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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7. 2016

김대중을 추억하다 나를 만나다

‘김대중 자서전’이 나를 읽다 5

문턱을 넘으며 우린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김대중 선생은 네 번의 문턱을 넘으며 대통령이란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었다. 그처럼 나에게도 나만의 문턱들이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세 번의 문턱이 있었던 것 같다.                



▲ 네 번의 문턱을 넘으며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건빵을 있게 한 세 개의 문턱

     

첫 번째 문턱은 2007년에 친구와 몇날 며칠을 기독교에 관한 논쟁을 펼 때였다. 모태신앙으로 받아들인 기독교는 20대 후반까지도 나의 기반이자, 내 삶의 이유였다. 그래서 일요일엔 거의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수요예배나, 토요모임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한 때는 교회에도 잘 따라다니며 이해하려 노력했던 여자친구도 “교회 좀 나가지 않으면 안 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알만 하다. 결국 그 친구와의 뜨거운 논쟁으로 절대자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며 안정을 찾고, 나 자신을 한없는 죄인으로 몰아붙이는 기독교에서 벗어나게 됐으며, 처음으로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문턱은 2009년에 국토종단을 떠났을 때였다. 대학생 때는 학교 공부도 해야 하고, 용돈도 벌어야 하니 어딘가로 떠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졸업한 이후에도 바로 임용시험을 준비하게 되면서 하고 싶은 일들은 ‘임용에 합격한 이후에 하자’라는 마음으로 미루게 됐다. 그땐 합격이란 것이 더 중요했기에, 미루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첫 번째 문턱을 넘으며 ‘천국을 바라보며 현재의 삶을 죄악시하고 금기시하는 태도’에 대해 회의할 수 있었고, 그런 여파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을 상상하며 지금 당장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런 식의 다짐은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반대도 몹시 심했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도 흔들렸다. 하지만 어렵게 맘먹었기 때문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떠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지금-여기’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세 번째 문턱은 2011년에 단재학교에 취직했을 때다. 임용에 5번이나 떨어지며 인생의 불운을 몸소 맛봤고 ‘난 교사가 될 수 없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낙심하고 있을 때, 교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린 것이다. 물론 나의 교육에 대한 이상과 현실은 늘 첨예하게 대립되어, 수많은 갈등이 있었고 ‘난 자질이 안 되나?’하는 회의감으로 그만 둘까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5년 동안 단재학교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교육의 관점을 배우며 주체적인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 단재학교의 문턱은 지평을 넓혀줬다. 그리고 교육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극심한 변화엔 혼란이 뒤따른다 

    

이처럼 나에게도 세 번의 문턱은 생각을 바꾸게 했고, 삶을 변화하게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럴 때마다 변화와 함께 혼란도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면 무료할 수는 있어도 혼란스럽진 않다. 하지만 늘 변화의 한 복판에 있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과 불안이 나를 덮쳐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힘겨움에 한동안 쓰러져 있기도 한다.  

아마도 그 또한 네 번의 문턱을 넘으며 수많은 혼란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런 혼란들을 어떻게 극복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 혼란에 빠질 때마다 그는 어떻게 그걸 이겨나갈 수 있었을까?




혼란 극복법 1 - 정의를 품어라

     

그는 권력의 달콤함이나 일생의 안위만을 원하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릴 때마다 그에겐 너무도 달콤한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면, 일평생 고초를 당하지 않고 편하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다잡고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는 그것을 ‘정의필승’이라 명명했다.           



‘정의필승’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모든 시대에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Ⅱ』 393p) 


         

위의 인용문은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했던 연설문의 일부이다. 후대까지 바라보며 정의는 꼭 이긴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중용』의 저자가 “백 세 뒤의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됨이 없다(百世以俟聖人而不惑 -29장)”고 외치던 강한 자기 확신이 떠오른다. 

