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오늘은 어떠신가요?
한 동안 귀찮아서(어쩌면 딱히 쓸 것이 없는 나의 하루가 보기 싫어서) 다이어리나 스케줄 기입을 그만둔지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흔히 다꾸라고 불리는 '다이어리 꾸미기'에 딱히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매년 11월이 되면 검색창에 다이어리를 검색해보고는 했다.
요즘은 다이어리도 쉽게 살 만한 가격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점점 비교해 보는 시간도 늘어가면서 어차피 몇 개월 쓰고 그만둘텐데 이번에는 구매하지 말자고 결론을 냈다.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행동은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야! 같은 생각보다 올해 이루고 싶은 일, 작년에 실천하지 못한 것, 항상 쌓여가는 버킷리스트 등등.. 이런 것들을 정리하며 각오를 다지는 의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제 책상 위에 놓여있던 탁상 캘린더에 눈길이 갔다. 9월에서 넘어가지도 않은 채 멈춰있는 달력의 시간을 보니 고작 한 달 전의 나는 그때까지도 방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달력을 집어 11월로 넘겨 그대로 내려놓기 전에 펜을 들고 비어있던 칸을 하나씩 채워보았다.
11일 알바 첫 출근!
13일 브런치북 연재 (매주 월요일)
17일 알바 지원
22일 강의를 1회차 완강하기!
23일 연남동 친구 만나기
굳이 이런 것까지 적을 필요가 있나 싶은 스케줄만 가득해 보이지만 시작하고서 뭐 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사소한 일상도 적어서 다시 세워놓으니 고개를 돌리다 바라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흔들리던 시간이 끝나고 잠시 멈춰섰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시간을 살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드디어 찾아왔구나, 싶은 마음에 남들이 보면 아직도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달력도 나의 눈에는 어느 달력보다 가득 차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일이 즐겁다. 라고 누가 처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몇 개월 전의 나는 이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지도 못해서 일을 시작조차 못하는데 일을 하면서 즐겁다는 감정을 어떻게 느끼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저 말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다.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들처럼 '나는 이 일을 할 때 너무 좋고, 잘할 수 있어서 이 길로 갈거야!' 라고 한 가지 일을 꼽지는 못하겠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지금 와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해, 라고 어린 날의 꿈으로만 넘기던 모든 일들을 지금은 하나씩 하며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반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를 보며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인터넷소설에 빠져 살던 중학생 때는 소설이 써보고 싶었고, 항상 해외에 나가서 일하며 지내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소소하지만 브런치에서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귀엽지 않고 철없던 중학생의 내가 좋아하던 웹소설도 쓰는 중이다. 해외에 가기 위해 열심히 영어 회화를 배우는 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나의 웹소설 표지에 내가 그린 그림을 싣고 싶다.
이렇게 적었는데도 하고 싶은 일이 남았고, 배우고 있는 것이 남았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된다고 혼자 지레짐작해서 시작도 하지 않기보다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사람에게 기회는 언제 어떻게 올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내가 필요한 누군가가 생기지 않겠는가. 오늘이 재밌기 위한 일은 별거 없었다.
그저 오늘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