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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Apr 08. 2024

신입회원을 모집합니다

시행착오

독서모임의 여러 요건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회원이다. 사람이 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고, 사람이 모여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회원이 들고 나면서 참여자가 줄어들면 토론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적정 인원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한다. 그중 신입회원을 모집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우리도 단체라고요!


어느 날 회원 모집 공고를 냈고 금세 6명이 등록했다. 아니 다들 공고가 나기만을 기다렸나? 선착순이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한꺼번에 6명이 온다고 하니 깜짝 놀라 서둘러 공고문을 내렸고, 각자에게 토론할 책을 문자로 알려드렸다. 새로운 수요일에 그분들이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가 두런두런 다락방인가요?"

"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맨 처음 들어오신 분과 인사를 나누었고 다음 분들을 눈인사를 하며 차례로 자리를 잡고 앉아 모임을 시작했다. 어색하지만 빼먹을 수 없는 자기소개를 했다. 기존 회원들 먼저, 새로 오신 분은 나중에 했는데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오셨던 그 분이 맨 나중에 소개를 하시면서...

"실은 우리도 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네? 그게 무슨...?"

"우리도 독서 모임이라고요."

"여기 말고 다른 모임이요?"

"네. 우리끼리 독서모임을 하다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서 왔어요."

"6분 모두요?"

"네."

정리하자면 6명이 독서모임을 하던 중에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아 다른 모임과 합치기로 결정했고, 그 상대가 우리였던 것이다.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마땅한 응대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한 회원님이 난색을 표했다.

"그럼 계속 하시지요. 우리 말고."

"아니 같이 하면 안 돼요?"

"안 될 것 같아요."

"왜요?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어려워요. 각자 결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깊이 읽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데 이렇게 단체로 들어와서 모임의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단체라고요."

"그러니까요."

맞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다. 명목상 내가 회장이라고 해도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 입장이라 가끔 언니들의 결단에 의지할 때가 있었는데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 분은 동아리끼리의 병합을 원했고, 우리는 개인회원을 원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무슨 이런 모임이 있냐면서 의자를 찌이익 밀며 일어나 여섯 명이 우르르 나갔다. 우리의 혼도 같이 나갔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었고 우리는 한동안 신입회원 모집을 하지 말고 우리끼리 하자고 결정했다. 세상사는 새옹지마인지라 그 뒤 합류한 신입회원들은 모두 자리를 잘 잡아 아직까지 함께 하고 있다.




논제도 없이!


독서모임의 진행 방법은 다양하다. 보통은 리더가 논제를 발췌하여 별점을 매기고 순서에 따라 토론을 한다. 하지만 두런두런 다락방에서는 논제 토론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리뷰를 차례로 낭독한 후 각자의 의견과 질문과 감상을 나눈다. 리뷰 작성이 의무는 아니지만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그것이 곧 독서록이 되기 때문에 형식만 다를 뿐이지 모두의 리뷰를 듣고 토론을 시작한다.

어느 해인가 신입회원을 모집했는데 딱 한 분이 오셨다. 흰머리를 하나로 묶어 뒤로 넘기셨고 두꺼운 공책을 들고 구석 자리에 앉으셨다. 시작 시간보다 한참이나 일찍 오셨지만 모두가 오면 시작할 때 인사를 하시겠다고 해서 20분 정도를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분이 오셨습니다."

"네, 저는 000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책을 안 읽고 왔어요."

토론 도서를 미리 알려드렸지만 본인 일이 바빠서 못 읽고 왔다고 했다. 우리도 가끔 못 읽을 때가 있으니 괜찮다고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토론을 진행하는 내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여 결국 모임을 마치기 전에 하실 말씀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000님, 토론은 좀 어떠셔요?"

"좀 별로예요."

"네?"

"논제도 없이... 토론하나요?"

"네. 우리는 자유토론을 합니다."

"그건 아니잖아요."

"아. 우리는 논제 없이도 토론이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책을 안 읽으셔서 불편하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논제가 없어서 못마땅하셨나 보다. 그래서 논제가 아닌 자유 토론을 한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라면서 배우라고 하셨다. 아... 이건 뭐지? 오늘 처음 오신 분이 15년 경력의 독서모임을 지적하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알려주겠다고 모르면 배우라고 하는 통에 우리는 넋이 나갔다.

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였다. 무한 루프처럼 똑같았다. 그 분은 바빠서 책을 못 읽으셨다고 했고, 우리는 괜찮으니 함께 토론하자고 했고, 불편하시면 안 하셔도 된다고 했고, 그 분은 어서 토론해보라고 하셨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시면서 이건 독서 토론이 아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할 말이 없었고, 각자의 마음속으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코로나가 너무나 심각해져서 4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모임을 쉬었다. 줌으로 토론을 하기는 했지만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영혼이 탈탈 털렸기 때문에 서로의 안부만을 확인하기에도 바빴다.




새로운 회원이 생기면 그 분으로 인해 모임의 신선한 공기가 도는 것 같다. 새로운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좋고, 흔히 하는 말로 젊은 피를 수혈한다고 표현한다. 고인 물은 지루하고 때론 위험하기까지 하다. 가끔 낯선 만남이 끼어들어야 흥미롭고 풍성한 토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했다. 소중한 교훈을 안고 우리는 또다시 모험을 하려고 한다. 수요일 독서 모임 회원을 모집하기로 결정했을 때 언니오빠 회원님들은 막내 회장의 정신을 무장시켰다.


"회장님. 우리는 준비됐어. 우리만 믿고 진행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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