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학생 실학순례 2
무엇을 하든 ‘임용에 합격한 후에 하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임용이 된 후에 할 일 목록’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 영광의 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만 했다.
하지만 첫 임용시험에서 보란 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중등임용 시험의 경쟁률이 높으니, 첫 시험에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용을 보는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첫 시험은 예행연습 삼아서 보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원체 기대도 컸고, 4년 간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생각하니 떨어짐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삶이 언제고 맘처럼 되고, 순탄했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때의 충격은 너무도 컸다. 어찌 보면 그건 임용공부만 하며 1년을 보낼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기인하는 충격인지도 모른다. 집이 좀 넉넉해서 맘 편안하게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은,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용돈은커녕 하루하루 지낼 돈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시험에 떨어졌다는 낙심은 단순히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낙담 정도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실존적인 문제로까지 비약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삶의 극단에 내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온갖 비극을 가슴에 안은 듯, 사시나무처럼 떨며 삶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극단으로 내몰려 아무런 희망조차 찾지 못하던 그 순간에, 가슴 깊은 곳에선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건 솔직히 아이러니다. 맘대로 되어가는 순간에 희망을 느끼거나,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희망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아예 바닥에 내려앉아 있음에도 희망이 어렸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니 말이다. 이건 소위 ‘정신승리’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될 것이다’, ‘열심히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하며 저돌적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거기엔 근거도 없고, 왜 그런 식으로 낙관만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그저 현실의 암울함을 이겨내는 방식으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앞으론 행복할 거야’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여기의 삶’을 부정하며 미래의 어느 순간만을 긍정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관점은 기독교의 사상과 매우 닮아 있다. 기독교에서 현재는 늘 저주의 순간이고,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순간이다. 태어나면서도 예수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에 빚을 졌으니, 사는 동안 그 죄 값을 갚기 위해서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죄인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인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살아있는 순간엔 그런 축복을 절대로 누릴 수는 없고, 죽은 이후 천국에 가야지만 겨우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느껴지는 온갖 불안과 공포, 힘겨움은 일류의 시초인 아담이 저지른 죄로 인한 것이며, 결국 천국에 간 이후에야 온갖 핍박과 저주에서 벗어나 본연의 행복을 누리게 된단다. 나 또한 기독교 사상에 그때까지 심취해 있었기에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으며, 그걸 삶의 기본 모토로 삼고 살아왔다.
그런데 임용에 떨어져 어떤 희망도 없이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순간, 여태껏 ‘지금-여기’를 부정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만큼 공부를 하는 내내 희망에 들떠 살았다기보다 잡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미래의 희망찬 순간을 향해 현재를 희생물로 바치고, 속죄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공부 하는 내내 얼굴빛은 어두웠고, 분위기는 짐짓 무거웠으며, 걸음걸이는 세상의 무게를 한껏 짊어진 양 늘어졌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는 ‘지금-여기’를 살아야겠다는 생각했다. 임용을 준비하며 미뤄놨던 일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주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신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이건 『아저씨』란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인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살아가는 놈에게 죽는다”라는 말과 같은 뉘앙스인 셈이다. 그 대사처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에서 ‘오늘만 보고 살아가는 놈’이 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첫 발걸음은 신문지 광고를 통해 본 ‘실학 순례’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을 보는 순간, 깊은 시름에 빠지고 말았다.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이라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2월에 졸업을 한 나로서는 조건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으니, 그런 제약 조건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미리 대상에 들지 않는다며 포기하기보다, 어떻게든 참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되니 말이다.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때 읽어야 할 책들이 나의 전공(한문교육)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책이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도 내가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유리하다 해도 독후감을 써야 하는 이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평가를 받는 건 아니지만, 독후감을 통해 ‘자격 조건은 되지 않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참가해도 되겠어’라는 평은 받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는지 모른다. 독후감을 보는 순간부터 좋은 인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듯 정성스레 한 자 한 자 써가며 나의 마음을 담았다.
독후감은 제법 맘에 들었다. 여러 날 고민한 생각들이 알알이 잘 박혀 있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느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일 뿐, 정작 심사자들이 보고 판단해야 할 일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며 “참가 기준에는 들지 않지만, 전공과 관련이 깊어 꼭 참석하고 싶으니, 좋은 결과 바라겠습니다”라는 말로 참가의욕을 한껏 어필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물론 독후감을 심혈을 기울여 쓴 만큼,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원칙대로만 처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 때 마침내 ‘2007년 대학생 실학순례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오고야 말았다. 그 메일을 열어보던 순간, 그간의 불안했던, 가슴 졸였던 마음이 일순간에 위로받는 듯 편안해졌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무언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며, 그걸 위해 이렇게 여러 날 가슴 졸였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지금-여기의 삶’을 중시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태도와 관점이 바뀌었던 것이다. 삶이 배반했다고 해서 비극만 어리는 건 아니다. 비극 속에 어찌 보면 여태껏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넘겨버렸던 ‘이순간의 기쁨’이 녹아들어 있기도 하니 말이다. ‘슬픔 속에 감춰진 기쁨’, ‘기쁨 속에 젖어든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만 ‘지금-현재’를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드디어 이제 본격적인 3박 4일간의 실학자들의 자취를 따라 가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과연 나는 실학자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며 삶을 즐길 수 있을까? 기대와 걱정이 한껏 어리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의 행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제 그 변화무쌍한 여행의 속으로 흠뻑 빠져 들어보자.
목차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마음
마재에서 맛본 인생의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