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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02. 2016

모든 첫 만남은 어색하다

2007 대학생 실학순례 3

나에게 여행이란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계획되어 있기에 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어도, 내가 원해서 떠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일만 보고 살아가는 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살아가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 나에게 여행이란 이런 광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의 의지로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실학순례는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서 드는 생각은 ‘왜 여태껏 내 의지대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맘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을 뿐, ‘진짜로 떠나보자’는 결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의 문정아 할머니가 남편이 했던 “이탈리아, 로마를 출발해 전 세계를 돌고, 다시 이탈리아 시칠리로 돌아오는 둘만의 세계일주를 하자”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약속을 희망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언젠가 삶이 나아지면 떠날 수 있겠지’하는 생각만 할 뿐, 지금 당장 실현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 할머니는 끊임없이 이런 여행 프로를 보며 "기다려라 시칠리~ 곧 내가 간다"고 주문을 건다.



그러고 보면 ‘미래의 어느 때를 기약하는 삶’은 늘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 당장 할 수도 있는 일임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미루거나 무관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번처럼 우연한 기회를 만나 처음으로 의지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라 할 수 있을 터다. 

더욱이 ‘다산연구소’가 뭐하는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여행을 가는 것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행을 떠난다. 지금까진 알던 사람들과 아는 곳으로 떠난 것이 고작이었는데,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모르는 곳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모르는 상황을 맞이하는 게 두려워서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모르는 건 예측할 수 없기에 수많은 공포를 만든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낯선 세계와 마주쳐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과거엔 두려움에 방점을 찍고 복지부동했다면, 이젠 설렘에 방점을 찍고 과감하게 도전하게 된 것이다. 과연 실학순례를 하며 어떤 사람들과 마주치며, 어떤 역사들과 마주했을까?   



▲  이렇게 거국적인(?) 행사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참석했다.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8시까지 강남 터미널 입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전주에서 5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여행 첫 날부터 그런 식으로 바쁘게 움직이기는 싫어서 그 전날에 올라와 찜질방에서 자기로 했다. 

낯선 곳에서 자기 때문인지, 여행에서 만날 새로운 인연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며 찜질방 천장(에반게리온의 낯선 천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더라. 그렇게 비몽사몽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을 맞이했고 찜질방을 나왔다. 



▲  낯선 천장의 느낌은 2009년에 떠난 국토종단 때 느낄 수 있었지만, 이 땐 그 느낌과는 180도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과 처음 마주쳤을 때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 너무 오래 전 일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 태아는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있을만한 지적 능력은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 때의 느낌을 이 순간 생각으로나마 간접체험을 해보면, 아마도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호곡장好哭場’이란 글에서 어둑컴컴한 뱃속에서만 있던 아기가 넓디넓은 세상을 마주하면 그 광활하고 확 트인 느낌에 감격하여 ‘울어버린다’고 표현하며, 자신이 광활한 요동벌판을 보면서 느낀 감흥이야말로 아이의 첫울음과 같다고 풀어냈다. 

그처럼 나 또한 찜질방에서 나와 햇살이 비쳐오는 세상과 마주했을 때, ‘힘차게 울어제낄만 하다’는 감정이 절로 일어났다. 세상의 모든 게 나를 향해 임박해오는 느낌, 그리고 그런 세상을 거부감 없이 맘껏 받아들이며 한껏 어우러질 수 있는 흥겨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설렘이었다. 왠지 그 순간 이번 여행은 싱그러울 것만 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 거짓말 살짝 보태서, 이 때의 느낌은 강한 햇빛이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강남 터미널 입구에 가보니,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처럼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서 매우 어색한 분위기 속에 쭈뼛쭈뼛 서있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황은 전혀 달랐다. 서로 잘 아는지 아는 체를 하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은 그렇게 서로 아는 체를 했고, 몇몇은 나처럼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제 여행은 시작단계이니 ‘빨리 친해지자’는 조급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3박4일 간의 일정을 함께 하다보면, 언제 그렇게 어색했나 싶게 친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다산의 생가가 있는 마재馬峴로 향한다. 마재는 다산이 자란 곳이자, 다산의 묘지까지 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다산을 기리는 장소로, 다산의 사상을 음미할 수 있는 장소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전주에 사는 내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찌 남양주에 와볼 수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의미보다 우리에겐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을 뿐이다. 아무리 ‘지금은 어색할 수밖에 없으니, 괜찮다’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려 해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아마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나와 같이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감내하며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마재에 버스가 도착하여 내리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어색한 만큼 더 금방 친해진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나만 어색하게 느낀 게 아니라,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마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색한 상황을 정리하고자 인사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근데 신기한 점은 매우 어색한 만큼,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통성명을 하며 이름만 알고 “네~ 잘 알겠습니다”라고 끝나지만, 이땐 긴 여행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함께 나눈 인사는 곧 ‘우리 지금부터 함께 다닙시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때 인사를 나눈 사람들과는 첫 날 일정 내내 함께 다니게 됐다. 

나는 이 때 두 명의 동생들과 인사를 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광주에서 올라온 문수라는 동생과 서울교대에 다니며 투철한 교육자적 신념을 지닌 진철이란 동생이 바로 그들이다. 낯선 곳에 와서 낯선 사람들 속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생기니 언제 그렇게 어색했냐 싶게 우린 형, 동생이란 호칭을 자연스럽게 붙이며 함께 다닐 수 있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마재는 정약용丁若鏞(1762~1836) 형제가 나서 자란 곳이다. 마재는 남한강의 굽이치는 절경 속에 우뚝 튀어나온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형상으로 특이한 모습이다 보니, ‘이곳이야말로 비범한 인물이 나올만한 장소’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이런 해석은 다산이 이미 유명한 사람이기에 결과에 껴 맞춘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런 곳에 살다보면 대자연을 그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며 깊은 심성에 자리하게 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바로 이와 같은 환경이 어린 다산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래서 ‘애절양哀絶陽’과 같은 가슴 절절한 문장을 구사하게 만들게 했다는 것이다. 



▲  우리의 첫 여행지는 다산유적지였다. 서울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지만, 절묘하다.



이제 실학순례는 첫 걸음을 떼었다. 어색하던 사람들과 금방 친해진 것만큼이나 마재에서 느껴지는 다산의 자취에도 절로 눈길이 갔다. 이곳은 다산의 형제들이 자란 곳이자, 다산이 말년에 삶을 정리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관료로서 잘 나가던 생활을 정리하고 유배를 떠나기 전에 이곳에 와서 ‘여유당’이란 당호를 짓게 되는데, 그 당호에 담긴 가슴 절절한 이야기는 30대 후반 다산의 기구한 삶을 재구성하기에 충분하다. 마재의 이야기는 다음 후기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  실학순례의 첫 여행지인 마재에서 다산의 향기를 느껴볼 차례다.




목차     


1.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대학에서 ‘큰 배움’이 아닌, ‘작은 배움’만을 탐하다

작은 배움을 탐하다, 작은 틀에 갇히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되길 원하다

집에 있는 빠꼼이가 아닌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2. 삶이 배반한 자리에 희망이 어리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 서다

삶이 배반한 자리에서 싹튼 ‘지금-여기’ 삶론

실패할지라도, 도전해보다

지금-여기를 축복하는 삶이 만든 기적

     

3. 모든 첫 만남은 어색하다

모르기에 떠나는 여행

‘아기가 처음 만난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느끼다

어색하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마재에서 느낀 다산의 향기

    

4. 다산 정약용인생을 말하다

마재엔 다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여유당, 그기 뭐꼬?

여유당에 스민 다산의 마음

마재에서 맛본 인생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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