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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l 19. 2017

책을 만들기 위한 기초공사와 강의 뒤풀이 후기

독립출판 워크숍 3

첫 강의를 들으며, ‘정말 책으로 출판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어렸다. 평상시에 글을 쓰며 ‘언젠가 책으로 낼 날도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그 강의를 통해 좀 더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로 정한 게 바로 작년 4월부터 6월까지 정열을 불사르며 썼던『트위스트 교육학』이었다. 총 5번의 강의를 듣고 26편의 후기로 남겼으니, 글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고 함께 공유하며 볼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트위스트 교육학]은 4월에 시작하여 6월까지 5주 동안 진행됐다. 뜨겁던 2016년의 봄을 담고 있다.




원고가 바뀌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가 있더라. 그건 바로 ‘동섭쌤의 강의를 듣고서 그 내용을 후기로 썼다’는 데에 있었다. 아무리 강의를 듣고 내 식대로 재해석하여 썼다 할지라도 1차 저자는 동섭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동섭쌤의 동의가 당연히 필요하고, 그런 것 없이 그냥 진행할 경우 저작권이 문제가 되어 애써 편집하여 출판한 책을 폐기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부분이 꺼림칙했기에 다른 원고로 바꾸기로 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글들은 『지리산 종주기』, 『카자흐스탄 여행기』,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기』다. 아무래도 직접 한 여행을 기록한 것이기에 1차 창작물이며, 홀로 떠난 여행이 아닌 학교 아이들과 함께 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교육적인 시사점까지 담고 있어 독창적인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부제를 단다면 ‘학생들과 함께 여행하며 교육의 단상을 담다’ 정도이지 않을까. 세 편의 여행기 모두 심혈을 기울여 썼기에 모두 책으로 펴내고 싶었지만, 그건 비현실적인 생각이기에 원고를 하나만 정해야 했다. 그래서 그나마 분량이 가장 적어 편집하기가 수월한 『지리산 종주기』로 정했다. 

어떤 일이든 우여곡절은 분명히 있지만 그 지난할 것만 같고 고통스러울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나며 한 걸음씩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엔 끝이 보이게 된다. 윤상의 「달리기」란 노래에 나오는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 시간에 흠뻑 빠져들어 달릴 수 있어야 하리라.                



▲ 2013년에 일주일 동안 6명의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를 했다. 결국 이 글을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선 기초공사가 필요하다

     

두 번째 강의는 출판과정에 대한 설명, 출판 기획서 작성 요령, 책의 구조에 대한 설명, 종이의 구분과 같이 책을 만들 때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다뤘다. 이미 5년 전에 ‘편집자 입문 과정’에서 배웠던 내용이 대부분이니 복습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들었다. 그러나 ‘나만의 32페이지 배열표 만들기’와 ‘지면 레이아웃 만들기’ 부분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꽤나 흥미롭더라. 이런 과정은 책을 통일성 있고 짜임새 있게 만드는 기초공사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단재학교에 와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다르다』라는 잡지를 아이들과 만들며 출판에 대해 간접체험을 해봤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땐 더더욱 출판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던 교사가 출판을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책을 만들어야 했으니, 진정한 도전이었던 셈이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정으로 원고를 던져주고 무작정 편집하도록 했고, 나름대로 인쇄되어 나온 책은 아이들이 만든 것답게 아마추어의 향기가, 야매의 풍취가 물씬 풍겼다. 그래도 출판 전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경험하며 만들었다는 게 어디인가.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름의 한 방법일 수 있지만, 만약 이번에 배웠던 것처럼 아예 배열표부터 작성하고 각자 편집할 원고의 레이아웃을 만들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더 퀄리티높은 책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두세 번 정도 ‘이 글에 맞는 디자인은 뭘까?’를 되물어 보며 좀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됐다면 조금이나마 디자인의 질은 올라갔을 거라 생각한다.



▲ 편집인들은 이런 식으로 한 눈에 책의 내용이 보이도록 배열표를 만든다.



