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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오 Jul 29. 2018

투발루 아이와 석양

[기후변화 WITH YOU]지구촌 휩쓴 '7월의 기후변화 비극'


투발루 아이들이 야자나무를 벗 삼아,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년 8월 3일이었습니다. 남태평양의 아주 작은 섬 투발루에 저는 서 있었습니다. 길쭉하게 뻗은 초승달을 닮은 투발루. 양 쪽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는, 매우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당시 기후변화 취재를 위해 피지와 통가왕국, 투발루 3개국을 현장 방문 취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투발루는 인구 약 1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섬나라입니다. 수도는 푸나푸티. 산호초 섬입니다. 지표면이 해발 2~5m도 안될 정도로 바다와 비슷한 고도입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투발루는 이미 많은 국토가 바닷물에 잠겨 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간다면 2050년에 투발루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투발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당시 우연히 만났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8월 3일 그날도 취재를 모두 마치고 카메라를 든 채 해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오후 5시를 조금 넘은 시간. 세명의 아이들이 모래 해변에서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깔깔깔' 소리 내고 웃고, 아이들 곁으로 파도 소리가 상큼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야자나무를 이용해 그네를 타면서 그 어느 순간과 바꿀 수 없는 한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순간, 남태평양으로 지는 석양이 아이들을 비췄습니다.

아이들이 작아서인지, 지는 태양이 너무 큰 탓인지 모르겠는데 당시 석양빛은 매우 덩치가 컸습니다. 카메라를 계속 누르며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담았습니다. 아마 수백 장 정도 찍은 듯합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나라 투발루가 바다에 잠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자신들이 뛰놀았던 지금 이곳은 그대로 있을까?"

아이들이 뛰어놀던 이곳은 몇십 년이 지나면 바닷속으로 잠길 수도 있습니다. 천난만한 아이들의 모습과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지고 있는 석양이 마냥 기쁘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이육사 시인은 7월을 두고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어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라고 노래했습니다.

내 고향 7월은 백일홍이 곱게 피는 시간이었다. 백일홍 너머 장독대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곳이었다.


며칠 전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엄니! 막내여요!"

"누구라고?"

우리 어머니는 여든이 넘어서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전화기에 대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막내라니까. 엄니! 무지 덥지요?"

어머니는 아들 목소리인 줄 알아 듣더니 이렇게 답합니다.

"야야, 말도 말아라! 내 평생에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아이고야, 이러다 죽겠다 싶다!"

연로하시다 보니 낮에는 마을회관에서 지내십니다. 요즈음 시골 동네는 60이 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살고 있는 마을도 다르지 않습니다. 70이 다 돼신 어르신이 마을회관에서는 막내랍니다. 어머니의 '내 평생에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일기 예보를 보면 지금 어머니가 계시는 곳엔 연일 35도를 웃돈다고 하니 그 더위가 오죽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름에 시골을 찾아가더라도 그늘에만 들어가도 시원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나 봅니다.

"나무 그늘 아래도 덥기는 매 마찬가지라. 더운 바람만 부니 마을회관에서 에어컨 쐬며 안 지내나."

어머니는 에어컨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방안에서 에어컨을 트는 것보다는 나무 그늘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올해는 도저히 못 참겠는 상황이 왔나 봅니다. 좋아하지 않던 에어컨을 쐬면서 한낮을 보낸다고 하시니.

이제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낭만적 계절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그런 달도 아니게 됐습니다. 올해 7월은 전 지구촌에 ‘악몽 같은 날’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를 두고 ‘극심한 날씨’로 표현했습니다. 기록적 고온은 물론 폭염, 가뭄, 재앙적 폭우가 지구촌 북반구에 집중됐습니다. ‘극심한 날씨’는 인류 건강은 물론 농업, 생태계, 인프라 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엘레나 마나엔코바(Elena Manaenkova) WMO 사무차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2018년은 파악된 기록으로 봤을 때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되고 있다. 수많은 국가에서 새로운 기온 기록이 나오고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폭염은 전 지구촌에서 이미 계속돼 온 현상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 영향 때문이다.”

엘레나 사무차장은 “기후변화는 미래 시나리오가 아니다”라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2018년 7월,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날씨’가 급습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은 가뭄과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독일 기상청 분석 자료를 보면 7월 19일부터 평균 기온 이상의 고온과 가뭄이 시작됐습니다. 이 현상은 8월 6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독일 기상청은 “가뭄으로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고 산불 위험과 수확 격감이 예상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도 예외는 아닙니다. 노르웨이 바두포스(Badufoss)의 7월 17일 기온은 33.5도였습니다. 핀란드의 케보(Kevo)는 33.4도를 보였습니다. 이상 고온으로 스웨덴은 7월 중순 50군데에서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7월 24일 산불이 발생해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7월 23일 그리스의 기온은 38도까지 치솟았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도 폭염과 폭우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35도를 웃도는 기록적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순간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더 심각합니다. 일본 기상청 데이터를 보면 7월 15일 전체 927개 중 200개 관측소에서 35도가 넘는 최고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일본 기상청은 8월 2일까지 매우 높은 기온이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도쿄 근처에 있는 쿠마가야는 41.1도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7월 말까지 이상 고온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했습니다. 기상청은 “장마가 평년보다 일찍 끝나면서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시작됐다”며 “중위도 기압계 흐름이 매우 느린 상태에서 뜨거워진 공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당분간 기압계에 큰 변화가 없고 비도 내리기 어려운 조건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 폭염은 7월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8월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기상청은 “8월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 무더운 날이 많겠다”라고 내다봤습니다. 8월 평균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반면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을 것으로 예보했습니다.   

알제리 사하라 사막인 우아르글라(Ouargla)에서는 7월 5일 기온이 무려 51.3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북미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7월 8일 캘리포니아 데스밸리 국립공원 관측소 온도계는 52도를 보여줬습니다. 눈을 의심케 하는 수치입니다. 북미 또한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현재 폭염에 허덕이고 있는 일본은 앞서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8일 사이 폭우가 쏟아져 200명 이상이 숨지고 1만여 가구가 파괴됐습니다.   

WMO는 “폭우와 폭염 등 지금 북반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 현상은 모두 기후변화의 결과물”이라며 “인류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기후변화 영향이 ‘극심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함께 ‘극심한 폭우’에 대한 경도도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극심한 폭우’가 쏟아져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엘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기후변화의 역습,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점점 더 그 강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2018년 7월15일 일본 각 지역의 온도. 35도까지 치솟고 있다.[사진제공=W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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