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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작은 선택으로 만드는 "다른 오늘"

by 정린

늘 같은 하루인 줄 알았다


그날도 6시 알람을 듣고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의 오늘"이 올 것을 안다.
하지만 뜻밖의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던 얼굴


오전에 출장길 버스에서 마주친 예정에 없던 반가운 얼굴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팅이 끝난 후, 쿠키를 사들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함께 있던 반가운 얼굴들과 새로운 소식을 전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아, 역시 오길 잘했구나!'
예상치 못했던 흐뭇함을 얻고,
우산도 없이 휘날리는 눈발을 해치며 기차에 다시 올랐다. 숙박 일정이라 짐이 무겁다.



마침내 들어선 그 골목


출장지 부근에 도착해 숨을 고르려고 잠시 카페에 들렀다.
평소 가봐야겠다고 별렀으나, 항상 골목을 한 블록 넘게 들어가야 해서 가지 못했던 곳으로 가본다.
박노해 시인의 "다른 오늘" 사진전이 열리는 곳, 서촌의 "라 카페 갤러리"다.

녹색벽에 우드 테이블이 놓인 카페가 따뜻하다. 2층은 시인의 사진과 글이 전시되어 있다.
조용히 문구와 사진을 응시하자, 건조하고 쪼그라든 나의 뇌와 눈이 휴식을 얻는다.



예정에 없던 소비로 얻은 영감 한 가득


1층 굿즈전시 공간에서 민트색 틴케이스에 들어있는 전시작품 포토카드를 샀다. 예정에 없던 지출!
숙소에 와서 소화도 시킬 겸 깨끗한 침대에 90장을 순서대로 펼쳐보았다. 소장각 맞네!

(제목란 사진 참고하세요)
3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지출로 '지혜와 영감'의 소유자가 됐다.



낯선 길 앞에서


일정을 마치고 숙소 근처로 이동하면서 저녁 먹을 곳을 검색해 봤다. 신기한 곳 발견!
늦은 저녁 시간이라 낯선 골목은 어두웠고, 순간 주저했지만, 용기 내어 본다.

"용기를 내라. 용기는 도끼날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빛난다"라고 방금 본 전시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는가.
어두운 골목길, 가게로 한 발씩 다가가자 2층에 "카페바이칼"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함께 "open"이라는 네온글씨가 보였다.



혼자여도 따뜻했던 저녁


2층에 도착하자 독특한 그림, 소품, 사진들 사이로 갑자기 들른 나그네가 낯설어서 더 반갑다는 듯이 사장님이 반겨준다.
아는 사람들만 오는 곳인데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해하면서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나라들의 소품들도 소개해주고, 사진도 찍으라며 희한한 모자들을 기꺼이 내어준다.
음식값도 요즘 물가 같지 않게 착하다. 부부는 젊은 손님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러시아 문자로 된 메뉴판을 보고 난처해하는 내게, 외국인들 사이, 옆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단골 한국 손님이 메뉴를 추천해 준다.

러시아 메뉴명은 모르지만, 내 눈에 보이는 해석으로는 식전빵, 토마토 스튜, 만두, 레몬홍차티, 맥주로 한 상이 차려졌다.

예상치 못한 환대로 혼밥치고는 긴 시간, 부부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한참 모자란 시간이었지만,
미소 가득한 주인장의 환송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작은 용기로 만든 다른 오늘


몸은 피곤했으나, 조금 걸어도 관심 있던 카페까지 가서 쉬자는 '작은 의지'와
낯선 골목길로 몇 발자국 내디딜 정도의 '용기'만으로 "다른 오늘"이 되었다.

딱 요만큼씩 "다른 오늘"이 쌓이면
내 인생도 예상을 뛰어넘게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마음


관심이 있을지도 모를 분들을 위해 사진을 더해 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대문만 남겨봅니다.

라 카페 갤러리
카페 바이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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