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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02. 2017

기꺼이 해보라

건빵의 2016년 정리기 2

드디어 2017년 새해가 밝았다.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이 왔다. 올핸 닭띠의 해로 닭띠인 나에겐 왠지 모를 좋은 기운이 팍팍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해다. 

어느덧 단재학교에서 근무한지도 5년이 훌쩍 흘렀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병아리처럼 삐약대던 시기라 5년이란 시간은 머나먼 안드로메다처럼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벌써 1년’을 넘어선 ‘벌써 5년’이라니, 역시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것은 시간인가 보다.                



▲ 만약 과거를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면, 이처럼 필름처럼 보일 거다.




5년 후엔 단재학교를 나갈 생각으로 근무하라 

    

그러고 보니 첫 해에 한 선생님이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그 선생님은 “앞으로 5년 동안만 있겠다는 생각으로 근무하세요. 5년 후엔 여길 나가서 자신만의 학교를 만든다는 각오로 말이죠”라는 말을 했었다. 이건 거의 ‘지금 당장 붙자’라는 식의 말이 아닌가.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신입이’에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5년 후에 나갈 생각으로’ 근무를 하라니 말이다. 이런 경우 보통은 “적응하기 힘들 텐데 그래도 참고 기다리면 볕 뜰 날이 옵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그 말이 결코 저주의 말이거나, 그냥 장난삼아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나 또한 그 말을 매우 진지하게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에서 중요한 지점은 ‘나가서’가 아닌, ‘자신만의 학교를 만든다’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말을 곱씹어 제대로 해석하고 어느 정도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5년 후의 내 모습엔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 2012년엔 제주도에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왔다. 아~ 옛날이오~




낙숫물이 바위 뚫듯그렇게 매일을 살라 

    

보통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10년 동안 하나의 분야를 정하여 정진해나가고 실전 경험을 쌓다보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정진해나간다는 건 뭘까? 그건 하나에 몰입하고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낙숫물이 바위 뚫는다(水滴穿石)’고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빨리 성과를 내고자 하는 조바심을 억누르는 것이다.  



▲ 낙숫물은 힘이 없다. 그런데 계속 되면 바위도 뚫는다.



2009년에 도보여행을 하며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전남 목포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한 달간의 여정은 묵묵히 해나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줬다.

그저 한 걸음씩 걸어서는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더욱이 목포에서 무안으로 넘어가는 국도 1번길은 정말 그랬다. 저 멀리 언덕빼기가 보인다. 그러니 ‘저기만 넘으면 평탄한 길이 나오겠지’하는 기대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저 너머를 꿈꾸는 마음으로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읊조리며 언덕을 넘어보지만, 그 너머엔 평지가 아닌 또 다른 언덕만이 보일 뿐이다. 몇 번을 그렇게 기대하고, 몇 번을 그렇게 낙담하며 걸었는지 모른다. 그쯤 되면 ‘이렇게 걸어서 과연 목적지에 다다를 순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피어오르고, 인간의 속도를 비웃듯 맹렬히 질주하는 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역시나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 저 언덕을 넘으면 뭔가 평탄한 길이 나올 줄만 알았다.



그렇게 나아가는 듯 정지되어 있는 듯, 똑같은 곳인 듯 다른 곳인 듯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한 걸음을 걷는 것은 어떤 변화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미비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런 한 걸음씩이 쌓이고 쌓이면 어마어마한 거리를 주파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도보여행을 통해 한 걸음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기에, 나는 이걸 ‘한 걸음의 철학’이라 이름 붙였던 것이다. 

5년 동안만 근무할 생각으로 5년을 보내라고 말해준 그 선생님의 얘기야말로 ‘한 걸음의 철학’에 대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첫 해엔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2~3년차가 되면 나름 적응되어 별다른 고민 없이 시간들을 흘러 보내게 된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그렇게 5년을 보냈다 한들 나에게 남는 건 ‘5년 동안 일 열심히 했다’는 자기위안밖에 없다. 그러니 선생님은 그 얘기를 통해 ‘만들고 싶은 학교’를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다양한 공부를 해보길 원했던 것이다. 그건 지금 당장 결과가 나타나는 행동은 아니지만, 그런 미비한 준비들이 쌓이고 쌓이면, 목포에서 고성까지 걸어서 갈 수 있었듯이, 교육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갖춰질 테니 말이다.                



