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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1. 2016

학창시절에 공부가 아닌 사랑을 쟁취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다9

키팅과 학생들과의 만남이 맛남이 되면서, 꽉 억눌려 있던 토드는 감정 표현의 화신이 되었고, 아버지의 인형(대리인)으로 살며 한 번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보지 못한 닐은 정열의 화신이 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많은 군상 중 토드와 닐을 살펴봤다면, 녹스를 건너뛰어선 안 된다.  

교학상장의 변화를 살펴보는 이 자리에 마지막으로 초대된 사람은 바로 녹스 오버스트리트다. 그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죽은 시인의 사회』의 후기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 학창 시절의 로맨스를 금기로 여긴다.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판친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

     

녹스는 아버지 친구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래서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그곳에 갔는데 글쎄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첫 사랑인 크리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하이틴 로맨스물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 처음 만나자마자 녹스는 알았다.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란 걸 말이다.



하지만 운명은 두 사람 사이에 장난질을 쳐놓았으니, 크리스는 부모님 친구의 아들인 쳇트와 약혼을 한 사이였다. 시작도 전에 이런 가혹한 운명을 선사한 신에게 “넌 첫 판부터 장난질이냐~”라는 짜증을 낼 법도 하지만, 어찌 할 수가 없다. 이럴 때 누군가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 가냐?’,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로 위로해 주겠지만, 골대가 골키퍼보다 작거나 날이 죽은 도끼라면 얘기는 달라지기에 “헛소리 집어 쳐. 족팡매야!”라고 한 방 날리고 싶다. 아마도 녹스는 첫 만남에서 그런 한계를 몸소 느꼈기에 크리스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가 떠오른다는 거다.



▲ 첫사랑이지만, 금기된 사링이다. 이런 가혹한 운명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상사병에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어느 날 친구들은 키팅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낭만주의자들이 밤에 모여 시를 낭송하는 모임(Dead Poets Society)’에 대해 알게 됐고, 그 말에 동조한 친구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비밀 모임을 만들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도 녹스의 관심은 오로지 크리스에게만 가 있었고, 모임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 키팅 선생의 학창 시절엔 나름 일탈을 하며 그 시절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비밀 동아리 활동이 있었다.



그런데 달튼은 녹스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뻔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녹스에게 비밀 모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며, 그 이유로는 키팅이 얘기한 것을 패러디하여 “(시를 읊으니) 여자들이 황홀했도다”라고 말했다.

아마 녹스가 사랑의 열병을 앓지 않았으면 그런 말을 듣고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에 아주 솔깃한 얘기로 들렸다. 그래서 결국 ‘죽은 시인의 사회’의 멤버가 되기로 한 것이다. 사랑에 눈이 멀면 사람이 단순해지는 법인가, 남자가 원래 단순한 것인가?               



▲ 달튼은 녹스의 편이다. 이런 친구 하나 있다면, 그 인생은 축복 받은 인생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거리보다 먼 마음의 거리

     

‘죽은 시인의 사회’ 일원이 되면서 녹스는 크리스에 대한 사랑을 더욱 더 키워갔다. 초반엔 고이 그 마음을 즈려밟아 없애버릴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이렇게 애만 태우다가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교사들의 경계가 누그러질 때, 자전거를 몰래 타고 나가 그녀를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멀리서 보는 것임에도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단지 그녀 옆엔 언제나 쳇트가 찰떡처럼 붙어 있다는 게 거슬릴 뿐이었다.



▲ 그녀를 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달려 왔지만, 쳇트와 함께 있는 모습은 번뇌를 일으키기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에서 그녀와 자신의 거리감보다도 마음의 거리감은 더욱 더 멀어져갔고, 외로움과 절망감은 그만큼 커져갔다. ‘이대로 이 마음을 간직하는 게 옳을까, 아님 이쯤에서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게 옳을까?’라는 갈등에 여러 밤을 새었다.

달튼은 흔들리는 녹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은 시인의 사회’의 멤버에 들 것을 권유하며 크리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도록 해주었고, 이번에도 그 마음을 거두지 말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에 연습했던 대로 감미로운 멜로디를 섹소폰으로 완벽하게 연주한 것이다. 솔직히 평소의 달튼은 무언가 진지하게 하기보다 장난스럽게 하기에, 이때도 장난처럼 섹소폰을 부는 흉내만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진지하게 연주하니 그 멜로디는 녹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녹스는 연주를 들으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갔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때론 드라마를 보다가, 좋은 음악을 듣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멋진 광경을 보다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뭉클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바로 감춰왔던 감정이 피어오르는 순간인데, 지금 녹스의 상태가 그랬다.



