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지난번 공놀이 이후 회장님이 함께 한 첫 번째 공식 훈련이었다. 그 사이에 동네 언니를 한 명 꼬셨고, 언니가 또 다른 언니를 데리고 왔다. 이 날 훈련에 참여한 회원은 모두 7명. 아주 조촐한 시작? 인정한다. 그래도 우리는 전혀 조촐하지 않았다. 7명이 데려온 아이들만 해도 6명! 무려 13명이다. 이 정도면 전혀 꿀리지 않는 인원이다!
공을 발로 찼는지 어디로 찼는지 모를 첫 번째 훈련에서 우리는 무려 두 시간의 운동을 기록하고 말았다. 축구를 계속해오던 동네 오빠들이 축구를 2시간은 한다는 얘기를 할 때 학을 떼고 기겁하며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쉽게 해 버렸던 나를 반성하며, 오늘은 내가 그 두 시간의 축구를 달성하고 말았다. 우리 축구단에 이름이 없었던 때, 아직 매주 수요일마다 주 1회 만나서 공놀이를 하던 그 뜨거운 여름이었다.
이제 나의 목표는 우리 축구단의 회원을 늘리는 것! 우리가 풀코트에서 축구할 것도 아닌데 회원 모집이 그리 중요한가 미적지근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회원이 얼마 없으면 축구장 사용도 어려울 수 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선 회원 모집을 하기 시작하였다. 인원이 얼마 없으면 어딜 가나 서럽구나. 스포츠계에서도. 파워 I의 성격임에도 용기를 내어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람마다 던져본다. ‘같이 축구해 볼래요?’ 나도 못하는데 축구 같이하자는 권유라니. 지금 생각해도 좀 웃긴다. 하지만 나도 잘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축구 잘 몰라.’라고 사양하려던 분에게는 ‘나도 잘 못해. 이제 시작이고 지금 있는 회원분들 다 똑같을걸?’이라며 잘하는 회원님들께는 미안하지만 나로 말미암아 보다 쉽게 마음먹을 수 있도록 축구단 영입 대화를 이어나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절실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라면, 같은 학교 부모님이라면,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면 일단 던져봤다. “같이 축구하실래요?”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나는 ‘홍보팀장’이라는 직함을 부여받았고, 그 이후 더욱더 가열차게 인재 영입에 힘썼다.
그렇게 우리 축구단에 들어오게 된 인물이 지금 총무를 맡고 있는 수정이다. 수정이는 나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그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젊은 엄마를 매의 눈으로 찾고 있던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인물이다. 수정이 남편은 우리 동네 남자축구를 하고 있던 축구인이었는데 운동장 트랙을 뛰러 나갔을 때 만났다. 나는 여성축구 하고 있는데 우리도 저녁에 축구하니까 와이프를 축구단으로 보내라 권유를 하였고(축구 얘기할 때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말 잘 걸음, 낯도 안 가림, 또 다른 자아 발견) 축구를 좋아하는 그 남편은 또 집에 가서 축구해 봐라 권유를 하고 그렇게 우리 축구단에 들어오게 된 우리 축구단의 보물 수정이.
처음부터 우리 축구단의 목표는 엄마들이 축구할 때 아이들과 가족들도 같이 하자! 였는데 아이들도 같이 올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던 것이 분명하다. 보다 많은 엄마들 옆구리를 푹 찔러보자는 의미도 작게는 있었다. 그보다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이었는데 마을과 집이 분산되어 있고 인구밀도가 낮아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아이들도 학교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다시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랑 같이 나오라고 더 말하고 다녔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내 아이가 집에서 공부도 하고 할 일도 물론 하겠지만은 남는 시간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엄마 따라 운동장에 나와서 공을 차거나 운동장을 달리고 새로운 친구와 만나거나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과 건강하게 어울릴 수 있다면 엄마들도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
운동하다 넘어진 것도 처음
여름이다. 그것도 무지 비가 많이 내리던 여름. 비가 오면 축구 약속은 무조건 취소다. 비가 잠시 그쳤을 때 후딱 준비해서 몇 바퀴라도 트랙을 돌고 오던 몇 번의 시간을 보내고 축구하는 날인데 마침 비가 오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으로 풋살화와 물을 챙겨 운동장으로 나가본다. 비가 오면 과감히 재낄지라도 비도 안 오는데 당연히 나가야지! 이게 얼마만의 공놀인데. 과도한 열정을 이미 장착하고 운동장으로 나가보았다. 공놀이야 공 놀이였겠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공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땀난다고 즐거워했겠지. 그렇게 뭔가 업된 기분이었을 테다. 그러다 결국은 넘어져버린 거다. 무릎을 다 쓸고 그것도 영광이라며 사진을 올려두었다. 평생 넘어질 일이 없던 내가 무려 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다는 게 그러고서 무릎을 쓸었다는 게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나 이렇게까지 축구하는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무지개가 떴다' 이야기를 쓰면서 예전 자료를 여기 저기서 찾고 있었는데 은혜가 나의 첫 넘어짐 영상을 찾아주었다. 역시나 공 따라 우다다 다니다가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았지만 공을 밟고 넘어졌다. 내 사랑 동그란 축구공을 즈려밟고 혼자서 데굴 운동장을 굴렀다. 하하)
낯 두껍게 남편에게 우리 축구단 영업을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결국 우리와 함께 공을 차게 된 수정이는 지금 총무를 맡아 무지개의 살림을 알차고 똑 부러지게 꾸려가고 있다. 우리 축구단 안에서 막내였던 기간이 꽤 길었는데 손이 많이 가는 언니들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잘 챙기다가도 경기할 때는 누구보다 열정을 뿜어내는 수정이의 이야기다.
2022년 여름 어느 날 신랑이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를 하러 나갔어요. 거기서 신랑이 태희언니를 처음 만났습니다. 1년 넘게 같은 마을에 살며 인사조차 제대로 나눈 적 없는 태희언니가 여성축구를 권유하고, 신랑은 집에 돌아와 저에게 전하였지만 "내가 무슨 축구야"라며 흘려들었죠. 그렇게 몇 주간, 신랑의 지속적인 강압 아닌 강압으로 마지못해 운동장에 나갔던 첫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아이들이랑 마실처럼 나갔는데 새로운 세상 발견!! 축구한다고 나갔는데 굽 있는 운동화를 신고 갔을 만큼 공이랑은 거리가 멀었던 제가 축구의 재미를 알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트랙을 걸으며 어색하게 인사 나누던 언니들, 구단주님 그리고 개군에서 처음으로 만나본 많은 아이들이었죠. 축구가 재밌기도 했지만 자녀들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에 외지에서 이사 와서 동네에 아는 친구 한 명 없었고, 집에만 있던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가는 그 시간이 행복하고 소중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가족생활 반 이상의 지분을 축구가 차지한 정도입니다. 그만큼 재밌습니다.
2023년에는 총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책임감이라는 것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무지개가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요새는 본업을 잊을 만큼ㅎㅎ) 가끔은 버겁기도 했지만 옆에서 응원해 주시는 언니들이 계셨기에 기쁜 마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회원이 늘어날수록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에선 부상으로 못나오시 분들도 있었지요. 내년에는 모두 회복하여 무지개회원 전체 다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행축해요! 무지개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