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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Feb 18. 2017

한문전공자가 영화 교사가 되다

영화 교사 이야기 1

단재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지도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처음에 근무할 때만해도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교사로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과 함께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땐 꼭 그와 같은 기대와 걱정이 한 묶음으로 들게 마련인 것 같다. ‘기대’에 방점을 찍으며 나에게 임박해오는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살면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고, ‘걱정’에 방점을 찍으며 나에게 닥쳐오는 삶을 버거워할 경우엔 ‘삶이 한 순간도 편할 수가 없구나’라는 말로 저주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 당시엔 어느 것에 방점을 찍고 삶에 직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벌써 5년이나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삶은 한 순간도 내 맘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저주이거나 고통의 나날은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니,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고, 그것대로 나름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엔 동섭쌤의 『트위스트 교육학』과 『아마추어 사회학』이란 강의를 연달아 들었었다. 그 강의는 지금껏 당연시해온 것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새로운 생각이 샘솟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단연 맘에 든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사후적 지성’이라는 말이었는데, 그건 계획적으로, 사전적으로 이미 안전하고 좋다고 판명된 것만을 하려는 나를 깨부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모든 건 결코 사전적으로 정의내린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전에 이미 알 수 있는 건 ‘뻔하디 뻔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저 삶이 임박해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면 되고, 그런 흐름들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면 된다. 그런 후에야 삶을 되돌아보며, ‘사후적’으로 정의내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 둔촌동 단재학교 영화팀 방의 모습. 영화 후기를 벽에 게시해놨다.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사람이 영화팀을 맡다

     

사후적으로 단재학교에서 지낸 5년을 되돌아보면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무엇 하나 쉽지도 않았지만 그런 만큼 값진 선물과도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의 선물은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영화 교사’였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영화는 그저 ‘시간이 날 때 즐기는 호사취미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간은 영화를 자주 볼 수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란 생각만 있었기 때문에 자주 접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나의 전공은 ‘한문교육’으로 지금껏 ‘한문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재밌게 전해주며 가르칠까?’만을 고민했으니,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화의 영자로 모르는 내가 ‘영화팀을 이끄는 교사’가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단재학교의 교육철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교사는 사범대를 졸업하여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그만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건 한 치도 어색하지 않은 말이다. 그래서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가 교육학의 여러 과목을 배우며 교육적인 마인드를 다지고, 전공과목을 익히며 ‘교육과 전공을 어떻게 매칭하여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교과목이 되도록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교단에 설 때 학생들에게도 의미 있는 교사가 되며, 교사 스스로도 전문성 있는 교사가 된다고 본 것이다. 



▲ 한문을 전공하며 한문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사람이 영화로 수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교사의 전문성이나 지식이 오히려 장벽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학생을 대하기 전부터 ‘학생은 이러이러하다’는 고정관념이나 지식이 있어서, 오히려 학생을 제대로 보기 전부터 편견으로 대하게 되며, 지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학생들을 ‘너희들은 아무 것도 모르니, 많이 알고 있는 나를 무조건 따르라’는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교사상은 산업화 시대엔 먹히는 교사상이었다. 교사가 전지전능한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서서 정해진 지식들을 나열하여 가르쳐주고 그것만을 맹목적으로 암기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하나의 정해진 길만 있는 것은 아니며, 지식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욱 급변할 수밖에 없어 하나의 것만을 맹목적으로 가르치는 행위는 오히려 아이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학교에서 접하는 상황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하나의 정해진 길만 있는 것은 아니며, 지식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럴 때 교사에게 ‘학교에서 배운 내용, 그것들을 모두 지우고 상황 자체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다시 재구성하라’고 요구된다. 그건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모두 지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그 마음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절대적이지 않다면 현장에서 아이들과 만나며 충분히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전혀 다른 생각으로 전환도 할 수 있어야 된다. 만약 단재학교에 아이들과 한문을 같이 공부하는 형태로 교사를 했다면, 나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교육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그것으로 무작정 이끌어가려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한 번도 고민해보지도 않았고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는 ‘영화’라는 과목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니, 나 스스로가 ‘아는 게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심정으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저절로 맞추고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만남이 시작되고, 관계가 얽힌다. 그리고 관계가 얽히니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들을 함께 맞이하며 나도 아이들도 함께 성장해 나간다. 

어찌 보면 5년이란 시간은 이렇게 아는 것 하나도 없이, 배운 것들이 모두 무색해지는 가운데 좌충우돌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라 표현한 것이다.                



▲ [덕혜옹주]를 아이들과 함께 보고 있다.




직업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닌정해지는 것

     

그렇게 5년을 보냈다. 그러니 이제 누군가에게 “단재학교에서 영화팀을 맡고 있습니다”라고 소개를 한다. 어느덧 영화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5년 전만해도 나를 이렇게 소개하게 될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고, 꿈조차 꾸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이니 작년 9월에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현천고에서 강연 때 했던 이야기가 더욱 더 와 닿았다. 

현천고는 공립형 대안학교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라고 한다. 우치다쌤도 그 학교를 이곳저곳 돌아보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학생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교사들을 보았단다. 그런 모습에 감명을 받으셨던지, 그건 일본에선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현천고에서 강연하고 있는 우치다쌤의 모습.



그럼에도 질의응답 시간에 18살 여학생은 “이렇게 자유로운 학교에서도 저는 아직 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우치다쌤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건 당연합니다”라고 운을 뗀 후에 “여러분이 직업을 선택할 때 직업 선택의 문이 열리면 비로소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문엔 손잡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문은 외부에서만 열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학생처럼 직업의 문이 어딨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문일까?, 아니면 저 문일까?’라는 생각으로 주의 깊게 봐야하고 행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이 열리게 되죠.”라는 말을 해줬다. 이 말은 계획에 맞춰 살아간 사람에겐 어떤 신비주의적인 말로 들릴 테지만, 나처럼 계획에서 미끄러진 삶을 살아온 사람에겐 삶을 그대로 들려준 말처럼 들린다. 그건 삶은 미지의 방향으로 흘러가며, 나 자신도 그저 그 흐름을 타고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이 열렸고, 그 문을 따라 쭉 들어갔더니 또 다른 인연들이 엮이고 그 길로 나아가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난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영화 교사로 단재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영화팀을 맡으며 5년을 보내고 나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조금이나마 ‘영’ 정도는 소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을 계속 가게 되면서 새로운 일들도 생겼고, 새로운 인연들도 만나게 됐다. 올핸 그 흐름을 이어 받아 전혀 생각도 못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써보도록 하겠다. 



▲ [DREAM 그리고 꿈]이란 영화를 찍고 있는 아이들.




목차     


1. 한문전공자가 영화 교사가 되다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사람이 영화팀을 맡다

직업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닌, 정해지는 것     


2.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영화교사의 좌충우돌기

몰라서 만든 영화 『다름에의 강요』

영화팀의 처음으로 언론인이 되어보다

광진IWILL과 영화팀, 영화로 만나다

2017년 영화교사로 한 단계 비약하다


3. 송파마을예술창작소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다

컴프레서 가지러 왔수다

컴프레서에서 영화로

오랜만에 설렘에 몸서리치던 밤을 맞이하다

하려고 맘을 먹으니, 일이 풀려간다

    

4. 2017년에 쓰게 될 영화교사 이야기는?

기회가 불연 듯 찾아오면

하나의 계기는 다른 계기를 만들고

그런 계기들이 모여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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