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5부. 네가 너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어릴 적 엄마가 입버릇처럼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사람이 본 데가 있어야 한다.” 넓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어떤 걸 보고 자라는지가 그 사람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고 철석같이 믿으셨고, 그건 어쩌면 작은 산골 마을에서 자란 본인의 아쉬움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비록 산골에서 태어났지만 엄마는 읍내까지 소문날 정도로 미인에 노래도 잘하고 끼가 있는 데다 머리가 좋았지만 부유하지 않은 집의 7녀 1남 중 둘째인 영향으로 학업보다는 동생 뒷바라지에 청춘을 보냈다. 만약 엄마의 출생지가 경상도 산골짜기가 아니라 서울 한복판이었다면, 8남매 중 둘째가 아니라 외동딸이었다면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엄마는 늘 내가 조금 더 배우길 바라셔서 형편이 여의치 않을 때도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담임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려 무료 급식을 먹고 문제집과 참고서를 받아오기도 했는데, 와중에 수학학원을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원비를 마련해 주었다. 내가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엄마가 나를 위해 단단하게 받치고 버텨 준 기억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헤매고 방황할 만한 여유가 없는 삶은 문신처럼 남아 어린 시절부터 쭉 이어졌나 보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은 대를 이어 나의 아이에게까지 왔다.
눈이 내리지 않는 무더운 지역에 사는 어린이는 스키선수를 꿈꾸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한다.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린이는 직접 배를 만들어 항해하는 미래를 그리기 힘들 것이다. TV를 통해 본다고 그것이 다 나에게 남는 것이 아니고, 결국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직접 얼음판에 올라 서 본 경험, 바다에 발을 담그고 파도를 마주해 본 경험이 있다면 작은 꿈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지금에 와서 대학전공을 결정하던 시절의 내가 안타까워서다. 점수에 맞춰 적당히 과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알고 있는 학과 정보가 너무나 미천했다. 이름만 알고 아예 검토조차 하지 못한 전공들. 철학 문헌정보 국문 건축 등등. 이런 학문을 공부하는 미래를 꿈꿔보는 기회가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아이는 두루뭉술한 꿈이 아니라 세밀한 꿈을 꾸길 바라고, 아이에게 하나의 꿈이 아닌 백개 천 개의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아이에게 세상의 온갖 것을 줄기차게 얘기한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알려주고,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타인의 다양하고 멋진 삶을 들려준다. 치앙마이에서도 매일 세상을 이야기했다.
세상 이야기 1.
Green Tiger House라는 이름의 두 번째 숙소는 비건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서 예약한 곳이었다. 비건 전문식당은 나에게도 생소했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반응이 궁금해서 설렜다. 메뉴판에 있는 음식사진을 신중히 살핀 후 아이는 버거를, 나는 두부요리를 주문했다. 맛있는지 그릇을 싹싹 비운 아이는 내일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겠다며 신이 났다. 그런 아이에게 “이 버거 뭘로 만들었게?” 질문하니,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한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닌가 보지?” 하며 웃는다.
“여기는 비건 식당이야. 그래서 고기를 하나도 안 쓰고 요리를 한대. 근데 말 안 하면 모르겠지 않아? 엄마가 처음 비건에 관심을 가진 건 너도 아는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은 다음이야. 그 책을 읽은 충격으로 한동안 고기를 못 먹었지. 그 이후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김한민 작가가 쓴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야. <사뿐사뿐 따삐르>, 만화책 <STOP!> 읽은 거 기억나지? 그거 쓰신 분이야. 엄마는 고기를 아예 안 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채소를 주로 먹고, 고기를 먹게 되면 고마운 마음으로 남기지 않고 먹으려고 해. 불필요하게 죽는 동물들이 없으면 좋겠어.”
어쩌면 설교 같았을 긴 이야기를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차분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치앙마이의 코끼리 생츄어리와 동물원이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이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 이야기 2.
치앙마이에는 가방하나만 둘러맨 백패커가 많이 보였는데 특별히 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가족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큰 가방을 메고 그 위에 아이들이 올라탄 형태였다. 아이들은 목말을 탄 자세로 아빠와 엄마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엄마, 저 사람들 좀 봐. 엄청 무겁겠지? 근데 손에 뭐가 없으니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애들은 재밌을 것 같아. 우리도 나중에 가방만 매고 여행해 볼까? 근데 저렇게 가방에 짐 넣으면, 짐 싸고 꺼낼 때 어렵지 않을까? 아닌가? 아래쪽에도 따로 지퍼가 있는 그런 구조일까?”
“예전에 우리 가방 하나만 매고 자전거 타고 제주도 여행한 적이 있어. 너는 어려서 바구니 같은데 태워서 자전거 연결해서 달렸는데, 서로 얘기하려고 무전기 차고 달렸는데, 기억나? 너는 무전기로 말하는 게 재밌어서 계속 ‘멈춰라 오버’ 이러지, 나는 자전거 계속 타서 엉덩이가 부서질 것 같이 아프지, 내가 ‘엉덩이 아프니까 멈추라고 하지 마라 오버’ 이렇게 무전하니까 너는 웃기다고 깔깔대고 그랬어. 다음에 아빠랑 둘이 한번 더 다녀와라.”
아이는 큰 가방을 메고 어디로 떠나는 상상을 했을까? 상상 속에 내가 있건 없건 아이가 씩씩하게 다른 땅을 밟고 지금 본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길 바란다.
세상 이야기 3.
아이에게 일주일 간 영어를 가르쳐 준 선생님은 아이가 인연을 맺게 된 첫 번째 외국인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이 태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서 질문을 했단다. “엄마, 선생님은 캘리포니아에서 왔대. 캘리포니아는 미국이래.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이건 안 물어봤어. 근데 어떻게 여기에서 선생님을 하게 되었을까?”
“다음에 직접 여쭤봐. 혹시 여기가 살기 좋아서 머무르는 거 아닐까? 여기는 물가가 저렴하니까 적게 벌어도 여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아? 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엄마는 한국어 선생님 하면 어때? 나는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너는 검도를 가르치거나, 코끼리를 돌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친구들이 보고 싶을 것 같아.”
아이와 현재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를 상상하며 웃었다. 아이에게 ‘너는 뭐든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떠들어댔지만 어쩐지 그 말들은 나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미래에 치앙마이에서 살 수도 있는 것이고, 한국어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아이의 세상을 넓혀주면서 내 세상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애초에 엄마가 된 것 자체로도 내 세상은 두 배만큼은 커지긴 했다.
한국에 돌아와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내가 커피를 만든 인증샷을 보더니 아이의 칭찬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이 정도면 카페 주인들보다 훨씬 잘하는 거 아니야? 너무 멋있고 수준 높은데? 이렇게 잘한 건 처음 봐.(네가 본 적이 없는 거겠지… 아들아) 당장 카페 차려야겠는데? 엄마가 학생들 중에 1등이었지?”
커피를 좋아하고 배워보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아이의 칭찬을 들으니 어쩌면 내가 나중에 카페를 열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수업을 하는 동안 혼자 여유를 부리던 한국인이 운영하는 치앙마이의 카페를 떠올렸다. 그 사장님처럼 나도 언젠가, 어쩌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딘가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 덕분에 내 세상이 조금씩 더 커진다.
아들아, 너도 나도 상상하는 대로 살 수 있어. 우리 더 많이 더 멀리 더 높이 상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