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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9. 2018

제주를 보니 가슴이 뛰네

2018 나 홀로 제주 여행 3

제주여행 중 이전 두 번의 여행은 며칠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떠난 데 반해, 이번 여행은 감정기복에 따라 순전히 우발적으로, 우연적으로 떠나게 됐다. 바로 하루 전날에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그에 따라 출발하게 된 여행이니 말이다.                



▲ 하루 전 날에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해보면 별 것 아니지만해보기까지가 힘들다

     

집에서 김포공항까진 전철로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김포공항에 오는 건 두 번째지만 벌써 6년이나 흘렀고, 오늘처럼 혼자 오는 건 처음이니 모든 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지하철역에서부터 이정표를 따라가니 김포공항이 나오더라. 2층에선 티케팅을 할 수 있고, 3층에선 수속을 밟은 후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 공항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



가는 비행기는 아시아항공으로 끊었다. 선호하는 비행사가 있는 게 아니라, 그나마 집에서 나와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을 계산했을 때 가장 싼 티켓을 예약했을 뿐이다. 2층에 올라 아시아나항공 티케팅하는 곳으로 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 보통 국제선을 타야할 경우엔 2시간 전에, 국내선을 타야할 경우엔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고속버스를 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항 자체가 커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시간이 걸릴뿐더러, 티케팅을 하고 검색대를 통과한 후에 탑승하기까지 절차도 복잡하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에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7시 50분쯤에 공항에 도착했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좀 더 시간에 왔다면 더 많은 사람이 몰려 수속 시간은 더욱 지체됐을 것이다.  

티케팅을 하려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뒤쪽에서 스튜어디어스가 “예매번호를 아시는 분은 바로 발권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더라. 티케팅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고 나는 이제 마지막 줄에 서 있었기에 스튜디어스의 말이 혹하긴 했다. 어제 예매를 하자마자 카톡으로 예매번호가 왔으니, 그것만 알면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 맘이란 게 ‘괜히 저 말만 믿고 빠졌다가 발권도 못 받고 다시 이 줄에 서게 되면 더 늦어지잖아. 그러니 그냥 하던 대로 하자’라고 멈칫하게 되더라. 아무래도 6년 만에 온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실수할까봐 단단히 맘을 부여잡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작 국내선을 타는 데도 이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스튜어디어스가 다시 외쳤고 내 뒤에 계시던 분이 예매번호를 안다며 스튜디어스를 따라 나섰다. ‘이런 상황이라면 옆에서 흘깃흘깃 엿보며 어떤 시스템인지 해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 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랬더니 버스를 예매할 때와 같이 비슷하게 생긴 기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고 과정을 하나하나 알려주더라. 그래서 그 옆에서 나도 따라서 진행했고 좌석까지 선택한 후에 예매번호를 누르니 아주 간단하게 티켓팅이 완료되었다. 역시 뭐든 해보면 별 것 아닌데도, 처음 해본다는 생각에 괜히 쫄아 있었던 거였다. 역시나 혼자 여행을 해보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그릇의 크기가 여실히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김어준의 “쫄지마 C8”이란 말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 이 기계에서 발권을 받을 수 있다. 버스표 예매할 때보다 약간 복잡하지만, 그래도 훨씬 편하다.




검색대는 언제나 나를 긴장하게 한다

     

티케팅을 한 후에 바로 3층으로 올라가 검색대를 통과할 준비를 했다. 2011년에 경수와 제주도에 갈 땐 자전거의 펑크를 때우기 위해 챙긴 렌치와 본드가 걸렸었고 2012년에 단재 아이들과 카자흐스탄에 갈 땐 비상약 중 스프레이류가 걸려서 폐기처리 되었다. 그때의 경험이 있기에 그런 것들은 전혀 챙겨오지 않았지만, 카메라와 스마트폰 예비 배터리, 그리고 면도기 등이 살짝 걱정되긴 하더라. 예비 배터리의 경우엔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폭발 사고로 규정이 강화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적이 있어 걱정이 됐고, 면도는 칼날의 한 종류이기에 걱정이 됐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주머니에 있던 온갖 물품에 꺼내 바구니에 넣었고 외투도 벗어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을 통째로 바구니에 올리려 하니 직원분이 “혹시 가방에 노트북이 있나요?”라고 물었고, 있다고 하자 노트북만 따로 꺼내놓아야 한다고 알려주더라. 지금까지 노트북을 가져간 적이 없어 몰랐는데, 노트북이 가방에 들어있으면 X레이가 투과되지 않아 다른 물건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부랴부랴 노트북까지 꺼내놓고 바로 보안검색요원이 있는 곳에 가서 온몸을 스캐닝할 준비를 했다. 나야 잠시 지나가는 사람으로 두 손을 들고 있다가 지시에 따라 내리고 잠시 스캐닝을 당하면 되지만, 이곳 보안요원들은 하루 종일 사람들의 몸을 스캐닝 해야 하니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모든 수속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면도기나 배터리에 대해 어떤 말도 없는 걸 보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더라. 이로써 최초로 (그래 봐야 겨우 3번 비행기를 타본 게 전부지만.. 쩝^^;;) 어떤 물건도 걸리지 않고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역시 이런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피가 되고 살이 된다니까. 물론 국제선을 탈 때나 해외 공항의 검색대는 상황에 따라 더욱 깐깐할 테니 점차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거라 혼자 상상하며 한껏 미소를 머금고 탑승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 보안 검색대에 설 때면 떨린다. 뭔가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




