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9일
끝이 있단 걸
다시 알게 되었네
젖은 흙 위로
방으로 들어서니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그리고 담요가 덮인 하얀 개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개의 이름은 '다행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게스트하우스 문 앞에서 발견되었고 배 속에 많은 기생충 때문에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 사람들에게서 살아나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다행이'란 이름이 붙여진 친구. 사람들만 보면 그렇게 좋아하며 달려들고 꼬리를 흔들었지만 저로서는 그 애교가 때로는 부담스럽고 귀찮게 느껴질 정도로 활달했던 이웃집 강아지. 그렇게 오육 년을 오며 가며 보았던 강아지가 지금은 이렇게 힘없이 누워있다니 도저히 같은 친구라고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당혹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밭 근처에서 농약을 먹은 것 같다고, 그리고 농약은 개나 고양이에게 아주 적은 양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곁에서 누군가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삼 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다행이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기꺼이 마당을 내준 이웃 덕분에 다행이를 위한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땅을 파고 식어버린 몸을 눕히고 다시 흙을 뿌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문득 그동안 마주해왔던 여러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어머니부터 동갑내기 친구, 무척 따르던 형, 호랑이 같았던 외할머니... 매번 빈소를 빠져나올 때마다 '언젠가 죽음은 나에게도 찾아오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죽음'이란 건 나에게서 아주 멀어지게 되어 마치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사건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한참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모든 시작이 있는 것엔 끝이 있단 것을. 비에 젖은 흙을 내려다보며 이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