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끝에 떠오르는 한 사람, 엄마
그림 같은 풍경의 가을!
요새 매일 아이와 산책하며 결혼 후 3년째 살고 있는 우리 동네의 가을과 단풍을 처음으로 즐겨보는 것 같다. 이렇게 예뻤나, 여기에 이런 은행나무가 있었나, 집 뒤에는 이렇게 단풍나무가 많았나 하는 여러 생각이 든다.
일할 때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단풍조차 볼 여유가 없었는지 정말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청량한 가을날씨에 우리 귀염둥이랑 매일매일 산책할 수 있는 것도, 보는 순간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똑같은 곳을 어제도 찍고 오늘도 찍게 만드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아이가 우리에게 오고 난 이후,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아이의 존재는 지금까지 못 봤던 걸 보게 한다.
남편이랑 같이 길을 걷다가 (지난 회차 브런치로 발행한) 육아는 매일 낙엽을 쓰는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얘기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아파트 단지의 낙엽은 경비아저씨가 쓸어주시는데, 길가에 떨어진 이 낙엽들은 누가 치울까라는 주제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남편이 미국은 자기 소유의 집 앞의 낙엽, 눈 같은 건 본인 땅이 아니라고 해도 사고의 위험을 우려해 그 거리 앞의 집주인이 치운다는 얘기를 해줬다.
생각의 끝에 떠오르는 한 사람, 우리 엄마!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떠오르는 한 사람. 우리 엄마.
어릴 적 나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 층에는 총 다섯 가구가 있었는데, 엄마는 가끔 복도를 청소할 때 우리 집 앞에만 할 수 없다며 복도 전체를 청소하셨다. 빗자루로 쓸고, 호수로 물을 연결해서 물청소까지 하는 꽤 큰 대청소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라면 아예 복도청소를 하지도 않을 것 같지만, 하더라도 우리 층 전체를 할 생각은 못할 것 같다.
그래 엄마는 우리 층에 누가 이사 오면 나를 데리고 먼저 인사를 가고, 우리와 비슷한 또래면 혹시 필요하면 입으라며 우리가 입었던 교복을 건네기도 했던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지.
활발하고, 따뜻했던 그때의 엄마를 기억해.
엄마가 아팠을 때의 모습도 너무 기억이 나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그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봐온 밝고 건강했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