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끼는 충만한 마음

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by 초록테이블

5부. 네가 너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나와 가족이 먹는 음식에 시간을 들이는 일이 나에게 당연하지는 않았다. 일을 하고 돌아와서 우선 아이와 놀아야 하고 빨래나 청소 등은 미룰 수가 없는 것들이라 상대적으로 먹는 것에는 소홀했다. 인터넷 장보기가 거의 우리를 먹여 살렸고, 택배로 한 번씩 올려 보내주시는 시어머니의 밑반찬과 냉동한 국, 찌개들 덕분에 사람같이 먹고 지냈으며, 가끔 배달음식이 도왔다.


퇴사 후 회사 선배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퇴사하니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날 먹을 장을 그날 봐서 신선한 야채를 먹는다고, 지금껏 아이에게 동네 전통시장에서 딱 필요한 재료 몇 개만 사서 음식을 당장 먹을 만큼만 해준 적이 사실 없다고. 장을 봐서 짊어지고 올라오는 게 너무 무거운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고’ 답했다.

당근 오이 감자 버섯 같은 것들을 당장 먹을 한두 개만 사고, 고기를 볶고 양념을 만들어 음식을 한다. 내가 처음부터 만든, 간단하지만 완전한 요리는 나에게도 낯설다. 아이는 힘찬 칭찬을 보낸다.

“처음 한 거 치고 잘했네.”

“지난번 보다 맛있네.”

꼭 칭찬 때문이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가장 고소한 두부를 사다 먹고 새벽에 떼온 물건을 오후가 되기 전에 다 팔아버리는 야채 가게를 들러서 집에 오면, 그것들로 잘 못하지만 뭔가를 시도해 보는, 사실상 매번 새로운 도전인 요리를 하다 보면, 요리를 하는 마음이야말로 '아끼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을 사람을 아끼는 마음, 가족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

배우 하정우가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말한 '걷기와 마찬가지로 요리도 한번 해 보면 일종의 관성이 붙어서 계속하게 된다. 내가 먹는 밥에 나의 시간을 들이는 일은 짐작보다 훨씬 충만한 일이다.'라는 말이 와닿는 경험을 하고 있다.


혹시 누가 비웃으려나 싶지만, 누가 나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물으면 '매일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 삶'이라고 대답했다. 매일 신선한 샐러드를 먹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매일 신선한 야채를 사야 한다. 그리고 배가 부른 음식이 아니라 지극히 몸을 생각한 곁들임 음식이라는 데 포인트가 있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좋은 메뉴라고 할까. 하루의 에너지를 내는 음식을 우선 준비하고 나면 샐러드의 차례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샐러드까지는 아니어도 요즘 매일 채소를 먹고 있다. 당근이나 오이 스틱일지라도 신선한 걸 먹으니까 행복해진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사니까 행복하다.


아이는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아낀다.

아이는 스스로를 잘 칭찬할 줄 안다. 자기의 행동이나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잘 칭찬하고 잘 응원한다.

"나 똑똑인가 봐."

"나 이거 처음 하는데,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아."

"내가 보는 눈이 좀 있지."

"내가 고르는 건 다 괜찮지 않아?"

"내가 꽤 잘하는 편 이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머리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괜찮은 편이지."


자기를 아끼는 마음이 칭찬을 하게 하고, 칭찬하는 마음이 사랑이 되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용기가 되는 것 같다. 아이의 모습 덕분에 나도 요리 초보지만 자신감 있게 음식을 준비하곤 한다. 두부를 구워 놓고 "나 좀 소질 있는 듯"이라고 말하면, 아이는 넉넉한 마음으로 선뜻 엄마의 도전을 응원해 준다.


여행지에서는 자신에게 응원이 될만한 기회가 더 많다. 내가 아이의 성격과 취향을 고려해 의견을 낸 것을 포함해, 아이는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작은 시도들을 잘도 찾아냈다.

똠양꿍도 먹어보고, 무아이타이도 배우고, 외국인 영어선생님과 수업도 해보고, 코끼리 목욕도 시켜보고, 구글지도를 이용해 길을 찾고 식당도 골라보고, 선데이마켓 찡짜이마켓에서 신중하게 쇼핑도 하고......

새로움과 함께 칭찬할 일은 계속 생긴다.


내가 나를 아낀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나를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 나는 어떻게 행복해지는 사람인지 잊지 말고 손에 꼭 쥐고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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