이용해서 포켓몬 글자를 배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즐겨찾기 해둔 포켓몬 도감을 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아기발걸음 학습법> 편에서 그렸던 이른바 ‘밀당의 선’을 분명하게 각오하고 있었다.

그때의 선 그대로를 다시 활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밀당 속에서 아이가 고집하는 점을 찾고, 아이가 학습쪽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새로운 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각오'다.


한참 지켜보는데 아이가 글자는 쓸 생각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포켓몬을 감상하면서 읽어 달라고만 했다.


새로운 점(點)을 찾는 항해

그러는 중에 하나의 틈새를 찾아 점(點)으로 삼았다. 밀당 중에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글자를 외우게 하는 대신에 패턴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둘째의 동전 새는 장면에서 아이가 나름의 패턴을 빠르게 익힌다는 사실을 알아챘으니 그걸 응용하려는 것이다.


나는 '피죤투'가 나란히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세 글자는 똑같고 앞에 두 글자가 있네. 그러면 무얼까?

포켓몬을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메가'는 진화한 이름으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도 쉽게 맞출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패턴을 포착해서 스스로 답을 했다. 작은 글씨로 아래 표기되고 굵은 글씨가 같으면, 아빠가 앞에 포켓몬을 말했을 때 자신이 뒤의 포켓몬 이름을 말했다.

지금까지 관찰한 결과를 다시 ‘밀당의 선’으로 상상해보았다. 밀당의 방향이 되는 초점도 바뀌었다. 지난 번과 달리 즉흥적 시작인지라 학습 방법을 들고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에 대한 기댓값이 생겼으니 새로운 ’밀당의 선‘ 한 방향은 이걸 쫓는다. 반면 아이는 학습보다는 놀이로 향하는 듯한 흐름을 느낄 수 있어 이를 반대편에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점과 선으로 다시 ‘밀당의 선’을 그려본다. 한글 쓰기라는 지점(點)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점(點)으로 패턴 읽기를 찾아냈다. 대항해시대에서 인도로 가는 짧은 길을 찾다가 신대륙을 발견하던 유럽 탐험가들 처럼 알 수 없지만 유용한 지점을 발견하길 빌면서... (요즘 <오리진>을 읽는 탓에)

풍랑 속에서 항로를 찾아가기

그러나 예상치 못한 풍랑과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형인 큰 아이가 등장하면서 포켓몬과 한글에 대한 지식이 많은 큰 애가 둘째를 리드하는 일이 벌어졌다. 애초의 약속인 한글 쓰기가 아니었지만, 나는 어느 정도 둘의 교류를 방치하고 지켜보았다.

중국에서 조직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배운 인내심과 리듬[1]은 이럴 때 상당한 도움을 준다. <오리진> 8장을 읽고 나서는 아마도 나도 모르게 지난한 시도(모험) 속에서 패턴을 찾는 이미지(혹은 역사)를 떠올려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책에서 보면 무조건 따라해본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자 나는 약속과 다르다고 둘째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말했다. 아이는 아직 쓰고 싶은 글씨를 찾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내 의도를 받아들여 형과 노는 것은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둘째 아이와 둘이서 전과 같이 한글 쓰기를 했다.


이번에는 한 가지 시도를 추가했다. 포켓몬 글자를 하나 쓰고 나서 두 번째 쓴 이름을 쓴 후에는 앞서 쓴 글자를 포켓몬 이미지를 보지 않고 읽어 보라고 했다. 이미지에 집중하여 관람으로 흐르지 않게 글자 자체를 패턴으로 읽게 했다.

밀당은 성공했다. 이후에 나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려고 노력했고, 아이는 제법 잘하는 듯했다. 다만, 지난번처럼 긴 시간 한글 쓰기를 하지는 않았다. 다음 항해(?)에서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주석

[1] 나는 이를 '개취인정'이라 부르곤 한다. 다수의 글에 개취인정이란 표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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