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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Aug 10. 2017

책엔 고민의 흔적이 스며 있다

독립출판 워크숍 4

올해 학교밖지원센터에서 마련한 교사 연수는 and님이 기획했다. 예전에 그녀는 ‘독립출판 워크숍’을 직접 홍대 짐프리까지 찾아가서 들어보니, 네트워크 학교 교사들과 함께 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획했다고 한다.                



▲ 독립출판 서점 짐프리는 홍대입구역 지하에 있다. 여행객들이 자주 찾아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and님이 출판의 세계로 초대해주다

     

대안학교 교사들은 제도권 학교 교사에 비해 교사 수는 적고 해야 할 일은 많기 때문에 다재다능해야 한다. 각자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기에 그걸 열심히 진행해야 할뿐더러, 학교 사무도 봐야 하고, 학생 관리도 해야 하며, 학부모 상담도 수시로 해야 한다. 그뿐인가, 수시로 여행을 가는 학교의 특성 상 여행 기획도 할 수 있어야 하며, 영화나 책과 같은 매체도 상황에 따라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작품들의 품질이 전문가 수준일 필요는 없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못한다’고 손 사래를 쳐서도 안 된다. 

실제로 내가 단재학교에서 처음으로 왔을 때, 『다르다』라는 학교 잡지 창간호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다. 그 당시에 출판에 대해 관심도 많았고 출판편집자가 되는 것도 꿈이었기에 ‘쌩 초보’임에도 어떻게든 만들 수 있었지만, 설혹 그런 것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해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며 여태까지 배운 건 ‘실패해도 좋고 어설퍼도 좋으니 도전해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안학교의 특성을 알기 때문인지 and님은 ‘책 출판하는 거 그리 어렵지 않아요’라는 마음을 전해주고 자신감을 북돋워주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 [다르다] 창간호의 테마기획을 인디자인으로 편집했던 모습




창조하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엔 크나큰 문제가 있다. 원래는 8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4주로 줄였기 때문이다. 거기엔 각 학교의 상황이나 각 교사들의 역할이 다르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8주 동안 진행되는 장기 프로그램엔 교사들의 신청률도 적을 뿐더러, 막상 신청하더라도 꾸준히 참여하기엔 부담이 크니 말이다. 작년에 ‘트위스트 교육학’이란 강의를 들었던 게 생각난다. 그 강의는 5주간 진행되는 강의였는데, 듣고 싶은 맘에 신청했음에도 다섯 번의 강의를 모두 참석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7시에 강의가 시작되기에 퇴근하고 집에 잠시 들렀다가 나가려고만 하면 왜 그리 몸이 천근만근이던지. 그러다 보니 ‘하루 정도 빠져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 정도였다. 겨우 다섯 번의 강의를 들을 때도 그랬는데 그게 여덟 번이라면, 시작도 하기 전부터 한숨부터 나오고 막막하기만 하다. 



▲ 매주 월요일 7시에 광화문으로 가야 하는 길은 시간이 지날 수록 힘들어졌다.  다섯 번 나오기도 이렇게 힘들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4주로 시간을 절충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부분이 문제라고 말하는 걸까? 그건 다름 아니라 원고 작성과 출판은 시간이 들어간 만큼 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간접체험을 하는 정도라면 4주여도 상관없겠지만, 직접 전 과정을 해보려면 그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원고 작성에도 시간은 무한정 들어가며, 그걸 품질 높게 편집하려면 그것 또한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니 말이다. 

그런데 벌써 두 번의 강의가 끝났고 앞으로 두 번의 강의만으로 출판의 전 과정을 익혀야만 한다. 그건 말이 좋아 마스터지, 그저 ‘이런 과정을 통해 책이 나오는구나’ 어설프게 경험하는 거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벌써 강의의 끝이 보여 아쉬운 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고, 내 책을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끝내야 하니 안타까운 맘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첫 강의를 들을 때부터 이런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강의가 2번 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런 감정이 크게 느껴진다. 뭔가 알 것도 같은데, 관둬야 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맘이 들수록 두 번 남은 강의를 더욱 집중해서 듣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간다고 아쉬워 말고, 할 수 있을 때 맘껏 누리면 된다.                



▲ 오늘부턴 노트북이 꼭 필요하다. 인디자인 활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인디자인은 배치 프로그램

     

저번 주엔 회식을 하며 무려 3시간 30분간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래서인지 한 주 만에 보는데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기만 하더라. 함께 강의를 듣는 교사들과는 동병상련 같은 게 있고, 김진곤 강사님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친근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은 인디자인이란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렇지 않아도 김진곤 강사님은 여러 학원을 다니며 인디자인을 배웠다고 한다. 기본적인 작업부터 좀 더 전문적인 작업까지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우리에겐 딱 두 번의 강의동안 고갱이만 빼서 알려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인디자인은 글을 쓰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글과 사진을 배치하는 프로그램입니다”라고 강조했는데, 그건 인디자인의 성격을 말함과 동시에, ‘지금부턴 자신의 글을 어떻게 배치하여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책을 보면서 책마다 본문이 배열되는 위치도 제각각이었으며, 사진이나 자료가 첨부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제작자의 입장이 아닌 늘 독자의 입장에서만 책을 읽은 터라, 그런 부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갖거나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지금까진 그냥 봐왔지만, 이 안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편집 방향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두 권의 책이 스쳤다. 두 권 다 내용은 충분히 좋은데도 편집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인지 읽을 때 꽤나 불편했기 때문이다. 

