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행복하다 답했어
5부. 네가 너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생일이면 늘 설레면서 긴장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올해도 축하를 받을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가까운 이로부터 축하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지난해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연락이 뜸해진, 원래는 12시 땡 하면 축하를 해주고 늦어도 아침 일찍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던 친구로부터 생일이 지나고 나서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올해는 그 축하마저 없었다. 내 생일이라고 내가 연락해서 인사하기도 뭐 하고, 연락이 뜸해진 상황이니 나를 잊고 사나 보다 싶어서 마음이 쭈굴 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생일 따위에는 의연해지려고 노력한다. 겉으로는 원래 잘 챙기지 않는 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올해는 아버지도 내 생일을 잊었다. 자식이 딱 두 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일을 잊었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실망을 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말아야지 다짐하게 된다.
생일 전날 윤가은 감독이 쓴 에세이 <호호호>를 읽고 있었다. ‘나는 내가 축하할 거야’라는 제목의 생일 에피소드를 읽은 터라 더 웃픈 상황이었다. 그 에피소드는 가족들이 윤감독의 생일을 잊은 내용이었고 나에게는 마치 예언처럼 가슴에 남았다.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생각해보면 생일은 정말 대단한 날이다.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내고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굉장한 행운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대 사건이다. (......) 혹 다른 이들이 그 경이와 아름다움을 몰라준대도, 내가 내 시간들을 잘 버티고 살아내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진실만큼은 절대 훼손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도 내가 직접 나서서 내 생일을 축하할 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맞아. 내가 가장 잘 챙겨주면 되지.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거 먹고 내가 가지고 싶은 거 선물해 주면 되지. 올해는 꼭 그렇게 보내야지 생각하게 된 생일이었다.
솔직히 십 년 전부터 나에게는 내 생일보다는 아이의 생일이 더 중요한 이벤트다. 혹시 축하를 받지 못할까 긴장하는 그 기분을 아이는 절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참 전부터 생일 이벤트를 고민한다. 대단하고 뻑적지근하게 챙겨주는 건 아니지만, 맘에 쏙 들만한 선물을 고민하고 평소답지 않은 음식을 한 가지 이상 준비하려고 한다.(물론 외식 포함이다) 작지만 정성을 담으려고 노력한달까.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게 하고 싶다.
몇 년 전 아이가 나에게 요청한 생일 이벤트가 있다. 바로 '서프라이즈'를 해달라는 것.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자기가 눈치채지 못하게 생일을 준비해 달라는 것이다. 뻔한 것에는 감동받지 않는 아이가 까탈스럽다 싶다가도, 나 역시 서프라이즈로 생각하지 못한 이벤트를 받으면 당연히 좋겠다 싶으니 바로 납득이 갔다. 어쨌든 남편과 내가 교대로 아이의 관심을 돌리면서 들키지 않게 생일을 준비한다. 그리고 올해는 아이 스스로도 자기 생일을 준비했다. 바로 여행지 태국에서.
처음에 한 달을 생각했던 치앙마이 여행을 17일 정도로 조정한 건 아이의 생일 영향도 있었다. 생일은 한국에 돌아가서 온 가족이 함께 보내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생일을 보내고 싶다는 말에 서울에 홀로 남게 된 남편은 괜히 찡해졌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아이의 말, “아빠, 나 없는 동안 내 생일 잊지 말고 준비하고 있어.” 곧바로 남편의 감동은 부담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님만해민에서 올드타운으로 걸어가는 길, Samudlanna라는 이름의 문구점을 하나 만났다. 서점이나 문구점은 나에게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라 일단은 들어가자고 아이를 잡아끌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알파문구 같은 대형 문구점으로 별의 별것을 다 팔고 있었다. 태국 초등학생들이 쓸법한 디자인 노트나 색연필, 필통이나 장난감 등을 구경하고 있었다.
"엄마, 내 생일에 필요한 것 좀 미리 사도 될까?"
아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happy birthday라고 쓰인 생일초와 금빛 풍선이었다. 무겁지도 않으니 캐리어에 담아도 괜찮을 것 같단다. 내가 깨지는 물건이나 부피가 큰 것은 잘 사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는 먼저 말한다. 거절을 거절하는 모양새다. 몇천 원짜리 생일초와 풍선을 사들고 나온 아이의 머릿속은 생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엄마, 내 생일 준비하고 있지? 혹시 선물은 뭐 준비했어? 아니야 아니야. 절대 말하지 마.”
혼자 후다닥 말하고는 큭큭 웃는다.
자기 생일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예쁘다. 나는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많이 느끼는 생일을 보내기 바랐는데, 아이는 자기를 더 많이 사랑하는 생일을 준비한다. 아이가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는 만큼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아이로부터 귀한 것을 얻었다.
올해 아이 생일에 나는 부침개와 겉절이에 도전했다. 아이는 “엄마, 처음 한 거 치고 너무 잘했네.”라며 칭찬해 주었다. 평생 요리를 안 해봤지만 아이의 응원에 도전정신이 싹튼다.
나의 생일에는 아이가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처음 끓인 미역국임에도 맛이 딱 좋아서 깜짝 놀랐다. 본인도 놀랐다. 갑자기 요리에 관심이 생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치앙마이의 문구점에서 산 생일축하 풍선은 1월의 아이 생일부터 3월의 내 생일까지 쭉 거실 벽에 걸려있었다. 풍선에 바람이 빠질라치면 아이는 빨대로 후후 다시 불어넣어 빵빵하게 만들었다. 생일 풍선으로 생일의 기분과 태국 여행의 기억을 연장했다.
가장 중요한, 올해 내가 나에게 준 생일선물은 새빨간 카디건이다. 생일날 아이와 긴 산책을 하다가 들어간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역점에서 아이가 골라주었다.
“이 옷 엄마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 이거 사자. 내가 사줄까? 근데 돈을 안 가져왔어. 하하.”
“엄마는 네가 이렇게 엄마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고 엄마 생각해서 산책도 오래 해준 게 너무 행복해.”
“나도 좋아서 하는 거야.”
이어지는 앞으로의 다짐.
앞으로 내 행복은 내가 잘 챙길 것
다른 쓸데없는 것에 애쓰지 않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애쓸 것
내 생일은 내가 제일 많이 축하해 줄 것
남편과 아이에게 더 많이 축하받을 것. 대놓고 축하를 많이 요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