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가난선언4 07화

당신은 계획적인 휴먼입니까?

삶을 체계화하는 도구

by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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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가장 무서운 점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월요병, 타인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막연함 등이 그렇다. 이런 것들을 실체화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노트에 작성하는 것이다. 그림은 재주가 필요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게 우리가 기록을 해야 하는 이유다. 기록하면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상상이 실체화되어 확정되는 순간이다.


최초의 인류는 약 30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전해진다. 최초의 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쐐기 문자이며 3500년 전에 출현했다. 299만 년 하고 6500년 동안 거의 아무런 발전도 없던 인류는 고작 3500년 만에 아이폰을 만들고 전기차를 만들고 우주왕복 로켓을 만들었다. 문자와 기록 덕분이다.


글쓰기는 생각의 마감이다. 글을 쓰면 생각을 정하게 된다. 그렇게 정한 생각들은 정리하면 새로운 마감이 된다.


기억력은 점점 퇴화된다. 가끔은 오늘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3일 전에 운동을 했던가? 이번달 4번의 일요일에 나는 무엇을 했고 몇 시에 기상했을까? 이런 개인적 히스토리는 기록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과거의 내 행적을 알 길이 없으니 반성할 길도 없고 고칠 수도 없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 종이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적어도 책꽂이에 꽂힌 책은 읽었다는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육공 다이어리 덕분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종종 썼다. 솔직히 글 쓰는 게 좋은 게 아니고 육공 다이어리가 가지고 싶었고 기왕에 가진 거 꾸미고 싶었던 것 같다. 글쓰기가 아니라 다이어리 꾸미기가 하고 싶었던 듯하다. 근데 나는 꾸미기에는 소질이 전혀 없다. 글씨도 진짜 못생겼다. 그럼에도 뭔가 쓰는 것에는 어릴 때부터 싫어하지 않았다. 1년짜리 육공 다이어리는 단 한 번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늘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나는 스스로를 잘 알기에 플래너가 없는 일기장을 쓰기 시작했다. 100페이지 정도 되는 일기장을 다 채우는 데는 길게는 4년 정도도 걸렸던 것 같다. 또 어떨 때는 100일 만에 채우기도 했는데 그때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매일매일 즐겁게 기록했다. 역시 글쓰기의 최고 뮤즈는 연애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입대했을 때에는 수양록이란 걸 나누어준다. 군인 일기 같은 건데 결국 전역 전날에 수양록을 완성했다. 수양록을 완성한 사람이라면 진짜 글 좀 쓰는 사람들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30대 초반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첫 유럽여행 블로그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조금씩 글을 쓰고 있는 게 지금까지 발전해오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정말 많은 에세이스트를 양성해 낸 최고의 글쓰기 학교다. 그리고 양질의 에세이스트들은 이제 그 무대를 카카오 브런치로 터전을 옮겼다.


그 사이 우연히 불렛저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자유도 높은 직접 꾸미는 다이어리라니 흥미로웠다. 마침 한참 재미 붙이고 있는 만년필로 글씨 쓰기에도 적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불렛저널을 시작했고 이제는 플래너와 다이어리의 차이를 이해하고 계획하기의 중요도를 인식하며 꾸준히 계획을 세워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있다. 이 기록하기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다.


불렛저널


불렛저널은 라이더 캐럴이라는 adhd 환자가 자신의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해 낸 플래너다.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다이어리를 직접 만든다는 것과 불렛이라는 기호를 사용해서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 식사 등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단점은 이 직접 만든다는 것인데 불렛저널의 원래 의도인 직관적인 계획 실행보다 불렛 저널 꾸미기 일명 다꾸 쪽으로 빠지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이다.

