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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23. 2018

1월에 제주에서 하이킹을 하게 된 사연

2018 나 홀로 제주 여행 4

이번 제주여행의 특징은 거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왔다는 점이다. 물론 큰 틀은 4박 5일 동안 머물며 처음 이틀은 제주시에서, 그 다음 이틀은 서귀포시에서 그때의 기분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때론 한가롭게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자는 거였다.                



▲ 남해의 푸르른 바닷물이 좀 희뿌옇게 보인다.




만남은 맛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제주로 오는 내내 신나게 바깥으로 보이는 광경에 심취해 사진을 ‘열나게’ 찍었다(비행기를 타는 건 아직까지도 매우 신나는 일임^^). 그렇게 어느새 뭍은 사라지고 남해 바다의 청명함이 보이는가 싶더니, 바다 한 가운데 감추어진 보배처럼 제주의 푸르른 비경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에서 “이제 곧 착륙할 예정이오니, 안전밸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제주가 보인다.



당연히 제주행 비행기를 탔으니 제주를 보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막상 눈앞에 제주가 보이니, 마음이 사정없이 들뜨고 온갖 의욕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말로 만남이 주는 말로는 정의할 수 없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만날 때 우린 그 전엔 전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제3자’를 불러내게 되며 그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의 향로로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니 말이다. 이 말이 어렵다면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으면 좀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교육의 중심은 ‘가르침과 배움의 만남’에 있습니다. 그 만남 속에서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에게도 아이에게도 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외부’라 해도 좋고, ‘타자’, ‘제3자’라 해도 좋습니다. 교육에서 교사 이외의 어떤 주주도 아이와의 대면 상황에서 그러한 제3자를 불러낼 수 없습니다. 오직 교사와 아이의 대면 상황에서만 제3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그곳이 여기와는 다른 장소, 여기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회로가 열리는 기적적인 지점입니다. 교사가 그 이외의 주주와 전혀 다르게 기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역할 때문인 것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저, 박동섭 역, 『교사를 춤추게 하라』, 민들레 출판사, 2012년, 43~44쪽  


        

이 책에서 저자는 학교가 사회의 요구에 맞춰 사용자의 입김이 대폭 반영되어 교육과정이 편성되기에 학교는 점차 정글이 되어가 교사와 학생은 기계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교사가 사용자의 입장이나 주주의 입장이 아닌 교사 본연의 입장으로 학생들과 대면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때 ‘제3자(새로운 것)’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즉 교육의 본질을 취업률이나 사회 적응의 문제가 아닌 만남과 어우러짐으로 본 것이다. 

그걸 달리 말하면 어떤 것이든 제대로만 만날 수가 있다면, 전혀 다른 관계로의 진입이 가능하며 여태껏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때 만남은 맛남이 되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 작년 12월에 아이들과 함께 짐을 나르고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만남이 맛남이 되는 순간들.




타발로 하이킹 덕에 관덕정을 보다 

    

이처럼 제주와 마주치는 순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만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됐다. 이미 두 번의 제주여행을 자전거를 타며 했기 때문에, 이번엔 절대 자전거는 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고, 좀 여유를 부리는 여행을 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주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게 아니라, 자전거를 빌려서 가고 싶은 곳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해본 경험이 좋은 추억으로 남은 탓(?)에 막상 떠날 때와는 180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12년 4월 11일에 아이들과 제주를 돌았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공항에 내려 2011년 당시에 자전거를 대여한 적이 있는 ‘타발로 하이킹’이란 대여점을 폭풍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공항에서 바로 그곳에 가는 버스가 있더라.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 버스에 몸을 실었고 제주목관아가 있는 곳에서 내렸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제주의 행정을 총괄하던 곳이다. 바로 그 앞엔 관덕정觀德亭(활 쏘는 것은 성대한 덕을 나타내는 것이다-射者 所以盛也)이란 정자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는데, 이곳에 수령이 올라 군사훈련을 지휘하고 감독했다고 하더라. 제주목관아를 둘러볼까 하다가 지금은 자전거를 빌리는 게 먼저라 생각해서 곧바로 북초등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관덕정, 정말 우람찬 정자다.



거기서 조금 더 걸으니 2011년 당시의 모습 그대로 ‘타발로 하이킹’이 있더라. 오랜만에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막상 가게에 들어가려 다가가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가게 안은 텅 비어 있더라. 

