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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29. 2016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007 대학생 실학순례 1 (2007.7.3~7.6)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여러 날을 새었는지도 모른다. 앞날은 불투명했지만 어찌 되었든 대학에 왔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때론 그렇게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정해진 수순대로 살아갈 때가 있다. 하긴 ‘때론’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길만을 걷다 보면, 그게 ‘당연히 가야 할 길’로 보이고, 그 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 영화 [스물]의 한 장면. 인생엔 분명 무수한 갈림길이 있지만, 우린 갈림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길만 보고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들어서서 가고 있는 길이라 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0대엔 맹목적으로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만을 붙잡고 있어도 되지만, 적어도 20대가 되면 그런 공부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엔 ‘스펙쌓기’는 기본이고, 졸업을 할 수 있음에도 ‘졸업예정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위해 졸업을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만큼 사회의 벽은 완고하고, 대학이 사회 진출의 지지대가 되기보다 걸림돌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더욱 더 현실이란 벽을 느끼며 복지부동하고 온갖 불안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생각만큼 사회진출이 쉽지 않다 보니, 졸업까지 무기한 연기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한문교육과는 입학과 동시에 ‘교사’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는 곳이다.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건, 여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 다양한 가능성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로 고착된 생각만을 하게 한다는 건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입학할 때부터 선배들은 “중앙동아리에 들지 말고, 학과 동아리에 들어서 공부를 해야 하고, 웬만하면 민추(민족문화추진회) 수업도 같이 하면 더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은 우리들은 ‘맞아. 1학년 때부터 열심히 해야만 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대학의 ‘큰 배움’이 아닌 목표 위주의 ‘좁디 좁은 배움’만을 추구하게 된다.                



▲ 각 동아리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한 달 정도 서당에 들어가 사서를 공부한다. 그렇게 다들 열심히 살아간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작은 틀에 갇히다

     

길은 명확했고 목적지도 분명했다. 그러니 그 길을 따라 열심히만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길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간 것이다. 

모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목표 아래 열심히 파고들었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어렸고, 누군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뭘까? 하고 싶은 일이 뭘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그런 ‘씨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지 않으니 남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자부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4년(군 시절을 포함하면 7년)을 보내며, 갈고 닦은 실력을 첫 임용시험에 맘껏 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수원에서 시험을 보기에, 군대 동기인 민호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그럼에도 낙방이란 결과를 받아야 했다.



첫 임용은 경기도에서 보게 됐다. 전주에서만 26년을 살아오며 이곳이 너무도 편해졌고, 익숙해졌는데 그에 따라 단조로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좀 더 큰 곳으로 나가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수유+너머’와 접촉하며 좀 더 앎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시험은 나에게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안겨줬다. 열심히 시험 문제를 풀었지만, 무려 10점 차이로 낙방했으니 말이다. 그 때의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중등 임용시험의 경우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나, 장기간 오로지 ‘졸업과 동시에 합격’이란 꿈만을 좇아 대학생활을 했기에 그 낭패감은 미처 말로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신감은 급전직하했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고만 싶더라.                



▲ 첫 임용을 보던 날. 모든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감싸고 도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26년 간 나는 하나의 목표만을 좇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집에 있는 빠꼼이’를 꿈꿔왔던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전혀 묻지 않고, 다양한 경험보다는 그저 주어진 길만을 따라가며 쉽게 쉽게 살아가기만을 바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난관에 부딪히고 나니, 그제야 내가 살아온 삶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하는 낭패감까지 들더라. 솔로몬이 했다던 ‘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하다’는 말이 그 순간 내 심경이었다. 



▲ 아마도 그 순간의 내 얼굴은 이랬을 거다. 희망도 의미도 없던 그 때.



그럼에도 그 때 매우 묘한 경험을 하게 됐다. 크나 큰 시련에 빠진 순간,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새로운 희망이 어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나에게 슬픔을 안겨줬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간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란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공부한다며 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밀쳐내 버린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건 나에게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때 읽던 책이 한비야씨의 책들이었는데, 그 책은 하나 같이 나에게 충격을 줬다. 아래에 인용한 구절이 바로 그 당시에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문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집에 있는 빠꼼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책에서 배운 것, 신문, 방송, 영화에서 수없이 보고 들은 일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온몸으로 겪어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공부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견문록』, 한비야 저, 푸른숲, 2001년, 143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는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무언가 하나를 집중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안에 침잠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일만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거기에만 쏟아 붓고 여태껏 살아왔다.                



▲ 나는 골방철학자가 되길 바랐다.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영글게 되길 바랐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매너리즘에 빠져들었던 게 분명하다. 책은 타자와의 대화임에도 나는 그저 공부만을 위해 읽었을 뿐이다. 그러니 안다는 인식만 확고해져서 은연 중 ‘난 아는 게 많아’라는 생각에 빠져들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가르치려고만 들었던 것이다. 그런 경우 책을 읽으며 ‘앉아서 유목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알량한 지식의 파편에 갇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과 교감을 하거나 인간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개방되기보다, 나 자신의 오감을 닫고 자부심만을 한껏 치켜세운 ‘내가 한 때는 어마어마했다’고 소리치는 소영웅주의에 갇히게 되었다. 

첫 임용에서의 실패는 어찌 보면 나를 전면적으로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건 여태껏 살아온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했고, 다른 삶을 바라게 했다. 바로 그 때 신문지에 난 다산연구소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실학순례’라는 문구가 나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를 열망하고 있던 그 때, 나의 전공에 가까우면서 다양한 경험들까지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건 나를 위해 준비된 거다’는 생각으로 참여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 이 광고를 보는 순간 필이 빡 왔다. '이건 가야만 해!'



하지만 문제는 참여대상이 ‘대학생과 대학원생’이었기에, 나처럼 졸업을 한 사람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마음을 고이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었고, 이 여행만은 꼭 하고 싶었기에,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볼 참이었다. 비록 규정에 따라 안 된다는 말을 들을 지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도전은 해보기로 했다. 

‘실학순례 2편’에선 바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실학캠프의 일정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분명한 건 ‘뜻하는 곳에 길이 있다’는 사실 뿐이다. 



▲ 그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여행을 떠나게 됐다.





목차     


1.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 삶이 배반한 자리에 희망이 어리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3. 모든 첫 만남은 어색하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4. 다산 정약용인생을 말하다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마음

마재에서 맛본 인생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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