비행기가 뜨면 몸이 근질근질 거려

     

역시 비행기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고 가는 맛이 있다. 그래서 아까 티케팅을 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창가 쪽 자리만을 찾았던 것이고 창가 쪽 자리가 보이자마자 바로 티케팅을 한 것이다. 



▲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니 절로 기운이 난다.



비행기를 타는 설렘은 언제나 좋다. 버스와 같이 시간이 되었다고 바로 출발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창가로 보이는 풍경을 찍으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한껏 들떠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있으니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정활주로까지 느린 속도로 달린다. 지정활주로에 도착하면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엔진이 풀가동되기 시작하여 굉음이 커지고 비행기 속도로 서서히 빨라진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비행기는 마치 크레인이 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늘로 떠오른다. 그때 몸은 잠시의 무중력 상태에 놓인다. 내 앞에 앉아 있던 꼬마가 “할머니 몸이 근질근질 거려”라고 표현했던 대로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건 마치 번지점프대에 올라 막 뛰어내릴 때에 느껴지는 묘한 기분 같다고나 할까. 

마침내 우린 8000피트 상공에 도달했다. 스튜어디어스는 음료서비스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나도 약간의 긴장을 푼다. 밖의 풍경을 제대로 보고 싶은데 무언가 끼어 있는 듯 흐릿하게만 보여서 안타깝더라.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홀연히 떠날 수 있다는 게, 무언가 하나하나 내가 쳐놓은 선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게 좋기만 하다.     


▲ 비행기는 날아갈 때보다 떠오를 때와 내려앉을 때의 기분이 좋다.

  


         

제주를 마주치는 순간전혀 다른 나를 발견하다

     

비행기는 1시간 정도를 날아 마침내 제주에 도착했다. 2011년에 제주에 처음 왔을 때의 그 설렘이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그리고 이곳이라면 무엇이든 관념에 갇히지 않고 맘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그런데 더 재밌는 점은 마침내 제주가 한 눈에 내려 보이는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명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별 다른 계획도, 별 다른 의미도 없이 갔다가 오자고만 생각했었는데, 제주도가 보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파고를 치며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활화산처럼 타올랐기 때문이다. 



▲ 10월에 제주를 달릴 수 있던 그 때.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보통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에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실천해가는 게 삶이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으로 여태껏 살아왔고, 그게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보여행 때나 지금 이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은 100% 맞는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의 머릿속에 짜인 계획이 일상으로 스며들어 삶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나를 뒤흔들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삶속에 나를 던져놓아 살아가려다 보니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확고한 생각이 있어 그리 사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그리 살게 됐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단재학교에서 들어와 여태껏 교사로 살 수 있는 건 나에겐 말로 할 수 없는 축복이었다. 그 덕에 교육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으며,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고민들을 단재학교는 해도 되는 곳이었고, 그걸 더 깊이 고민해도 괜찮은 곳이었다. 그래서 ‘얼렁뚱땅 교육학, 흐리멍덩 배움학’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2017년 10월에 현세가 감독이 되어 [Psycho] 영화를 촬영 중이다. 생각한 교육과정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만약 ‘너는 원래 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래서 다양한 교육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뭔가 그럴 듯하게 포장한 말에 다름 아니다. 그건 나라는 확고한 상이 있고 그게 어떤 환경이든 휩쓸리지 않고 발현된다고 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재학교에서 교사로 일하지 않고 학원 강사나 과외 선생님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며 더 경쟁을 시켜야 한다거나, 좀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나란 인간이 어디서 독야청청하게 솟아난 인간이 아니라,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인간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재학교는 교육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게 하고 고민한 것들을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감사할 뿐이다. 

이처럼 제주도와 마주치는 순간,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이든 이곳에서 하고 싶다는 의욕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혼자 떠나는 여행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도 좋지만, 혼자 떠날 수 있다면 맘껏 떠나보시라. 이렇게 살짝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마음은 앞을 향해 무작정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지만 내가 어쩔 수 없게 된 거다. 이런 작은 동요가 이번 여행의 컨셉을 한순간에 바꿔 버렸다. 



▲  Welcome To Jeju! 하지만 제주와 마주치는 순간, 온갖 생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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