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런! 너무 늦겠는걸.' 저녁 수유를 30분만 하고 자야 하는데 아기는 계속 젖을 물고 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한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게 엉키고 망가진다. 하루하루가 시간을 쫒아서 달리기 하는 느낌이다. 나 하나만도 버거운데 제멋대로 시간을 어기며 먹고 자는 아기를 보니 속이 터질 것 같다. 밤이 되면 컴컴한 방구석에 앉아 울음을 쏟아내곤 했다. 남편이 퇴근해 와서는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왜 울고 있어? 애가 어디라도 아픈 거야?"
"아니, 애가 아니라 내가 아프다고, 돌아버리겠다고! 낮잠도 2시간 자야 하는데 30분밖에 안 자고! 먹고, 놀고, 자려면 2시간은 자야 하는데 말이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육아는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모든 아기가 책대로 될까? 당연하지, 책대로 되는 아기는 없어'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30년 넘게 계획대로 살아온 나로서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나의 시간 속에 아기를 맞추려 했다. 그럴수록 나의 우울감은 바닥을 쳤다. 문득 출산하기 전 같이 근무하던 부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박 선생님, 내 친구 중에 박 선생님처럼 자기 일 사랑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주변에 도움도 없이 아기를 혼자 키웠어. 아기 낳고 한 달 되었을 때쯤 친정엄마가 딸 집에 놀러 온 거야. 근데 친정엄마가 아기를 잠깐 돌보고 있는 사이에 친구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어. 나도 딸 하나 낳아 키우지만 육아는 정말 만만치 않아. 너무 완벽히 하려고 하지 말고 아기는 대충 키우고 자기 일을 찾아야 해. 박 선생님이 꼼꼼하고 약간 완벽주의라 걱정돼서 그래. 미술과니깐 그림을 그려도 좋고 재봉틀을 돌려도 좋고, 뭐라도 좋아하는 걸 하며 자기 시간을 보내야 해."
부장님은 선배 맘으로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었다. 그때는 ‘뭐야? 이 부장님, 애 낳으러 가는 사람한테 자살한 친구 얘기가 할 소리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린 말이 하나 없다. 생후 2주일도 안 된 아이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첫 예방접종을 하러 보건소에 가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당장에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의 시간을 찾아야겠다. 이대로 지내다간 내가 미쳐버리겠다. 내 시간표에 아기로만 채우지 말자.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밤중 수유로 잠이 부족했지만 절대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기가 자는 시간이 나만의 꿀 같은 자유시간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우연히 지역 맘 카페에서 취미로 만들어 자랑하는 뜨개질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뜨개질은 어떨까? 나도 해야겠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뜨개질을 시작했다. 아기가 밤잠을 자기 시작하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뜨개질을 미친 듯이 했다.
첫 작품은 아기 모자였다. 마음이 힘들어서 애정을 담뿍 못 주는 죄책감에 아기용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색색의 실을 사고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따라 했다. 귀여운 작품이 완성되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마음이 뿌듯했다. 아기 모자를 색깔별로 서너 개 만들고는 괜히 모성애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내 것이 아닌 아기 것만 만드니 이 또한 아기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의 것을 만들어야겠다.
아기용품은 때려치우고 나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눈치 없이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 했지만 무시했다. 나를 위한 컵 받침, 나를 위한 가방, 나를 위한 목도리 등 내 소품을 만드니 조금씩 우울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지역 맘 카페에 자랑 글을 올리면 동네 엄마들이 잘 만들었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칭찬 답글에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뜨개질로 인해서 조금씩 아기에게 너그러워지고 나의 시계에도 여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