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합시다!
이번 주는 조금 바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중간고사도 쳤다.
더불어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원의 지도교수님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직자 특강을 할 기회를 주셔서 나름대로 발표 자료도 만들고 고민도 해가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학생들에게 잘 와 닿을까?
특강 후반에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고민이 됐다.
곧 몇 년 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니 어떻게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지, 어떤 스펙을 어떻게 쌓아야 유리한지, 대외활동과 공모전 등이 서류 검토에서 효과가 있는지.. 이런 내용이 궁금하리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인지도 있는 기업에서 일한 적 없는 내가 스펙이니 취업 꿀팁이니 하는 것도 우스워 보일 것 같아 그냥 조금 먼저 나이 먹은 사람으로써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준비했다.
얼마 전 스타트업에서 짧게 일을 한 적이 있다.
이래저래 근무 전부터도 고민이 많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냥 알바라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다.
스타트업의 특성인지 직원들은 모두 나와 또래거나 나보다 어렸다.
나이가 문제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생각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OO 학교", "OO 회사" 출신 등 개인의 배경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방대를 나온 나는 그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경력이 있고 나이가 많음에도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나는 조금 서러울 뻔 했다 - 어려서 그렇구나 하니 조금 합리화가 됐다.
자연스레 경력 이야기를 하게 되어 외국계를 다녔었다고 하니 한 직원은 나에게
"영어는 좀 해요?" 라며 내가 우습다는듯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뇨. 못해요."라고 웃어 넘겼다.
이전 직장에서 나는 인도, 영국, 미국 등 영어권 또는 영어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국가에서 교육을 받은 국가 태생의 팀장님과 협업 했고 대부분의 업무를 영어로 진행했지만 이 이야기를 그들에게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시각에서 많이 놀랐던 점은 그들은 출신 대학, 회사들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명문대, 대기업 출신의 사람을 깎아 내릴 마음은 전혀 없다.
내가 주위에서 본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매우 성실하며 똑똑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항상 의문을 가지는 점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의 능력을 대학 순위와 학점, 기업 순위와 직책으로 줄 세울 수 있을까?
채용을 하는 입장에서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관습적인 판단을 벗어나 기업에 잘 맞고 뛰어난 성과를 내는 인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인재의 개념이 점점 더 심층적으로 연구되고 다각화 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블라인드 채용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편향된 사고를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20대의 젊은 세대가 그 사람 자체 보다 배경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금 20대는 개성이 강화된 개인화 사회가 아니었나? 그들은 왜 어떤 프레임에 본인을 가두려고 하는가?
스타트업의 직원들이 소위 명문대를 나왔기 때문에 그들은 더 그런 경향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짧지만 그곳에서 일한 동안 나는 '참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위를 쳐다보며 사는구나'와 '나이와 상관없이 특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본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특강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가장 최근에 한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려는 내 메세지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주 짧지만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친절은 돈이 들지 않으니 친절하라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 직업을 가지는 것과 별개로 우리는 인간적으로 성숙할 필요가 있다.
◈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탓할 필요는 없다. 그는 그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친절하세요.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라는 말을 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알바를 전전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말 밖에 해 줄 수가 없다.
사회 생활 후에 남은 깨달음도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과 최대한 타인을 이해하고 친절하자는 것 밖에는 없다.
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 탐색에 대한 이야기를 할 처지가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일 동네 김밥집이랑 카페 알바 면접 보러 가는데.. 학생들이 이런 사람에게 경험을 듣고 싶어할지..
물론 알바 하는 건 학생들에게는 비밀이다. 어릴수록 있어 보이는 걸 좋아하니까 말이다.
돌아 보면 그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대표도 단순히 있어 보이는 게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있어 보이는 게 좋다. 나도 폼 나는 걸 하고 싶다. 그래서 대학원도 다니는 거다.
하지만 요즘은 김밥을 만들든 커피를 만들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폼 난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다 멋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친절에 대한 이야기를 뜬금없이 했던 것 같아서 덧붙이자면 친절한 게 제일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고 이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 기분 좋게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들고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급하게 길을 가다 나와 부딪혀서 커피를 내 옷에 모두 엎질렀다. 부딪힌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떠나버렸고 나는 좋은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당연히 굉장히 화가 날 것이고 부딪힌 사람의 뒤통수에 소리를 지르고 싶을 것이다.
근데 사실 그 사람의 부모님이 갑자기 위독하셔서 급하게 병원을 가고 있었던 거라면?
우리는 쉽게 그 사람을 원망하고 욕을 퍼부을 수 있을까?
영상을 보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 건지 다른 사람이 불편한 행동을 할 때 속으로 욕을 많이 했었다.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간섭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언짢을 때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영상의 이야기를 조금 더 확대해서 적용해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에는 성장 환경이 되었든 상황이 되었든 이유가 있고 꼭 악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타인을 평가하는 내 잣대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하고 건방진 잣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겸손하라고 하셨는데 이런 뜻이었나 싶다.
겸손하자. 친절하자. 이해하자.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노력은 하지만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 나는 대로 일기처럼 글을 적었는데 마무리를 하자면 학생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친절하세요. 친절은 돈도 들지 않고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만족도 온답니다.' 같은 말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다.
순수한 악인도 존재하는 치열한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메세지라 그냥 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도 바뀌겠지.
그래도 '절대 친절하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테니까.. 영 헛소리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 만약 생각이 이렇게 바뀐다면 많이 슬플 것 같다.
친절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