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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Mar 01. 2018

아디오스 단재학교

안녕 단재학교, 안녕 인생학교

2011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6년 3개월 동안 일했던,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았고, ‘건빵=단재학교 교사’란 등식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단재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 17년 10월 19일에 체육시간에 한강  라이딩을 하며.




꿈만 좇던 이에게 찾아온 느닷없는 행운

     

난 꿈을 좇아 살아왔다. 물론 교사가 되려던 꿈은 매우 현실적이었지만, 한문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이상을 좇은 결과였다. 한문을 공부하며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고, 좀 더 깊이 있게 그 시대를 탐닉하며 시대를 보는 재미를 느꼈으니 말이다. 어느 시기에 써진 내용이든 그건 결코 ‘그 당시의 케케묵은 이야기’ 만은 아니다. 그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담고 있지만, 지금의 내가 해석하는 순간부턴 현재적 관점이 담긴 현재의 이야기로 탈바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올 선생님은 “모든 옛날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현재적 실존의 관심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철학의 관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라는 아주 충격적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하긴 누구나 심정적으론 이렇게 역사를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자기 입맛에 맞도록 역사를 뜯어 고치려한 ‘역사 국정교과서 논쟁’이 있었던 거겠지.



▲ 2007년  임용을 준비할 때 사진. 그저 공부할 수 있다는 게 한문의 오묘함을 알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한문의 재미에 푹 빠져 살았지만 임용시험엔 매번 실패하며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공부를 마냥 하기엔 학자금대출로 갚아야 할 돈도 있었고, 현실도 녹녹치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2010년 임용시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임용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본격적으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밑밥을 깔면 마치 영웅담처럼 들려 훗날에 엄청난 성공을 했을 거 같지만 그건 전설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며, 나처럼 매우 평범한 인간에겐 일어날 수 없는 얘기일 뿐이다. 그러니 여러 곳에 호기롭게 서류를 내봤지만 대부분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했고, 매우 운 좋게 한겨레 교육에 서류가 통과되어 면접을 보고 필기시험을 봤지만 보기 좋게 탈락했다. 한 우물만 파던 사람에게, 그래서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 취업의 벽은 역시나 높고도 높았다.

그럼에도 『아홉 살 인생』의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종종 느닷없는 행운이나 불행이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느닷없이 우리 삶을 뒤흔들어,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143쪽).’라는 말처럼 느닷없는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교사의 꿈을 포기한 그 순간에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얘기는 ‘포기했지만 결국 노력하여 교사가 됐다’는 성공담과는 아주 거리가 먼, ‘포기했음에도 운 좋게 교사가 됐다’는 알다가도 모를 인생담일 뿐이다.               



▲ 2013년 10월의  학부모 모임 중. 교사가 되어 이젠 학생 뿐 아니라, 학부모와도 함께 모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신채호와 단재, 그리고 단재로움

     

단재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호를 따서 작명을 했다. 단재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서 고대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찾아 고군분투하며 『조선상고사』를 집필한 학자다. 그렇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단재학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역사교육에 중점을 둔 학교’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좌로든 우로든 치우치지 않은 단재의 정신을 본받아 학생 개개인에 맞는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라 생각하면 된다.



▲ 처음 단재학교는 강동구 둔촌동에 있었다. 나는 이 문을 열고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학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처음 단재학교에 왔을 때 여러 부분에서 놀랐다. 우선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데서 놀랐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서 키팅 같은 교사상을 꿈꿨고, 그렇게라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그보다 한 수 위였으니 말이다. 눈높이를 맞추는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함께 고민하며 학교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 대우해준다. 그저 가르칠 대상으로서의 학생이 아닌, 대화의 상대 내지는 목표를 함께 그려갈 수 있는 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그뿐인가, 커리큘럼이 원래 존재하고 그 틀 안에서 어떻게 수업을 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커리큘럼을 완전히 허물고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는다는 점에 놀랐다. 그러니 때론 배드민턴을 치는 게, 때론 영화를 보는 게, 때론 벽화를 그리는 게, 때론 도배를 하는 게, 때론 서울 방방곡곡을 트래킹하는 게 수업이 된다. 그리고 학생들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땐 아이들과 둘러 앉아 허심탄회하게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니 어떤 일이든 당연히 일어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일의 발생보다 그걸 처리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벽화를 그리고 칠하는 게 수업이 된다. 상상만 할 게 아니라, 맘 놓고 해보라고 하는 분위기가 단재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교실을 벗어나 상황에 내맡겨질 때 비로소 배움이 기동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기에, 외부활동이 적극적으로 허용된다.