▲ 마음은 늘 있었지만, 현실이 가로막고 있어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달튼의 연주는 녹스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려고 수화기까지 들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겁부터 난다. 이대로 영영 싫어하게 되면 어떨까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결국 전화를 했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듣게 된다. 크리스가 먼저 전화를 걸려고 했다는 사실과 금요일 파티에 자신을 초대하고 싶다는 사실을 말이다.           



▲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모습. 그녀와의 통화는 여태껏 머뭇거린 마음에 크나큰 위로가 됐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다

     

물론 크리스는 녹스만을 초대한 게 아닌, 모든 친구를 초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녹스는 그녀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금요일 저녁의 파티 시간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녹스는 파티장에서 엄청난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녹스는 크리스와 조금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파티장에 들어갔으나 역시나 사람은 너무도 많다. 거기다가 크리스는 쳇트만 찾을 뿐 전혀 자신과 이야기를 하며 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순간 녹스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무지 섭섭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큰 만큼 그게 산산이 무너졌을 때의 아픔은 엄청 컸다. 말 못할 아픔, 그걸 풀기 위해 녹스는 술을 마시며 스스로 다독여야만 했다.



▲ 씁쓸한 마음을 술로 위로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녹스는 알딸딸한 술기운에 쇼파에 앉게 됐는데, 하필 바로 옆에 크리스가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당시에 녹스는 ‘이건 신이 준 기회인가?’라는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그래서 한참이나 크리스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결국 이마에 뽀뽀를 하고 만다. 술기운을 빌렸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진솔한 마음이었다. 물론 이런 행동이 들키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만은, 쳇트의 친구가 그 광경을 목격하는 바람에 그 날 쳇트에게 물씬 두들겨 맞아야 했다.

파티의 마무리는 좋지 않았지만 녹스는 가혹한 운명에 핵펀치를 제대로 날리고 만 것이다. 지금까진 감정을 감추고 멀찍이서 보며 만족했으나, 지금부턴 자기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욱 커져가게 마련이다. 사랑의 화신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됐다.          





      

녹스, 사랑의 화신이 되다 

    

이미 한 번 해본 경험이 있기에, 이제부턴 적극적으로 표현해도 된다. 그래서 녹스는 크리스의 학교에 찾아가 크리스가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시를 읊어주고 꽃을 전해주기도 했다.



▲ 녹스의 일방적인 애정표현에 크리스는 힘들어 한다.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저돌적으로 나오는 녹스가 쳇트에게 맞지나 않을까 크리스는 걱정이 됐나 보다. 그래서 그녀도 용기를 내어 녹스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조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 닐의 공연일이었고, 이미 나머지 친구들은 그 연극을 보러 출발한 뒤였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녹스는 그 순간을 기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크리스에게 마지막 배팅을 걸었다. 연극을 같이 보자고, 그런 이후에도 맘에 들지 않으면 더 이상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런 녹스의 듬직하면서도 과감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완전 남자다잉!’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이쯤 되면 사랑의 화신이 되었다고 평할 만하다.



▲ 자신을 애써 찾아와 말을 전해주는 그녀를 보며, 녹스도 기회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고백해 버렸다.



과연 크리스는 녹스의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황당하긴 했을 텐데, 그렇게 싫은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이렇게 과감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녹스를 보면서, 그게 한순간의 치기가 아닌 진심어린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도 덩달아 흔들렸다. 그래서 결국 허락하게 된다.





그들은 연극을 보는 내내 핑크빛의 감정이 넘실넘실 거린다. 아마도 닐에게 연극의 내용 따윈 ‘개나 줘버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리스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연극이 길면 길수록 좋았다. 그래야만 크리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때 녹스는 머뭇거리긴 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어 크리스의 손을 잡았다. 크리스는 그런 녹스의 행동에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은근히 감싸줬다. 감정과 감정이 흐르고 마음과 마음이 마주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 시기의 사랑은 그렇게 감미롭게 완성되었다.                



▲ 손으로 느껴지던 온기와 찌릿한 감촉. 그것만으로 됐다.




대망의 죽은 시인의 사회마침글, 예고

     

이후에 녹스와 크리스가 결국 연인이 되었는지, 현실의 벽에 막혀 더 이상 어떤 진전도 없었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차후의 얘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녹스는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할 수 있게 됐으며, 표현한 이후의 상황책임질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상황, 어떤 사람과 마주치든 지금처럼 당당히 이겨나갈 것이다. 이게 바로 사랑의 화신이 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쓰다 보니, 후기가 마무리 되지 못하고 또 한 편 늘어지고 말았다. 끝맺는다, 끝맺는다 하면서 무작정 길어지고 있기에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전하며, 다음 편엔 진정한 마무리 글로 끝맺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마침글은 영화에 나타난 교육현장이 얼마나 극화된 현장이며, 이상적인 현장인 세 가지 지점을 짚어볼 것이며, 현실의 교사들이 영화를 보며 주의해야할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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