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
어떤 감정은 조용히 찾아옵니다.
사라진 것들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슬픔은 그러합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 속에서 문득 스며드는 감정입니다.
오래된 사진 한 장,
익숙했던 장소의 낯선 공기,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오래된 메모지.
그 모든 것들은 사라진 존재를 다시 불러내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흔들어 깨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애도(grief)라고 부릅니다.
애도는 단지 죽음에 대한 반응만이 아닙니다.
관계의 끝, 역할의 변화, 꿈의 포기, 삶에서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낄 때 경험합니다.
슬픔은 종종 예고 없이 찾아오며, 그 감정을 밀어내거나 덮어두려는 반응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방어기제입니다.
하지만 슬픔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외면된 슬픔은 마음속에 고요한 무게로 남아 삶의 리듬을 더디게 하고 무력하게 합니다.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는 행위는
그 슬픔을 마주하고, 함께 걷는 첫걸음입니다.
그리움과 아픔이 뒤섞인 기억을 꺼내어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그 잃어버림 속에서도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감정이 정리와 재통합을 위한 심리적 작업입니다.
슬픔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자기 회복의 중요한 단계이며, 자존감과 삶의 방향성을 회복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사라진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 속에 남아,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다시 빚어내는
재료가 됩니다.
그 기억을 존중하고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
슬픔은 고통이 아니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감정이 됩니다.
[슬픔에 빠진 나를 위해 똑 똑 똑] 조미자 글그림. 핑거. 2023
이 그림책은 슬픔에 잠긴 아이가 혼자 이는 작은 집에서 시작됩니다.
'도망친건 아니야, 혼자 있고 싶으니까'
그 집은 마음의 공간이자 감정의 은신처입니다.
슬픔에 빠진 주인공은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똑똑똑' 두드립니다.
문을 열면, 작은 존재들이 하나씩 들어와 주인공의 방을 조금씩 환하게 바꾸어 갑니다.
그들은 말없이 곁에 머물며,
슬픔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줍니다.
이 책은 슬픔을 밀어내거나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슬픔 속에 머무는 이에게 다가가 그 감정을 함께 견디고,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슬픔을 치유하려는 조급함보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존재해도 괜찮은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기억은 아프지만, 동시에 따스합니다.
그 기억을 존중하는 순간,
슬픔은 고통이 아니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감정이 됩니다.
기억의 상자는 단지 물건을 담는 공간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과 다시 연결되는 마음의 통로입니다.
그 상자를 열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다시 믿는 연습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1. 조용한 공간에서, 내 삶에서 사라진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사람일 수도 있고, 관계나 시간. 혹은 잃어버린 꿈일 수도
있습니다.
2. 그 대상과의 기억 중 따스했던 순간을 종이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