나는 이것을 ‘단재로움’이라 표현한다. 신채호 선생님이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자유롭게 우리의 역사를 찾아 고군분투하며 상고사를 기술하셨듯이, 그의 그런 마음을 이어받은 학교에선 학생들과 함께 역사의 한 순간에 서서 묵묵히 각자의 역사를 써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려 하니 말이다. 단재로움이란 결국 ‘각자의 역사’를 써나가길 권장하고 응원한다는 표현인 셈이다.                



▲ 단재로움이란 자신을  고양이라 느껴야 함에도 오히려 쥐라 여기는 아이들에게 호랑이와 같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다.




영화와 여행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써가다     


그런 학교의 분위기에 맞춰 한문을 전공하고 한문만 파온 내가 영화라는 전혀 낯선 과목으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엔 ‘교사가 잘 하는 것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기보다 잘 못하는 것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교육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교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아이들과 만날 경우, 앎의 비대칭성으로 교사는 권위를 갖게 되고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교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권위적인 모습으로 통제하고 옥죄려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교사도 잘 모르는 거라면 아이들과 같은 선상에서 얘기할 수밖에 없으며, 아이들과 함께 탐구하며 하나하나 만들어가야만 한다. 자신도 모르는 것투성이니 잘난 체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니 함께 배우고 함께 가르치며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교학상장의 예)이 되어줘야만 한다.



▲ 한문을 주구장창 파온 사람이 영화를 매개로 아이들과 만나게 됐다. 이래서 인생이 재미지다는 거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연구하며 처음으로 『다름에의 강요』라는 영화를 함께 만들 수 있었고, 매년마다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리얼버라이어티와 같은 실험 정신 가득한 공부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중에 백미는 누가 뭐라고 하든 아이들이 직접 감독이 되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편집자가 되어 완성한 영화들(김지원의 『영원한 사랑』, 임승빈의 『동심, 동심』,  김민석의 『GAME OVER』와 『DREAM』, 오현세의 『FAKE BOOK』)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던 나의 의중이 많이 반영되어 아이들과 함께 참으로 여기저기 많이 쏘다닐 수 있었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긴 하다. 아이들도 여행을 좋아하고 도전하는 걸 좋아하기에 뜻을 모아 수많은 곳을 다닐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6명의 아이들과 화엄사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종주를 할 수 있었고, 전주영화제와 부산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를 다니며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며 영화 산업의 현장을 만끽할 수 있었으며, 달성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 동안 달릴 수도 있었다. 확실히 나 혼자 하는 여행보단 신경 써야 할 게 많아 힘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는 여행은 그 시간을 오롯이 함께 보내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이 있었다.      



 ▲ 2016년  [DREAM]이란 영화를 찍고 있는 아이들.

          



새 길에 첫 발을 내딛는 나를 응원한다  

   

나의 30대의 고민들과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단재학교의 이야기에 담겼다. 어느 순간이든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신나게 지내왔다. 물론 그 순간들에 함께 해준 아이들 덕에 지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고 맘껏 웃으며 신나게 떠들며 지내올 수 있었던 거지만. 하지만 이젠 그런 기억들을 추억의 저편으로 미뤄둔 채 떠날 때가 되었다. 길었던 시간만큼이나 아쉬움과 미련은 남지만,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는 까닭에, 서로를 맘껏 응원하며 새로운 길을 향해 가려 한다.

이렇게 새 길에 들어설 때마다 『개밥바라기별』 표지 날개에 씌어 있던 저자의 글이 떠오른다.           



나는 왜 이렇게 얼렁뚱땅일까?

돌고 돌아 왔는데

다시 처음 그 자리다.

남은 시간은 산산이 부서지는데,

난... 난...

또 다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느메로 가게 될지, 그리고 무엇을 하게 될지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단재에서의 6년은 나에겐 선물과 같은 시기였고, 축복과 같은 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기로 인해 정말 많은 경험을 했고,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으며, 글쓰기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는 삶에 대해 한껏 어우러져 춤을 춰볼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시련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여 자양분으로 삼을 것이다.



▲ 2017년 12월의  학습발표회와 졸업식을 함께 한 단재 식구들. 올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재미지게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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