2011년에 서현사에서 나온 『불협화음론자 비고츠키 그 첫 번째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치고 비고츠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늘 비고츠키는 삐아제와 비교당하기 일쑤고 단편적인 내용(ZPD나 사회적 구성주의와 같은 것들)으로 ‘무너진 한국 교육을 일으켜 세울 이론을 제시한 사람’ 정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비고츠키는 그런 기대와는 사뭇 다른, 그러면서도 더 깊은 통찰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책이 잘 읽히질 않는다는 것이다. 종이가 반들거려 텍스트에 집중하기가 힘들며, 2도 인쇄(검은 잉크와 빨간 잉크)가 되어 있는데 박동섭 교수가 중간 중간 덧붙이는 글을 빨간 박스 안에 넣어 산만해 보인다. 꼭 잡지를 읽을 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그 당시엔 내용이 좋아서 꾸역꾸역 참고 읽기는 했는데, 그게 참 곤욕스런 일이어서 두 번은 읽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에듀니티에서 새롭게 편집된 책이 나와서 다행이다. 



▲ 그래도 개정판이 잘 나와서 다행이다.



두 번째 책은 통나무 출판사에서 2010년에 나온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라는 책이다. 정경正經으로 인정된 66권은 ‘진리의 글’이라 인정받았지만, 그 외의 책들은 위경僞經으로 낙인 찍혀 늘 멸시와 오욕을 당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도마복음인데, 도올쌤은 바로 이 책을 역주하여 세상에 알린 것이다. 기독교를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마가 전하는 예수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작을 펼치고 하나하나 살펴볼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편집을 잘못했다는 데에 있다. 원래 이 글은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글이어서 한 주에 한 번씩 여행기 형식으로 실렸었다. 그러니 한 글의 신문 한 페이지에 실릴 분량이어야 한다. 도마복음도 성경처럼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한 장일지라도 좀 더 길게 역주한 부분은 2~3편의 글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신문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쉽게 납득이 된다. 그러나 책은 신문과는 다르기 때문에 한 장의 글을 모두 이어 붙여 편집하는 게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는 데 훨씬 좋다. 그런데 왜인지 편집자는 그걸 신문과 같은 실린 방식대로 하나의 장을 여러 번 나누어 편집해버렸다. 그러니 같은 장을 여러 번 읽는 느낌이 들었고, 읽는 내내 그게 매우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 열심히 알려주고 계시는 이진곤 강사님. 그 덕에 책을 다시 보게 됐다.



            

편집엔 고민이 담겨 있다     


이처럼 책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책을 대해 보니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송곳』이란 웹툰에서 나온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명대사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장이 바뀌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나 배치까지 좀 더 다양한 부분이 보이며, 그에 따라 생각할 거리도 찾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 [송곳]은 만화지만 노동교과서라 할 만하다. 이 책에서 송곳처럼 날카롭게 사용한 말을 좀 편안한 방식으로 차용해서 썼다.



이 날 강의는 인디자인을 하나하나 따라해 가면서 기본기를 익혔다. 이미 『다르다』를 만들며 기본기를 익혀놓긴 했지만 주먹구구로 하던 걸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니 좋았고, 타이포그래피 운영에 대한 기본기도 익힐 수 있어서 좋았다. 타이포그래피 운영의 실전팁은 바로 아래에 달아놓겠다.           



타이포그래피 운영 실전팁

1. 국문과 영문을 같이 쓸 경우 영문의 크기에 0.5pt~1pt정도 키운다. 

2. 명조체는 7pt 이하일 경우 잘 안 읽혀지니 그땐 고딕체를 써야 한다. 명조체와 함께 쓸 경우 명조체가 작아보이므로 0.5pt~1pt 정도 크기를 키워서 쓴다. 

3. 8~10pt 정도는 10대 후반~30 성인 / 11~12pt 아동 또는 40대 이상의 성인

4. 각주나 그림을 설명하는 캡션은 본문보다 2pt 작게 써야 한다.     


      

이로써 세 번째 강의마저 끝났다. 세 시간동안 진행된 강의는 순식간에 끝났고 어느덧 마지막 한 강의만을 남겨 놓게 됐다. 역시 뭐든지 거의 끝나갈 땐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일주일 동안 잘 지내다가 다음 주 마지막 강의 시간에 다들 봅시다.’라는 말을 속으로 하며 센터를 나왔다. 



▲ 집에 가는 길에 보는 한강은 언제나 평화롭고 여유 있기만 하다.




목차     


1. 인문의 세계에서 다시 출판을 만나다

자기계발서에서 해답을 구하다

자기개발의 세계에서 나와 인문의 세계로 오라

우연하게 출판편집자를 꿈꾸다

출판편집자의 꿈에서 미끄러지다

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꿈이 다가왔다

‘출판’이 다시 나를 찾아오다     


2.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꺼져가던 열정을 불태우게 되다

낯선 익숙함이 있던 강의실

책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나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7월의 무더위를 뜨거운 열정으로      


3. 책을 만들기 위한 기초공사와 강의 뒷풀이 후기

원고가 바뀌다

책을 만들기 위해선 기초공사가 필요하다

실패할지라도 일을 만들어서 하는 자세

힘내라, 힘내자!     


4. 책엔 고민의 흔적이 스며 있다

and님이 출판의 세계로 초대해주다

창조하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인디자인은 배치 프로그램

책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편집 방향

편집엔 고민이 담겨 있다


5. 살아가는 것그 자체만으로도 공부다

신나게 한바탕 잘 공부했다

박스를 보면 인디자인이 보인다

역시 기능을 알면 더 편하게 편집할 수 있다

7월이 강의와 함께 훌쩍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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