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5부. 네가 너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으로 살아본다는 것을 상상한 적이 있는가? 질문을 바꾸어, 다른 사람으로 살아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TV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인 유명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삶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기에 섣불리 아는 척하는 것에 조심스럽다. 때로는 내가 나도 잘 모르겠다 싶은데, 다른 사람의 삶을 어찌 알 수 있나.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현실에 근접하게 그 사람을 상상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그 사람에 애정을 가져야겠지.
지난해 가족들과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이라는 제목의 예능을 보았다. 72시간 동안, 사전 정보는 전혀 없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고 살아보는 내용인데, 아무래도 방송이다 보니 거의 ‘서프라이즈 모험 리얼리티 쇼’ 같긴 했다. 첫 번째 주인공이었던 배우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살고 있는 루리라는 이름의 남자가 되었는데, 루리의 일상을 온전히 지키고 루리의 삶을 존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루리의 친구들과 가족들, 서로 애정이 충만한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박보검 편이 좋아서 코미디언 박명수 편도 시청했는데, 박명수는 치앙마이에서 쏨땀을 팔고 있는 우티라는 남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상황에 덩그러니 놓였다. 박명수는 새벽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노점을 운영하는 일상을 보내며 계속 ‘힘들다’는 말을 뱉었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 누군가는 당연히 여기며 살아가는 하루를 ‘너 정말 애쓰고 있고 고생이 많아’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위로의 메시지는 박명수가 우티에게 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나에게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왜냐면 묵묵하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사는 우티를 보면서 나는 내가 조금 애틋해졌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 내색하지 않으려 했고, 회사에서 마치 즐거운 일만 많은 양 좋았던 일 위주로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가끔은 속이 썩어 들어간다 싶었지만 굳이 이 힘듦을 나눠가지기는 싫었다.
한 번은 아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는 회사를 재밌어서 다니는 거잖아! 나 보다 회사가 더 좋은 거지?”
그 말을 듣는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혼자 묵묵히 버티는 것이 괜히 서러웠다.
우리가 가기로 한 여행지에서 방송에서 본 우티의 쏨땀을 먹어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행에 대한 기대가 배가 되었다. 예습 차원에서 동네의 태국식당에 가서 쏨땀을 먹어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올드타운의 중심 지역 근처, 왓프라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티의 노점이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아는 사람을 본 듯 반가운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부끄러워 우리 둘은 예의 바르고 간결하게 “Hello” 인사만 하고 주문을 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손질해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의 취향을 살펴 그에 맞추어 요리를 하는 그의 모습에, 그 단정하고 정성스러움에 감동을 받았다. 아이와 나는 손을 꼭 붙잡고 요리하는 그의 손을 눈으로 좇았다. 우리 둘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같이 줄을 서있던 현지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사장님과 같이 사진 찍어드릴까요?”
“네? 그래도 되나요?”
“앞에 서보세요.(우티에게 태국말로 뭐라고 뭐라고 하심)”
우티와 사진도 찍었다며 우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즉석에서 뚝딱 만든 쏨땀을 받아 들고 우리는 당장 먹자며 바로 옆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먹기 시작했다. 정말 놀랐다. 안 그래도 샐러드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흥분될 정도로 신선하고 맛있었고, 아이도 맛있는지 먹는 속도가 나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아이는 하루에 열 번도 먹을 수 있는 맛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의 삶과 노력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애정을 가진 것이 이유였을까. 누군가의 일상이 나에게 울림을 준다는 것이 낯설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혹은 나의 아이에게 감동이 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서로를 보며 서로에 감동받고 서로에 의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내가 너로 살아본다면, 내가 하루동안 아이로 살아본다면 어떨까. 아이의 하루를, 네가 된 나를 그려본다. 초등학생이 된 나는 학교에서 묵묵히 수업을 듣고, 열심히 아이들과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체육시간에 즐겁게 땀을 흘리겠지. 밥을 골고루 먹고 맛있는 음식은 더 받아와 먹겠지. 나는 아이가 매일 하고 있는 것처럼 초등학생의 활동을 충실히 하면서, 아이를 더 이해하고 어쩌면 존경스러운 마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네가 나로 살아본다면 너는 어떨까. 나의 하루를 살면서 엄마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까.
상상은 힘이 있다. 아이의 삶이 고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과거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받고 싶었던 마음을 현재 초등학생인 너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면서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너 덕분에 나를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너도 나의 사랑을 받아서 너를 더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그리고 너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로 인해 너 스스로를 더 멋지게 봐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