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도서 선정
독서 모임의 꽃은 사람이라지만 자그마치 이름이 '독서' 모임이므로 어떤 책을 읽는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다. 요즘 작은 책방이나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을 보면 일회성이나 단기간 진행되는 모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읽을 사람보다 '그 책'을 읽고 토론할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열 번 정도 참여해 본 경험이 있다. 만족스러운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때도 물론 있었다. 다만 나의 레이더에 걸렸던 것은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리뷰를 어디까지 나눠야 하는지 기준을 정하기 어려웠다. '저런 이야기도 한다고?'라며 놀라웠던 때도 있었고, '이 정도 토론이면 꽤 괜찮은데?'라며 상당히 흡족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케바케였다. 상수는 책 하나지만, 변수는 예측이 불가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두런두런다락방(이하 두두방)은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는 독서 토론 모임이다. 토론은 개방형이지만 회원은 폐쇄적으로 운영한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선택적 입회가 아니라 매주 수요일에 참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일단 들어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토론의 질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읽을 책을 따지며 이 책은 좋네~ 안 좋네~ 밀당을 하면서 고르고 고른다.
고심을 거듭하며 토론할 도서를 선정하는 기간이 왔다. 두두방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책을 선정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맘때면 나는 회원들에게 단체 공지를 여러 번 띄운다.
책 추천 기간입니다. 함께 읽고 토론하고 싶은 책을 3권씩 추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추천 양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목 / 지은이 / 출판사 / 분류 / 쪽수 / 도서관 보유 수량
이렇게 취합된 책들을 적절하게 섞어 회원들과 함께 정하여 확정 공지를 띄운다. 최종 목록에 들었더라도 간혹 뒤로 밀리거나 탈락하는 책들이 있다. 최근의 예로 보자면 도서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수량이 3권밖에 되지 않아 탈락한 책이 있었다. 소장하고 싶은 책이라면 구입해서 토론을 진행하지만 중지가 모아지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또 너무 두꺼워서 보류된 책도 있다. 400쪽이 넘어가는 책은 2주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는 때로 미뤄진다. 그런 책은 주로 철학이나 사회과학서적인 경우가 많은데 시기 조절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절반씩 읽고 토론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해인가에는 작가별로 시리즈를 구성하여 목록을 작성해 보기도 했고, 또 다른 해에는 분야별로 모아서 읽기도 했었다. 두두방은 여러 분야의 책을 남녀노소가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라 다양한 독서를 지향한다. 그래서 본인이 추천하는 책이 어떤 분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토론할 만한 가를 따지면 되니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활동이 일 년에 두 번씩 있는 셈이다.
우리가 스스로 책을 선정하는 것은 능동적인 독서라는 장점이 있다. 독서 모임에서 읽고 싶은 책을 모으고 거르는 과정에서 글에 대한 취향도 생기고 안목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읽고 싶은 분야도 마음껏 고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다른 이들이 좋다고 소개한 책을 함께 읽을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은 나도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저는 다른 분들이 고른 책을 읽을게요."라는 말을 했던 이가 바로 나다. 그것도 독서모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회원이었을 적 경험이다. 왜 그러냐고 누군가가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답을 했다.
"무슨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마치 나에게 풀 수 없는 수학문제 같았다. 좋은 책을 읽으려고 왔지 고르려고 독서모임에 들어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로 인해 한동안 두두방에서는 그림책을 읽고 토론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으므로 글책보다 그림책이 훨씬 나았다. 독서모임 회원들이 내 덕분에 좋은 그림책을 알게 되셨다면서 칭찬도 가끔 하셨고, 그때마다 나의 어깨는 한 뼘씩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책과 가까워졌고 글도 더 길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회장이랍시고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안내를 하지만 과거 나의 삐약이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회원들을 떠받들지 않을 수 없다. 이분들의 취향과 안목으로 완성되는 토론 도서 목록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노다지이며, 따라서 외부에 유출하고 싶지 않은 일급비밀과 같다. 가끔 도서관 서가에서 뭐 읽지? 고민해 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노다지가 또 있을까! 우리끼리 쉬쉬하며 간직하고 싶은 책 어서 추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