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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Sep 13. 2023

새로운 학습에 저항하는 사람

학습을 학습해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 고쳐 쓰는 것 아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때론 틀리기도 하다.


대개 20세 전후의 성인이 되면 저마다 살아오면서 겪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인생관, 세계관이 형성된다. 독특한 성격과 개성을 갖게 되고 고유한 습관이 만들어 진다. 빅데이터로 학습시킨 나름의 알고리즘이 뇌에서 자리 잡고 가동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한번 자리 잡은 알고리즘을 업데이트하고 고도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종류의 더 많은 또는 더 충격적인 학습데이터로 엎어 쳐야 이 알고리즘이 바뀌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빅데이터의 역설인 것이다. 결국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골린이 시절 잘못된 스윙 플레인이나 스윙패스가 자리 잡게 되면 슬라이스나 뒤땅으로 고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수정하려면 그때까지 연습한 스윙보다 제대로 된 스윙으로 더 많은 스윙을 해야 고쳐진다는 속설이 있다. 한번 잘못 자리 잡은 알고리즘을 바꾸려면 지금까지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노력, 경험, 정보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보면 조금씩 삶의 경로를 수정하며 바꿔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속적인 학습과 수용을 통해서 알고리즘을 계속 업데이트해 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잘 수용하는 사람들이고 학습의 긍정적 효과를 내면화한 사람들이다. 새로운 데이터와 경험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사람은 업데이트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지적 에너지와 노력, 시간을 흔쾌히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큰 투자와 노력이 들어가는 알고리즘의 레노베이션이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튜닝하면서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수정해 나갈 줄 안다. 그래서 업데이트에 힘이 덜 든다.


반면에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을 아예 거부하는 습관 또는 정서를 가진 유형의 사람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첫 번째가 어린 시절에 학습 즉 뭔가를 배운다는 과정을 내면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책이나 강의, 강좌를 통해 배우든, 스승이나 선배를 통해서 배우든 뭔가를 체계적으로 배운다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반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지식 또는 지식인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청소년기에 어떤 이유로든 학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면서 지적인 열등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지식 또는 지식인에 대한 공격성까지 갖게 된 사람이다. 이런 부류는 지식인이나 학자, 배운 사람의 사소한 약점을 찾아내서 조롱하고 공격하기를 즐긴다. 결국 대개는 한평생 본인이 청소년기에 장착한 단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단 한 번의 업데이트도 없이 무모하지만 직진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에 빠져버린 확신범 유형이다. 특정 종교나 정치, 사상 등 특정 주의나 주장에 완전히 빠져서 다른 시각이나 배움을 거부하는 배타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본인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해서 자신의 믿음과 알고리즘을 강화하고 이 알고리즘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오류로 반환해 버린다. 결국 이 부류도 자신의 사고관이나 세계관을 업데이트하거나 수정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세 번째는 체력이나 지력이 많이 떨어진 노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실 새로운 정보나 생각, 견해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에너지 즉 뇌 활동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에너지 생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노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지력과 체력 등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기본적인 생존에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에너지를 낭비(?) 하기 싫기 마련이다. 품위 있고 업데이트 가능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도 건강은 필수...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는 아집에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거부하고 공격성까지 내보이는 노인. 세 가지 유형이 합쳐진 사람을 본 적 있다. 그의 주변엔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이 왜 세상에서 고립된 것인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세상과 주변만 원망하고 한탄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새로운 정보를 잘 수용하고 새로운 학습이 자연스럽게 잘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학습이 잘 일어나지 않는 위에 든 세 가지 유형의 고집불통도 있다.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학이시습지 불역역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무언가를 배우고 때에 맞게 그것을 익힌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도, 문화도, 트렌드도 변한다. 가치관도 변한다. 그것도 아주 빠른 주기로.


100세 시대이고 평생학습의 시대이다. 자신의 삶을 업데이트할 의지와 건강을 갖고 살아야 하는 시대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이 맞다면 쉽게 수용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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