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잠에서 깨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아침밥상이었다. 따끈한 밥과 국, 영양가 넘치는 반찬 대여섯 가지를 차린 밥상.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밥상을 방으로 밀어 넣어 주셨다. 밥상은 우리 세 자매의 학창 시절 알람시계였다. 부스스한 눈으로 밥 한 그릇을 먹었다. 밥이 목으로 잘 안 넘어갔다. 하지만 아침밥상은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배곯지 말라고 엄마가 해주시는 보약이었다. 20여 년을 눈 뜨자마자 먹는 엄마 밥은 습관이 되었다. 아침밥을 안 먹으면 하루가 허전하다. 급식도 없었던 시절 새벽같이 일어나 자식들 밥상을 해주는 게 엄마의 임무였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엄마가 그렇게 했듯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받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정성스럽게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해서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출근 준비로 바쁘지만 종일 다른 사람 손에 맡겨질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아침밥에 더욱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어떻게든 나의 부족한 사랑이 밥으로 보상되길 바랐다. 자는 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배부르게 먹여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남과 동시에 배고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침밥은 간소화됐다. 어째 일할 때보다 대충이다. '삼식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국어사전에 '삼식이'는 '백수로서 집에 칩거하며 세 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설명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 집에 삼식이가 둘이나 있어서 엄마는 힘들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다. 한 끼 정도는 간단히 먹어도 된다며 엄마 임무를 축소했다. 일할 땐 아이들을 종일 못 봐서 안타까운 마음에 잘 몰랐는데 살림에, 육아에 엄마는 지친다. 밥 한 끼쯤이야 빵으로 먹으면 어때? 국을 끓이다 말고 국자를 싱크대에 던지고는 식빵을 토스터에 넣었다. 대충 아침을 때운다. 그래도 된다. ‘외국 사람들은 빵이 밥이니까…….’ 빵을 먹고는 아이가 아침부터 스케치북을 가져온다.
“엄마, 토끼 그려줘, 아빠 그려줘.”
주문이 많다. 연필로 후다닥 그려주고는 내 안의 ‘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도 그림 좋아하는데? 왜 아이들 그림만 그려주고 있어? 나도 그림 그리고 싶어. 토끼, 공주 말고 내가 사랑했던 그림말이야. 그걸 그리라고!’
괜히 아이 스케치북 귀퉁이에 정성 들여 명암을 넣어서 사과를 하나 그렸다. 정밀묘사하듯 꼼꼼하게 선을 그으며 그리고 있는데 옆에서 꼬맹이가 따라 그린다. 그러든지 말든지 드로잉교본에 나오는 그림처럼 과하게 꼼꼼히 그려 완성한다.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창고에 처박혀 있는 10년 전 쓰던 물감이며 파스텔도 꺼내 본다. 아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붓으로 물감을 찍으며 이것도 그려달라 저것도 그려달라 한다. 휙 그려주고는 내가 하고픈 대로 끄적여 본다. 물감으로 그러데이션을 하고 파스텔 가루를 내어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문질러 본다.
그래, 이 느낌이었어. 하얀 도화지에 물감이 스며들며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려내는 느낌. 좋다.
새삼스레 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아침밥은 서양식으로 격식 없게 먹는다. 요리하지 않아 아껴둔 시간에 나의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조잘조잘하면 도화지 하나 던져주며 ‘너도 그려라’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나의 그림을 그리니 아이한테 공주 그려줄 때 느껴보지 못한 마음속 떨림이 있다.어렸을 때부터 끄적이기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가 재미였던 나를 다시 발견한다.아이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과 마주한다. 내 안의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