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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규김 Jun 24. 2022

옛날이 그리운 마음

사람 냄새 풍기던 그 시절

요즘은 가끔 "그때가 좋았지..." 하는 말을 듣는다. 한국이 아직 완전히 현대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생일엔 햄버거 가게에서 파티를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퇴근길에 사 오시던 양념 통닭을 기다리던 이 시대 청년들이 유년기를 보낸 시절이다. 


우리는 그때의 가난을 그리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은 낙관적인 분위기가 살아있었고, 사회적인 상호 신뢰가 아직은 남아이었을 그런 시절이었다. 문이 잠겨있으면 동네 아는 집에 찾아가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고, 예고 없이 찾아간 친구의 집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을 얻어먹고 나오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낡은 공 하나를 가지고 아이들은 마을 회관 앞에 모였고, 골목을 돌며 술래잡기를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라고 안 좋은 일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젠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단절된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한다.


막연히 꿈만 꾸어도 가슴이 부풀어 차오르던 그 시절에 이젠 기억도 다 남지 않는 추억을 만들었다. 시골 마을에 찾아오던 학교 버스 아저씨는 항상 오분쯤 기다리며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형누나들이 있었고, 구석에 숨어 부모님 출근 시간을 기다리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차에 타서 학교에 오고 싶은 날에는 그렇게 기다리를 버스를 외면하고 담장 아래 쭈그려 앉아 개미의 행렬을 보며 시간을 죽였다. 


그때는 낭비할 돈은 없었다. 기껏해야 백 원짜리 한두 개 들고서 문구점 옆 오락기에 옹기종기 모여 게임을 하던가 백 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서 놀이터에 모여 도둑잡기를 하던 아이들 뿐이었다. 우리가 낭비할 수 있는 건 시간과 체력뿐이었기 때문에 근심 없이 놀 수 있었다. 배가 고파지면 집에 돌아가 엄마를 찾고,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로 잠에 들면 아침에 나를 찾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일어날 수 있었다. 


사람 냄새가 나던 그때가 우리에겐 그리운 순간이었다. 이미 갖은 질고를 견디며 어른이 된 사람들은 매를 맞아 울어도 한 시간이면 털고 일어나 해맑게 웃을 수 있던 그때의 체력을 잃어버렸다. 마음은 이미 지쳐서 아프지 않지만 다른 기쁨도 쉽게 느끼지 못하는 헤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받아들이며, 염려는 하룻밤이면 잊어버릴 수 있었던 그때의 우리는 낭만이라는 게 남아있었다. 그 시절처럼 사람 사이가 가깝던 때가 그리움으로 떠오르면 한 번쯤 오늘을 돌아보게 된다. 서음없이 다가갈 수 있던, 계산 없이 함께할 수 있던 그때가 사람다운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너무 많이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지금은 사람 하나도 맘 편히 곁에 둘 수 없는 외로운 시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이렇게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고, 누군가 내 마음에 다가와 안길 수 있다면, 다시 한번 그때처럼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기대해왔다. 여전히 사람이 사람의 글을 찾는 건 그 마음속에 뜻 모를 외로움이 궁금함을 만들어 배회하게 만들어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손을 내밀기보다 글을 내미는 게 더 가까워진 이 시점에서 나는 타자를 두드리며 또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그리운 그날처럼 내 마음에 기대어 쉬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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