그런데 여기엔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자기가 쓴 글을 자기가 직접 편집한다’고 편집 방향을 정했을 때부터 전문가적인 느낌보단 아마추어의 팍팍 튀는 느낌이나 어설프지만 해보려는 마음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지면 레이아웃 만들기’까지 하도록 했다면 도전도 하기 전에 ‘너무 어렵다’며 포기했을지도 모르고, 개성이 묻어나는 디자인이 아닌 일반적인 잡지 디자인으로 정형화됐을지도 모른다. 교육이 때론 아이들을 획일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이런 방식으로 레이아웃을 잡고 디자인을 하면 훨씬 짜임새 있게 편집할 수 있다’는 점만 가르치고, 아이들이 그 방식을 활용하여 편집을 하던지, 아니면 자기 식대로 편하게 편집을 하던지 모두 인정해주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어쨌든 『다르다』를 만든 경험 후에 좀 더 전문적인 ‘배열표 만들기’나 ‘지면 레이아웃’이란 게 있는 걸 알게 되니, 전문가의 세계에 발돋움이라도 한 양 가슴이 뛰었다. 역시 관심이 있을 때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볼 일이다. 



▲ 아마추어 아이들이 기초 지식도 없이 만들었지만, 그런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사랑한다.



이렇게 두 번째 강의는 2시간 동안 진행되며 끝났다. 다음 주까지 ‘1회 분량의 원고 써오기 & 32페이지 배열표 만들기(선택: 지면 레이아웃 해오기)’를 과제로 내줬다. 숙제가 많고 꽤나 고민을 해야 하니 부담이 되더라. 그쯤 되니 이 연수를 기획한 and님이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저도 예전에 강의를 들었을 때 초반엔 잘 따라갔지만, 원고도 잘 쓰지 못했고 서서히 과제가 밀리기 시작하니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 없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충실히 과제를 해서 꼭 책까지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고 했던 말이 괜한 넋두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배열표를 내려 보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고 감조차 잡지 못해 헤매고 있다. 과연 내일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완성은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도보여행 때처럼 무작정 부딪히는 수밖에는.      



▲ 이곳도 에듀니티처럼 간식과 간단한 식사가 놓여 있다. 맘껏 먹고 편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실패할지라도 일을 만들어서 하는 자세

     

강의가 끝나고 강사님이 저번 주부터 말했던 대로 뒤풀이를 했다. 역시 강의의 묘미는 뒤풀이 아니겠는가. 강의는 이론을 배우는 자리지만 뒤풀이는 삶을 배우는 자리이니, 절대로 빠질 수가 없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교사들이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고 가버렸다는 점이다. 어색하기에, 시간이 없기에, 할 일이 많기에 저마다의 사연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풀이에 참석한 교사는 겨우 나를 포함해 네 명밖에 되지 않았고 센터장님을 포함해 센터 식구 3명, 이진곤 강사님까지 총 8명이 함께 했다. 

이진곤 강사님은 대안학교에 대해 궁금하다며 폭풍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16년 차 교사이신 김의식 선생님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풀어서 얘기해줬다. 아무래도 대안학교는 학교별로 엄청난 편차가 있다 보니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과 각 학교의 교사들이 맡는 영역도 다채롭기에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하기엔 힘들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이진곤 강사님은 모이긴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함께 모여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커리큘럼을 함께 만들어 간다면, 대안교육이란 좋은 뜻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거라 얘기해줬다. 

그 말에 이어 and님도 평소부터 네트워크 학교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펴내고 싶었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반적인 직장인은 이미 하던 일만 하는 것도 벅차기에, 새로운 일을 선뜻 만들어서 하려하지 않는다. 아마 직장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렇게 복지부동하려는 마음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런데 and님은 센터장님이 바로 옆에 계셨는데도 평소부터 하고 싶던 잡지 만들기에 대한 포부를 펼쳤다. 그 상황에서 재밌었던 점은 오히려 and님이 적극적으로 사업 제안을 하자 센터장님이 머뭇거렸다는 점이고, 강사님이 “그 마음은 정말 좋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한 번 만들어보세요. 그 책이 나오면 대안교육이 훨씬 많이 알려질 거예요.”라고 힘을 실어주자 센터장님도 그제야 “그럼 한 번 해보세요. 모든 지원은 아낌없이 할 거니깐요”라고 했다는 점이다. 

and님이 지금 했던 제안을 어느 정도까지 현실화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일이 많아질지라도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던 것을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그 열정이 부러웠다.                