▲ 한 걸음씩 걷다 보니, 목포에서 고성까지 닿을 수 있도록 했다.




기꺼이 배우고기꺼이 해보라

     

2016년은 그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5년차 교사가 한 해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젠 학교에 적응은 완벽히 끝났고, 모든 게 너무도 편해졌다. 아이들과는 더할 나위 없이 때론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됐으며, 학교는 우리 집처럼 익숙하기만 하다. 그러니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으려고 하면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충분히 편하게 있어도 된다. 

막상 5년차 교사가 되어 첫해에 그 선생님이 한 말을 떠올려보니, 그 말이야말로 지금 이순간의 나를 내다보고 한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편해진다는 건 어찌 보면 호기심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관성처럼 맹목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몸은 비대해져 가고, 생각은 알맹이도 없이 삐쩍 말라만 간다. 그러니 움직이기 싫어하게 되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오로지 내 생각만을 옳다고 여기며, 오로지 지금껏 해온 방식만을 고집한다. 그 선생님이 그 때 해준 말은 바로 이렇게 일상이 된 상황을 경계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윌터도 일상에서 반복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로 들어서며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된다.



『대학』이란 책엔, “진실로 하루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한다(苟日新 日日新又日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새롭다는 건, 지금껏 내 생각이 가로막아 하지 않던 일을 기꺼이 한다는 뜻이다. 기꺼이 배우고, 기꺼이 해본다. 과거의 나였다면 감히 해보지 않을 일을 현재의 나는 하고야 만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는 완전히 결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變態)한다는 얘기다.  

몇 달 전에 놀이공원에서 좀비페스티벌이란 걸 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인솔하기 위해 함께 참여했는데,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빼는 사람 없이(한 아이가 처음에 빼긴 했는데, 모두 분장하는 분위기였기에 결국엔 했음) 분장을 하더라. 그때 놀이공원 관계자가 나에게도 분장을 할 거냐고 물으며, “선생님도 웬만하면 해보세요”라고 덧붙였다. 예전의 나였으면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해서 단칼에 거절했을 텐데, 그땐 그러지 않고 심하게 고민을 했다. ‘굳이 할 필요는 없잖아’라는 생각과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생각이 팽팽히 맞서며 세기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생각이 얼마나 치열하게 대결을 하던지,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도 그 순간을 누리기로 했다. 인솔교사로 참여하긴 했지만, 단순히 인솔자로 남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누리고 즐기는 동참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저녁은 뱀파이어 분장을 하고 죄수복을 차려 입고 어둠이 짙게 내린 놀이공원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는 슬픈 전설이 남았다고 한다.       



▲ 인솔자이면서 동참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올해 기꺼이 해본 것 중 하나다.



         

닭띠여 정유년을 누비라 

    

5년이란 시간은 그 선생님의 말처럼 그렇게 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이 그렇게 흘러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고 그건 분명히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앞으로 보낼 5년이란 시간도 그렇게 길거나 멀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정말 그 선생님 말대로 ‘내가 만들고 싶은 학교’에 대해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5년이란 시간동안 배워왔던 것들을 밑바탕으로 삼고, 경험해왔던 것들을 골조로 삼아 만들면 된다. 빨리 끝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보채는 것도 아니니 이 생각에 영글어가도록 하루하루 재미지게 살아가려 한다. 정유년은 닭띠인 나에겐 최고의 해이자, 선물 같은 한 해가 될 것이다. 



▲ 정유년은 나의 해다. 기꺼이 살리라.





목차     


1. 나이 듦이 저주로 여겨지는 시대에 살다

늙는 건 슬픈 것이야

30대를 희망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는

그저 보낸 하루하루를 저주로 느낄 수 있는 힘     


2. 기꺼이 해보라

5년 후엔 단재학교를 나갈 생각으로 근무하라

낙숫물이 바위 뚫듯, 그렇게 매일을 살라

기꺼이 배우고, 기꺼이 해보라

닭띠여 정유년을 누비라


3. 착각이 만든 인생착각이 만들 인생

사람을 만드는 무엇에 대하여

신나게 글쓰기 위해 지구에 왔습니다

착각하라. 두 번 하라

2016년엔 신나게 써 재꼈다

착각이 만든 인생을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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