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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21. 2022

출근길 아침해가 원망스럽다면

5분만 더....

처음 전 직장 앞으로 이사 왔을 때, 주변에서 그런다. 회사에 뼈를 묻을 작정인 모양이구나. 애초에 그럴 마음은 없다. 애매하게 긴 배차간격 탓에 새벽 일찍 일어나야 출근 시간에 맞출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천상 아침형 인간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그뿐이다. 회사와 가까운 오피스텔에 자취방을 구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는데, 아뿔싸! 회사 정문이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이런.


출퇴근 길이라고 해봐야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끝이다. 신호에 걸려도 5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허무할 정도로 짧다. 정문에 도착하면 어깨가 축 쳐진 회사 동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인사도 하지 않는다. 다들 에어팟을 끼고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다. 회사 입구가 무슨 거대한 괴물 같다. 입을 벌려 직장인을 한 명 한 명 삼킨다. 9시간 뒤에나 저기서 나올 수 있겠지. 전쟁터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한숨을 쉬고 올라간다.


왜 몸과 마음은 직장과 가까워질수록 무거워야 할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즐겁고 재밌진 않더라도, 최소한 견딜만해야 하는데. 직장 스트레스는 사무실 바깥에서도 유효하다. 얼마 전에 연차를 쓰고 나온 전 회사 동료를 만났다. 저녁을 먹는 동안 사내 메일을 계속 들여다본다. 자기가 없는 동안 팀원이 일처리를 잘 안 한다며 한마디 한다. 돌아가면 다 자기 일이란다.


사람에게는 미래의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괴로워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길이니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도 수월할 테고. 어제와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반복 자체보다는 그 대상이 문제다. 먹기 싫은 음식을 매번 억지로 삼키는 기분이다. 헛구역질이 난다. 내일도, 모레도,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계속 다녀야 한다.


괴로움은 침대에서 극에 달한다. 잠들기 전에는 내일 출근할 생각에, 아침에 눈을 떠서는 오늘 출근할 생각에 몸서리쳐진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소리를 질러도 달라지는 건 없다. 5분 후 난 이 침대 밖으로 나가야 하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서야 한다. 추우면 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우면 더워서,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아서 가기가 싫다. 가기 싫은 데 가야 한다. 가지 말까 하는 충동이 잠깐 든다. 아프다고 할까? 교통사고가 났다고 할까? 퇴사할까? 온갖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지하철역 앞이다.


이쯤 되면 산이나 빌딩 위로 빼꼼 삐져나오는 아침해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얼른 사무실로 가라며 재촉하는 듯하다. 이미 30분 전에 울린 알람 덕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침이 기다려지는 삶이란 그저 상상 속에나 있는 걸까?


보통 워라밸 담론 하면 '저녁이 있는 삶'이 대표적이다. 어떻게든 회사의 손아귀에서 빨리 빠져나와 남은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는 움직임이다. 나도 전 직장에서 퇴근을 하자마자 헬스장, 드럼 학원, 카페로 향했다. 칼퇴는 보장된 직장이라 저녁을 한껏 누렸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쓰러져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회사 정문이 보인다. 육성으로 욕이 나온다.


그런데 왜 '아침이 있는 삶'은 누릴 수 없는 걸까? 요즘 유행하는 미라클 모닝 챌린지는 빼앗긴 아침 시간을 찾아오기 위한 몸부림이다. 새벽 4~5시에 일어나 고요한 시간을 한껏 만끽하고 출근하는 식이다. 그러자면 전날 일찍 잠들어야 하고 저녁 시간이 줄어든다. 수면 자체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몸이 버텨낼지 모르겠지만.






사실 줄일 건 따로 있다. 바로 근로시간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1908시간이다. OECD 회원국 중 3위다. OECD 회원국 평균이 1687시간인데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약 27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가장 근로시간이 짧은 독일 국민이 연간 1332시간을 일하는데 일일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72일을 더 일한다.


독일 교환학생을 할 때 3시부터 시작되는 러시아워와, 금요일에 오전 근무만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말이 되면 웬만한 마트나 편의시설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근로자 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작년에 이미 3만 5천 달러를 넘어 4만 달러인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삶의 질이 그만큼 나아졌는지 짚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긴 근로시간이 그 중심에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할 때의 수많은 내홍을 떠올려보면 주 4일 근무제는커녕 40시간 근무제도 요원하다.


근로시간 단축은 경제와 사회가 발전하며 겪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토요일에 출근하는 건 당연했다. 야근도 잦았다. 사무실에 오래 붙어있는 게 회사에 대한 충심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감히 '정시'에 퇴근하는 순간 승진과 인사고과는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근로계약서 상에 명시된 퇴근 시간에 회사를 나서면 '칼퇴'한다는 묘한 수식어가 붙는다. 칼퇴의 영어 표현을 찾아보니 'Getting off without night overtime'이다. 번역하면 '야간 초과근무를 하지 않고 퇴근함'이다. 아마 억지로 의역을 한 듯 싶다.


정시 퇴근을 할 때도 눈치를 봐야 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하는 게 '사내 복지'가 되는 게 현실이다. 전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다. 사원들끼리 모여 불평을 하다가도 항상 "그래도 칼퇴는 할 수 있으니까...."로 끝난다.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아침해를 맞는다. 비타민 D 광합성도 되고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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