▲ 센터장님과 함께 한 뒷풀이였는데 편해서 좋았다.




힘내라힘내자! 

    

그 말에 끝나자 대안학교 김의식 선생님은 후배 교사들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했다. 대안교육 운동이 시작된 지 25년이 지나며 나름 자리도 잡았지만, 그만큼 여전히 열악한 처우 속에 젊은 교사들의 희생만을 바라는 부분에 대해서 말이다. 

1세대 대안교육 운동을 하던 세대들이 지금은 거의 교장급이 되었다. 그 분들은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가며 운동권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듯 희생적으로 만들어갔다. 그분들이 피와 땀 흘려 만들어 놓은 터전, 기반 위에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분들 덕에 학교밖지원센터라는 곳이 만들어졌고, 대안학교 교사들의 인건비를 지원하도록, 대안학교 학생들의 점심비를 지원하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워낙 재정자립도가 낮아 교사에 대한 처우개선이 거의 되지 않았으며 그로인해 교사들의 장기적인 직업으로서의 메리트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김의식 선생님처럼 장기간 근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교사들이 빨리 빨리 교체되는 형편이다. 나는 단재학교에서 6년을 보냈는데, 이번 뒤풀이엔 많은 교사들이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어느덧 2번째로 장기간 근무한 교사가 되어버렸다. 나머지 한 분은 1년 반 정도 근무했으며, 다른 한 분은 이제 6개월차라고 밝혔으니 말이다. 

이런 현실이기에 “후배 교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안교육이 자리를 잡으며 좀 더 안정적인, 그러면서도 윤택한 환경이 되도록 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그건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예요.”라고 미안해했던 것이다. 그 말은 결국 모든 대안학교 선배교사들의 마음이자,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무거운 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마음과는 별도로 이제 막 근무하기 시작한 두 분의 교사들은 밝고도 맑았다. 오히려 그렇게 미안해하는 선생님에 대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전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환경이나 처지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얘기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처럼 선배교사들은 후배교사들을 끌어안아주려 하고, 후배교사들은 또 각자 맡겨진 일을 신나고 즐겁게 해나가는 모습이 대안교육의 저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날 모임은 7시에 시작하여 무려 10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보통 이런 공부모임의 뒤풀이에 가면 가볍게 맥주 한 잔하고 짧으면 1시간에서 길면 2시간 정도 이어지다가 끝난다. 아무래도 어색한 사람들끼리 모여 얘기하려니 이야기 소재가 별로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오늘 뒤풀이에 올 때만 해도 짧게 끝나려니 예상했던 건데, 그건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만큼 함께 얘기할 것들이 많았다는 얘기고,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함께 얘기할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리라. 기분 좋은 만남 뒤엔 여운도 긴 법이다. 긴 여운을 안으로 힘껏 페달을 밟아 한강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 많은 과제를 안고 가지만, 어쨌든 집으로 향해 가는 길은 상쾌하기만 하다.




목차     


1. 인문의 세계에서 다시 출판을 만나다

자기계발서에서 해답을 구하다

자기개발의 세계에서 나와 인문의 세계로 오라

우연하게 출판편집자를 꿈꾸다

출판편집자의 꿈에서 미끄러지다

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한 순간에, 꿈이 다가왔다

‘출판’이 다시 나를 찾아오다     


2.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꺼져가던 열정을 불태우게 되다

낯선 익숙함이 있던 강의실

책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나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

7월의 무더위를 뜨거운 열정으로      


3. 책을 만들기 위한 기초공사와 강의 뒷풀이 후기

원고가 바뀌다

책을 만들기 위해선 기초공사가 필요하다

실패할지라도 일을 만들어서 하는 자세

힘내라, 힘내자!     


4. 책엔 고민의 흔적이 스며 있다

and님이 출판의 세계로 초대해주다

창조하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인디자인은 배치 프로그램

책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편집 방향

편집엔 고민이 담겨 있다


5. 살아가는 것그 자체만으로도 공부다

신나게 한바탕 잘 공부했다

박스를 보면 인디자인이 보인다

역시 기능을 알면 더 편하게 편집할 수 있다

7월이 강의와 함께 훌쩍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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