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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May 06. 2024

막내 회장님

임원 선출

독서모임의 임원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령 한 사람의 주도 하에 결성되었다면 또는 기관에서 주관하는 성격이 강하다면 회원의 대표를 뽑을 필요는 없다. 대표가 하는 일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모임을 진행하는 데 있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주체가 확실하다면 굳이 '누가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구성원들이 모임을 신청할 당시 사전 정보가 충분했으며, 어느 정도는 구조와 형식에 있어 합의가 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풀뿌리 모임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특정 프로그램을 마친 후 후속 모임으로 결성되었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였다가 일정한 형식 안에서 독서를 진행하려고 시도하거나,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었거나, 독서 토론을 위해 자율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면 대표가 꼭 필요하다. 회비가 있다면 그것을 관리할 손길도 역시 있어야 모임이 수월하게 굴러갈 수 있다. 


누군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럼 누가 맡을 것인가?


1. "제가 할게요." 먼저 나서는 분이 있다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2. "누가 하시면 좋을까요?" 후보를 내고 투표를 한다.

3. "이번엔 누구 차례지?" 나이 또는 고유의 순번을 매겨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는다.

4. 막내가 한다.


1번 방법은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예전 두두방에서도 한두 해 있었고, 다른 독서 모임에서 N이 선뜻 대표를 하겠다고 해서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모든 일에서 진취적으로 계획하고 행동했으며 모둠원 하나하나 살뜰하게 챙기는 성정이었다. 어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N은 본인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우리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추진력에 힘입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2번 방법은 거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둘 이상의 후보가 있을 때 더 적당한 사람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예를 들어 A와 B가 회장 후보로 거론되었을 때, A가 "금년에는 다른 일정이 많을 것 같아요." 라면서 B에게 바통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B가 회장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성향 자체가 서로 회장을 하겠다고 덤비는 분들이 아니어서 여러 사람이 나오더라도 별 탈 없이 마무리된다. 오히려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면 문제였지 너도 나도 하겠다고 해서 머리 아팠던 적은 없었다.


3번 방법은 이웃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활용하는 시스템인데 나이 순서로 돌아가면서 회장을 한다고 했다. 중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한 번은 건너뛰고 다음번에 회장을 맡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다. 옆 회장님은 굉장히 쿨하게 "다음번에 2년 하면 돼!"라고 해서 아하! 어쨌든 하긴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4번 방법은 현재 두두방 회장이 나인 이유다.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먼저 제안을 한다. 

"우리 회장 뽑아요~!"

"우리는 원래 막내가 하는 거 아니었어?"

"이번에도 제가 해요?"

"언니, 오빠들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벌써 몇 년째에요?"

"왜? 힘들어?"

"아니 힘든 건 없는데 장기 독재 정권이잖아요."

"우리는 그런 거 좋아해. 껄껄."


모임이 오래되었다는 건 그만큼 시스템이 착착 잘 굴러간다는 말과 같다. 내가 하는 거라고는 상, 하반기 추천도서 제출하시라는 안내와 모임 일지를 쓰는 것이라서 이제 그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N년차 회장이 되었다. 비록 막내이지만 "이거 어떻게 할까요?" 물으면, 바로 해결하고 중지를 모아 주시는 언니 오빠 회원님들 덕분에 두두방이 유지되고 있다.


독서 모임 회장의 깜냥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더 좋다. 글을 읽는 능력과 읽고 싶은 마음이 모여 함께 읽는 즐거움을 알기만 한다면 누가 하든 소중한 토론의 장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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