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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Jul 11. 2022

텃밭 농사, 못 해 먹겠네요

장마가 텃밭에 미치는 영향

턱없이 부족한 초보 농사꾼


네. 맞습니다. 저 올해 첫 텃밭 농사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고, 실수투성이지만 농작물이 죽지 않을 정도로 겨우 키우고 있습니다. 야외 밭이 아닌 실내에서 키웠다면, 아마 대부분의 농작물을 죽이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엉성함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올해 텃밭 농사는 흙과 햇빛이 좋아서, 농작물이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지만요. 제 부족함을 자연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텃밭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텃밭 농사를 시작한 걸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작은 텃밭 농사는 제가 영위하고 있는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취미입니다. 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역할도 하고, 우리 가족의 시간과 추억을 나누는 공간도 되어줍니다. 더불어 저희 집 식탁 위 밥상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지요. 오늘이 오기 전까지, 흠잡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해 보였습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요.



텃밭 농사,  해 먹겠네요.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아... 텃밭 농사, 못 해 먹겠다.'라는 생각과 텃밭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가졌습니다. 왜 하필 이때 텃밭 농사가 힘들어졌을까 생각해보면, 장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밭에 손수 물을 길어다가 물을 주던 고생을 덜어 마냥 좋아했었는데, 오늘 밭에 가보니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마로 많은 물을 먹고 자란 농작물이, 자라도 지나치게 빨리 자라 버린 거죠. 장마 몇 주 만에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한 텃밭 농작물은, 어색하다 못해 내가 키우던 농작물이 맞나 싶은 정도로 격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충분해 보였던 텃밭 공간이 이제는 비좁다며, 급성장한 농작물이 서로 영토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일 독불장군인 참외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지, 뻗어갈 수 있는 곳은 모두 뻗어가고 있었고, 순하디순해 보이던 고구마 순과 잎들은 아주 떼로 모여서 에버랜드 퍼레이드처럼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참외와 고구마로 뒤덮인 텃밭


그 와중에 옥수수는 키가 2미터는 훌쩍 넘는 키다리의 모습에, 어느새 옥수수수염이 대롱대롱 달린 옥수수를 키워내고 있더군요. 밭을 점령하고 있는 이 세 가지 농작물 때문에, 조금씩 재미로 심었던 다른 농작물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밭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에 심을 때는 이렇게나 크게 성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죠.


 성인 남자 키를 훨씬 웃도는 키의 옥수수



성장을 응원할 마음의 준비


농작물이 조금씩 변화하고, 커나가는 모습을 관찰하던 소소한 재미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고, 앞으로는 수확하는 재미로 텃밭을 가꾸게 될 것 같습니다. 맛있는 참외는 이제 어느 정도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고, 옥수수도 영글고 있으니 말이죠. 고추와 상추, 그리고 방울토마토는 매주 풍족한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있고,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고구마들도 큰 탈 없이 잘 자라서 맛있는 고구마를 원 없이 퍼주겠지요.


항상 풍족하게 베푸는 고추, 상추, 방울 토마토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 제가 느낀 당황스러움의 원인은 농작물이 아닌, 저한테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기르던 작고 귀여운 농작물이 어느덧 크게 성장한 농작물로 변해버렸지만, 저는 아직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지요. 텃밭 농작물 탓을 할 게 아니고, 농작물의 성장 과정의 단계를 제대로 인지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제 탓입니다.


만약 지금은 작고 귀여운 제 아이들이, 나중에 급성장해버린다면 오늘의 당황스러운 감정의 수백 배로 힘이 들겠지요? 저는 과연 그때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오늘은 실패했지만, 제 아이들의 성장은 기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기로 다짐해봅니다. 텃밭에서 인생을 배워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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