그 또한 살아오면서 정의가 불의에 짓밟히고, 기회주의적으로 살 때 떵떵거리며 사는 경우를 봐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 세상의 희망에 대해 절대로 놓지 않았다. 하긴 그랬으니 가택연금을 당하는 수모를 겪을 때도, 죽음의 고비를 몇 번 넘기는 고난에도, 죄가 없음에도 ‘내란음모’를 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구형 받고 감옥에서 지낼 때도 묵묵히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이런 마음가짐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문턱을 넘어야 할 때 좌절하지 않았던 거고, 넘고 나서 혼란스러울 때도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거다. 그에게 문턱은 고비임과 동시에 신념을 강화시키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 동양 철학자들은 자신의 정당함을 후대의 사람이라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도 그런 강단이 보인다.




혼란 극복법 2 -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기

     

‘정의필승’이란 확신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어졌다. 앞선 후기에도 말했다시피 우린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아예 행동하지 않게 되었으며, 행동할 때에도 ‘자기검열’을 통해 나름의 선을 넘지 않게 되었다. 우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이미 현실 속에서 뼈저리게 체험하며, 침묵과 순종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 맞아 아플지라도 언젠가 정의는 이기고, 그에 따라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이기에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Ⅱ』 593p)   



▲ 2002년 대통령 출마 연설에서 노무현은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2008년에 미국산 쇠고기 촛불 집회를 했을 때, 정 맞을까 벌벌 떨며 복지부동하고 있던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죽비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처럼 행동을 하기 전에 수많은 장벽들이 있고, 나를 막아서는 의식의 걸림돌들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장벽을 허물어버릴 수 있고, 걸림돌을 깎아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이 울림이 컸던 것처럼, 그에게도 흔들릴 때마다 갈등이 깊어질 때마다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 2008년의 촛불집회는 연대의 경험이었지만, 실패의 경험이기도 했다.




그를 추억하다가 나를 만나다

     

여기까지가 그에 대한 ‘추억’이며 ‘추모’이다. 그의 삶을 문턱이란 틀로 바라보고 나의 생각을 덧붙였다. 이 추억담이 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추억담이 여기서 끝나선 안 된다. 애초에 그의 삶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듯이 그런 삶의 자세는 우리에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턴 그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여 내가 처한 삶 속에서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의 자취를 더듬으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그 속엔 나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를 만나러 떠난 여행에서 나의 생각과 내가 찾고자 하던 가치를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엔 서로 남남인 듯 각자의 길로 걸어갔지만, 엇나갔던 선이 어느 순간 겹치듯 찾고자 했던 것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넘었던 문턱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 나의 문턱을 넘으려 한다. 그의 말마따나 ‘꿈을 실현해 보기 위해서’다. 우리의 이러한 다짐이 모여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남과 북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러기 이전에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기운을 받아 각자의 삶에서 신나게 풀어내 보자. 







목차     


1.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 사실이 된다 

『김대중 자서전』이 건빵을 읽다     


2. 인간 김대중을 추억하는 법

김대중, 그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신화나 영웅전이 아닌, 인간 김대중에 포커스를 맞추다

첫 번째 문턱, 전쟁에 휩쓸리다

첫 번째 문턱은 시야를 넓혔다

  

3. 남의 큰 상처보다 제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

두 번째 문턱의 맛보기, 교통사고

두 번째 문턱, 죽음의 순간 찾아온 삶에 대한 갈망

두 번째 문턱은 연대감을 안겨줬다

세 번째 문턱, 사형선고를 받다

세 번째 문턱엔 어떤 가르침이 있을까?

   

4. 기회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세 번째 문턱, 작지만 큰 대학 감옥에서 만든 희망

세 번째 문턱은 거짓 희망이 아닌, 참 희망을 이야기하게 하다

자신이 스스로 만든 마지막 문턱

마지막 문턱을 넘어 마침내 꿈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얻다

     

5. 김대중을 추억하다 나를 만나다

건빵을 있게 한 세 개의 문턱

극심한 변화엔 혼란이 뒤따른다

혼란 극복법 1 - 정의를 품어라

혼란 극복법 2 -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기

그를 추억하다가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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