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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Jan 08. 2024

화풀이


 제임스 조임스의《더블린 사람들》의 단편 『맞수들』에는 말단 사원인 패링턴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린 패링턴은 홧김에 시계를 팔아 기분 좋게 술을 마신다. 하지만 술집에서 삐쩍 마른 애송이와의 팔씨름에서 두 번의 굴욕적인 패배를 한다. 술을 진탕 퍼마셨지만 취하지도 못했다.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은 그는 분노에 찬 채로 집으로 돌아간다. 어린 아들이 웃으며 반겨주지만 화롯불을 꺼트렸다는 이유로 아들을 때린다. 아들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지만, 패링턴은 멈출 생각이 없다. 


 화풀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또한 그전에 포유류의 본능이기도 하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 싸움에서 패배한 후 만만한 개체를 공격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지위가 높은 녀석에게 맞은 일본원숭이는 1분 안에 다른 원숭이를 공격한다.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도마뱀이나 덤불에게 소리를 지르며 위협한다. 무생물에게라도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고릴라, 개, 고양이, 심지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인 동물에게 화풀이란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이번에 지기는 했지만 또 패배할 만큼 호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립적인 의미에서 보면, 당하는 입장보다는 괴롭히는 입장이 낫다. 고통을 감내하기보단 유발하는 게 낫다. 누군가에게 갚아주지 않는다면 다음 대상은 내가 된다. 착취하거나 약탈하기 쉬운 대상으로 낙인찍힌다면 미래는 없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들은 죄 없는 대상에게 화풀이를 한다. 유인원인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잠시 생각해 보자. 화가 나면 왜 탁자를 쿵 내려치거나 문을 쾅 닫는 걸까. 핸드폰을 집어던지거나, 괴성을 지르며 욕을 하는 이유는. 답답하거나 멍청한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을 탓하며 머리나 몸을 때리는 건?


 목표는 어떻게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행동을 통해 방출되어야 한다. 이를 특정-활동 에너지 모델(Action- Specific Energy) 또는 유압식 모델(Hydraulic Model)이라 부르는데, 동물행동학자들은 화풀이의 생물학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Dr. 영장류 개코원숭이로 살다》라는 책에서도 다음과 같은 사례가 나온다. 


"화가 난 한 개코원숭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젊은 수컷을 발견하자 곧 공격한다. 수컷이 암컷에게 돌진한다. 암컷은 어린 개코원숭이를 때린다. 어린 녀석은 갓 태어난 새끼를 때린다. 
이 모든 일이 15초 만에 일어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부장님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날엔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한다. 여자친구의 표정이 안 좋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자신이 화풀이의 대상이 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서다. 


 고통은 전염성이 있다. 응축되고 묵은 분노는 항상 만만한 대상을 찾아다닌다. 우리 모두 경험과 직관을 통해 알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모욕받고, 사람에게 상처받은 부모는 배우자나 자식을 학대한다. 그렇게 자란 자식 역시 어른이 되어 자기 아이를 때린다.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 민족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유대인은 가자지구에 폭탄을 쏟아붓는다. 팔레스타인은 시내 한복판에 자살 테러를 일으켜 보복한다. 대지진으로 손주를 잃은 일본인 할머니는 조선인의 시체에서 눈알을 파낸다. 갑질을 당한 한국인은 진상 손님이 되어 배로 갚아준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한술 더 뜬다. 그는 화풀이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부른다. 사회는 이 '희생양'에 의해 유지된다. 고통과 사회적 긴장이 임계치에 도달하면, 탓할 대상을 만들어내 본보기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희생양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 떠나보내는 것처럼, 사회 역시 희생양에게 고통을 전가하며 존속해 왔다는 것이 지라르의 요지다. 모든 종교나 신화, 문학 작품에는 희생양 만들기가 은유적으로 숨어있다. 


 중세의 마녀 사냥이 대표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녀 사냥은 기독교가 약해지던 중세 말기에 극성을 부렸다. 종교적 권위의 붕괴와 근대 사회의 태동이 사람들에게 불안을 야기했기 때문이었다. 



화풀이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너무 당연하기에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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