불렛저널의 가장 큰 장점을 하나 꼽자면 바로 마이그레이션이라는 시스템이다. 가장 어려운 개념이기도 했지만 결국엔 이 마이그레이션이 불렛저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개념을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절대 하지 않을 일에 미련을 두고 생각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0년째 진행 중인 다이어트나 이번주에는 반드시 하겠다고 마음먹은 유튜브 촬영 등이 그렇다. 10년째 하지 않는 다이어트는 11년째도 안 하기 마련이다. 이때 마이그레이션은 우선 다이어트라는 항목 자체를 내년으로 이주시켜 버릴 수 있다. 그럼 적어도 올해는 다이어트를 완전히 잊고 그 시간에 다른 것에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 아무래도 3개월 간은 유튜브 촬영은 하지 못하고 지금 에세이 쓰기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마이그레이션 해서 3개월 뒤까진 유튜브 촬영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지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불렛저널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일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게 핵심이다.


그 밖에 마음 목록표 (mental inventory)를 작성한다거나 월말 성찰(reflection)을 통해 진짜 신경 써야 할 중요한 일들과 그렇지 않은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 그게 바로 프랭클린 플래너의 타임 매트릭스 시스템이다.


프랭클린 플래너


프랭클린 플래너는 할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중요도와 긴급도에 따라 4개의 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서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피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에게는 총 네 가지의 가치가 있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다. 그리고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 있고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있다. 이 네 가지 요소 중에 중요한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시각화시킬 수 있는 게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다.


이렇게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활용하면 할 일의 중요도를 미리 선정해서 매일 가장 중요한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시스템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가장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시간을 빨리 흐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PDS 다이어리


PDS 다이어리는 한국의 스터디언이라는 단체가 새롭게 론칭한 시스템이다. PDS는 계획 세우고 실천하고 피드백하자는 것인데 핵심은 이 세 가지를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다. 어물쩡 넘어가지 말고 명확하게 할 일을 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실행에 옮기거나 옮기지 못했다면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인 피드백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Pds 다이어리의 가장 큰 힘은 10분 단위로 내가 뭘 했는지 기록하고 내가 얼마나 낭비가 심한지 비주얼 쇼크를 준다는 것이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매우 가치 있는 시스템이다.


만다라트


오타니 쇼헤이라는 일본의 야구선수가 만든 만다라트 계획법이라는 것도 있다. 성취하고 싶은 목록을 정사각형 9칸을 만들고 각 9칸에 다시 8개의 구체적인 목표를 적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위한 계획을 도식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신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툴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플래너가 공통적으로 룩포워드 즉 한해를 계획하는데 만다라트 계획표는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준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 플래너들이 추구하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내 인생에 진짜 중요한 일들을 긴급도에 따라 실행에 옮기되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만 발전시킬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삶을 체계화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한 모든 시스템의 장점들만 뽑아서 나는 나만의 플래너를 쓰고 있고 지금도 진화 중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각각의 플래너가 형식을 갖추고 판매 중이지만 내가 미도리 노트라는 점 선 지를 사용해서 일일이 불렛저널 형식으로 만들어서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부자들의 시간관리에 뛰어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운전하는 시간이 아깝지만 아직 운전기사를 고용할 정도는 아닌 어떤 사업가는 택시를 이용한다고 한다. 벤츠 정도의 차의 한 달 리스료를 생각하면 택시비의 따따블을 줘도 돈이 남을 것이다. 음주운전 같은 거도 절대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


다이어리와 플래너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다이어리는 과거를 회상한다는 점이고 플래너는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이어리만 쓴다면 반성하기엔 좋지만 미래가 없다. 반대로 플래너만 쓴다면 반성이 없기 때문에 반쪽짜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저널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합치는 것이다.


어떻게든 직관적으로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시스템을 이용하는 나는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진짜 다 알겠는데 돈 버는 방법만 모르겠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기해선 안된다. 내 안의 준칙이 요구하는 대로 꾸준히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관리를 하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부자와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그들과 나의 자동차 브랜드는 다르지만 하루를 밀도 있게 사는 건 같으니 적어도 그들이 나의 삶을 평가한다면 결코 쉽게 살았다 보진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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