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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Feb 04. 2022

혼자 걸을 때

혼자 저녁을 먹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문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 걷거나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빨리 걷고 빨리 먹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 없이 그저 자신의 속도에 맞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렇게 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꼭 그럴 것도 아니었다. 


혼자 있을 때에 밀려 들어오는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빨리 넘겨버리게 만든게 아닐까 싶었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는 그 시간이 아쉬워 서로 걸음을 느리게 걷는 것 처럼 말이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 그 시간을 괴로워하고 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을 겪으며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외로움에 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밀려오는 불안감과 공허함을 어떻게든 다른 무언가로 채우기 위해 항상 움직여야만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게 어려웠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뭐든지 혼자서 하게 되면 여유로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혼자서 일을 여유롭게 하는 것은 일이 적거나 내가 게으름을 부리고 있을 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개 혼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시간이 촉박하지 않은 이상 설렁설렁 처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남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지지만 점점 배려를 잃어간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는게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공부하고, 글을 쓰고, 사역을 준비한다. 교회에서도 비대면 예배가 길어지는 만큼 텅빈 예배당에서 카메라를 켜놓고 홀로 예배를 드린다. 


어설픈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피드백을 할 시간이 많아진 것은 좋다. 나를 가꾸고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나의 일들을 완성시켜나갈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을 듣는 것은 어려워졌다. 


연애를 할 때는 특히 모든 일을 둘이서 했기 때문에 모든걸 여자친구의 속도에 맞췄다. 답답하지만 천천히 걸었고, 여자친구의 그릇이 비어가는 속도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이건 직장 생활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함께하다보니 조금씩 일상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느것이 더 여유가 많고 적고를 따지는게 아니라 시간을 천천히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함께였기 때문에 그 시간들이 마냥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 시간을 오롯히 혼자 보냈다면 밀려오는 무료함에 반쯤 미쳐버려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나를 늦추는 법을 배운다는게 아닐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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