아마 처음부터 자전거를 빌릴 생각이었다면 계획이 어긋났다며 황당해하고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무작정 떠난 것이고, 공항에 와서야 자전거를 생각한 것이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도리어 ‘이렇게 생각대로 안 되고, 보란 듯이 어긋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까지 들며,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생각까지 들더라. 더욱이 두 번의 도보여행 땐 스마트폰도 없이 지도만 가지고 다닐 때라 이런 상황에선 많이 당황했었는데, 지금은 무려 언제 어디서든 모든 걸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으니 조금도 놀랄 필요가 없다. 물론 스마트폰이 없이 떠났던 두 번의 도보여행이야말로 정말 여행다운 여행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 추억의 장소지만, 지금은 폐허처럼 남아 있다.




자전거 대여점에 불쑥 들어온 황당한 손님? 

    

검색해 보니 여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더라. 아마도 상호명이 같은 걸로 봐서는 이곳이 확장 이전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곳에서 다시 가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에 내려 자전거 대여점에 들어갔다. 

가게에 쭈뼛쭈뼛 들어가니, 이곳은 대여점이라기보다 판매점에 훨씬 가까운 모양새더라. 바깥에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몇 대 보이긴 했지만, 안쪽에 팔기 위한 자전거가 더 많아 보였으니 말이다. 기억이 왜곡된 탓일 수도 있지만, 예전엔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더 많았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 



▲  좀 헤매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게 헤매고 예상치 못한 것들을 하는 게 여행의 묘미이니.



가게 안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미닫이문이 보이고 가정집과 연결되어있더라. 그래서 미닫이문을 노크해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저절로 미닫이문이 열리며 주인 내외분이 나오셨다. 내 행색은 영락없이 여행객의 행색이기에 당연히 “자전거 빌리러 왔어요?”라고 물을 줄 알았는데, 두 분 모두 갑자기 난입(?)한 나를 보고 황당했던지 어떤 말도 하지 않으시더라. 그래서 내가 먼저 “자전거를 대여하러 왔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나중에 자전거를 대여한 후에야 왜 그분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첫째 1월에 하이킹을 하겠다고 자전거를 빌리러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성수기는 7~8월로 대학생들이 방학하고 많이 온다고 한다. 그리고 하이킹을 하기 가장 좋은 때는 4월과 10월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땐 날씨도 청명하고 기온도 덥거나 춥지도 않으며,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2011년엔 10월에, 2012년엔 4월에 자전거 여행을 했으니, 참 좋은 시기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을 오롯이 보냈던 셈이다. 이래서 내가 참 운도 지지리 좋은 놈이라 자평하는 거다. 이번엔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에, 그것도 한 겨울 1월에 자전거를 빌리겠다고 온 것이니, 뻥 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하이킹을 하겠다고 오는 경우의 대부분은 예약을 하고 오지 이렇게 불쑥 찾아오진 않기 때문이다. 예약을 하면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공항에서 픽업해준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는데 2011년에 왔을 때도 픽업차를 타고 편안하게 자전거점에 왔던 기억이 난다. 만약 이번에도 미리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예약을 해서 지금쯤이면 자전거를 빌려 여기저기 타고 다니고 있었겠지. 어찌 되었든 그런 시스템이 있기에 나처럼 불쑥 찾아온 손님이 황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공항으로 오든, 항구로 오든 올때나 갈때나 픽업서비스를 한다. 나처럼 이렇게 찾아오는 경우는 당연히 없겠지.




2011년과 2018년의 타발로 하이킹 

    

자전거를 고르기 전에 아저씨는 제주 지도를 보여주며 어떤 루트로 하이킹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잠을 잘 수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주신다. 아마도 처음 하이킹을 하러 온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 같았다. 



