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 꽃차
설중매 꽃차
2024년 2월 중순 SETEC에서 열린 카페&베이커리 페어를 갔다. 그 중 상선다원 부스에서 ‘설중매’ 차를 만났다. 설중매는 눈 내릴 때 피는 매화라는 뜻으로 상선암 스님께서 직접 설중매를 따서 고온에 찐 후 말린 꽃 차였다. 다른 부스에서 차를 많이 시음해 봤지만 설중매 차는 향이 남달랐다. 2만 원이라는 내 기준 다소 높은 금액에도 설중매 꽃 차를 구입했다. 올해엔 커피보다 차를 즐겨보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브이로그에서 꽃 차를 마시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차를 즐기는 모습이 우아하고 성숙해 보였다. 설중매 차를 품에 안고 오면서 다기도 함께 샀어야 했나 앞선 의욕이 설레발을 쳤다.
이상과 현실
딱 두 번 마셨다. 여전히 커피가 좋았다. 묵직하고 쌉쌀한 카페인 가득한 커피에 반에 꽃 차는 너무 심심했다. 향긋함만으로는 부족했다. 차분해지길 원한다면서 차는 너무 단조롭다고 불평하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이렇듯 내가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에는 언제나 큰 구멍이 나있다. 또 다른 예로는 홍매화가 있다. 3월 중순 현재 서울 봉은사에 홍매화가 아름답게 피었다는 걸 보게 되었다. 상상 속의 나는 1년에 딱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홍매화를 찾아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글도 쓴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니 전날 온 안전 안내 문자가 떠오른다. 기온이 전날 대비 10도가량 떨어지니 조심하라는 문자였다. 현실의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뜨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덮고 몸을 지진다. 아, 나란 사람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 발톱의 때만큼도 닿지 못하는구나 자조한다.
조선시대 매화
조선시대에 매화가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엄동설한을 뚫고 꽃을 피우는 매화의 모습이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과 닮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매화를 너무 사랑해서 매화음이라는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매화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듣고 나니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한다. 분명 매화가 필 무렵은 매서운 추위가 가시지 않을 때다. 매화음을 하고선 선비들이 단체로 코를 훌쩍였을 것 같다는 재밌는 상상을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원래는 글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려고 했었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되는 건 매서운 추위를 뚫고 나와 견디는 것만큼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다.’ 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래야지 조선시대 매화와 관련된 단락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커피 원두를 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코우유를 마시던 고등학생 때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대학생 때는 드립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우아해 보였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선물 받은 원두를 방치하여 방향제 행이 되어버린 때와 비교했을 때 현재 원두를 갈고 필터지에 옮겨 담아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내가 바랐던 이상적인 모습과 닮아있다는 사실에 순간 깜짝 놀랐다. 비록 이상과 현실의 구멍을 메우기에 10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길을 걷다가 반 정도 개화한 매화를 마주쳤다. 동글동글한 흰색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을 섣불리 매화라고 단정 짓긴 힘들다. 꽃받침을 살펴본다. 꽃받침이 꽃잎을 향해 있으면 매화고, 반대로 뒤집어 있으면 살구꽃이다. 둘은 매우 흡사해서 얼핏 보면 차이가 나질 않는다. 붉은 꽃받침이 꽃잎을 향해 서 있으니 매화가 맞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벚꽃과 매화의 차이도 모를 때 척척 구분해 내는 사람들을 부러워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 나는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나의 이상에 다가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매화가 알려주었다.
당장은 설중매 꽃 차를 즐겨마시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5년 후에는 창밖에 핀 매화를 바라보며 매화차를 마시고 있진 않을까 상상해 본다. 혹시 모르겠다. 더 나아가서 내가 직접 꽃봉오리를 따서 덖고 있을지도.
2025년 3월. 청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