▲  이 지도로 경로와 묵을 장소를 상세히 설명해주신다. 근데 나 이번엔 일주 안 할 건데요~~~



그쯤에서 6년 전에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일주를 한 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까도 예전 가게를 찾아갔었는데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노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랬더니 주인내외분도 왔던 손님이 또 왔다는 말에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반가워해주시더라. 가게를 이전한 지는 2년 정도 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좀 더 친한 척을 하기 위해 2011년 당시에 아드님이 픽업을 나왔고 조금 얘기하다 보니 고향이 순창(전라도인 건 기억에 나는데 구체적인 지명이 생각나지 않아 약간 말을 흘리며 말했는데, 바로 고창이라 수정해주셨다^^;;) 쪽이라고 해서 같은 전라도 사람이라 매우 반가웠었어요라는 ‘안물안궁’한 이야기를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했다. 그건 그만큼 그 당시에 자전거를 잘 타고 갔다 왔다는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고, ‘같은 전라도’라는 지연을 강조함으로 자전거를 대여할 때 좀 더 혜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전략이기도 했다. 이럴 때보면 나도 참 너스레를 잘 떨고, 아무렇지도 않게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그건 내 자신이 어색하다고 느끼기에 더욱 그런 거지만 말이다. 하긴 이런 나의 습성은 도보여행을 하며 여러 장면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  이전하기 전엔 이런 모습이었다. 아 추억돋는다~~~



이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골라야 할 차례다. 자전거는 그새 더 종류가 많아졌더라. 2011년엔 철TB와 MTB 정도로만 나누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로드자전거, 무펑크 자전거까지 라인업이 대폭 늘어났다. 당연하지만 난 최상급 MTB를 타고 싶었는데 그럴 경우 2만원 정도가 되며, 타고 다닐 만한 자전거는 18.000원 정도 내야 하더라. 가격을 들으니 잠시 망설여졌고, 어떻게든 더 깎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아저씨가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고선 건물 뒤편으로 들어가셨다. 아무래도 손이 조금 덜 탄 자전거를 주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아주 날렵한 모양의 자전거를 꺼내 오신다. 가격은 15.000원이라 하셨다. 어차피 계좌이체를 할 생각이고 지금은 비수기이기도 하니 2.000원 정도는 더 깎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엔 그냥 기분 좋게 여행을 하자는 생각으로 바로 이체를 했다.                



▲  이번 하이킹에서 나와 함께 할 녀석. 잘 부탁해~




준비되지 않은 하이킹그럼에도 달린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나 하이킹을 할 준비를 전혀 하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방엔 노트북이 거대한 몸집 그대로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노트북만큼이나 무거운 어댑터 또한 한 무게를 보태주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이미 3.3kg이나 되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노트북은 충격에 약하니 무리하게 턱을 지나거나 하면 액정이 파손될 위험까지 있어 걱정이 됐다. 거기에 옷도 하이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청바지에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왔지 뭔가. 더욱이 목요일 오후엔 비 예보까지 있어 생각만큼 하이킹은 쉽지 않을 거란 고민이 들었다. 



▲  노트북에 책까지. 하이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매력이다.



그래도 대여점에선 우의와 가방을 감쌀 수 있는 큰 비닐을 챙겨줘서 다행이다. 하이킹 중엔 펑크가 날 확률도 높으니 펑크 패치와 펌프도 아예 챙겨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펑크패치도, 본드도, 거기에 공구세트까지 아예 풀로 챙겨주시더라. 그리고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기 힘들 거 같으면 여기에 두고 가도 된다고 친절해 말해주셨다. 그 순간 정말 그럴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가져온 이상 그냥 천천히 다니며 잘 쓰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가져가기로 했다. 

짐받이 위에 두꺼운 외투를 올려 노트북에 전해지는 충격을 조금이나마 흡수하도록 했고, 그 위에 가방과 수리도구까지 얹은 후에 짱짱하게 짐 고정줄로 묶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짐 고정줄을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두 번이나 묶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마음이 놓이더라. 이로써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하이킹 준비는 끝이 났다. 



▲  펑크를 때울 도구들까지 넉넉하게 챙겨줬다. 자전거에 관해선 전혀 걱정이 없다.



과연 아저씨 말처럼 막상 자전거를 빌렸으니 또 다시 일주를 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 생각했던 대로 숙소를 정하고 그곳을 기점으로 가고 싶은 곳을 오고 가는 여행을 할 것인가? 대여점에서 나온 그 순간까지도 마음은 정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이호테우 해수욕장 쪽으로 달려 제주의 푸르른 바다를 실컷 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래서 이미 12시가 넘었지만 무작정 패달을 밟았다. 



▲  고정줄 두 개로 짱짱하게 묶었다. 과연 어디로 어떻게 가볼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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