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배운 결혼생활 지속의 원동력

by 글쓰는 외과의사

20-30대 남녀에게 연애란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이 어떤 때는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 무슨 원동력으로 결혼을 하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하는 것인지. 혼자서 고민해보고 또래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답은 쉽게 내릴 수 없었다. 과연 답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며칠 전 마취과 교수님과 레지던트의 대화가 우연찮게 귀에 들어왔다. 누군가 본인과 동일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그 소리가 작더라도 본인에겐 크게 들리는 법이다. 마취과 교수님은 곧 은퇴를 앞두고 계셨고 레지던트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였다. 수술장 커튼 뒤에서 교수님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원동력에 대해 얘기하셨다.

"너네는 어리니까 사랑하면 평생 같이 살 거 같지?"
"네 그런 거 아닌가요 ㅎㅎ"
"그래 너네 나이대는 좋으면 같이 살고 싶고, 결혼하고 싶고 그럴 거야. 근데 살아보면 절대 그걸론 평생 살 수가 없어."
"그럼 뭐로 같이 사는 거예요?"
"짠함이지~ 같이 살다 보면 각자 부모님 돌아가시고, 한 명씩 번갈아 아프고, 그러다 보면 짠해~ 서로를 짠하게 느끼다 보면 서로가 서로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도 그렇게 결혼생활을 30년째 하고 있는 거야."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도, 책에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대답이었다. 새로운 관점이었다. 수술 전에 들은 작은 대화 소리가 수술장에서 나올 때는 머릿속에서 꽤나 크게 맴돌았다.

어제는 병동에서 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위암 수술을 한 할머니였다. 다음날 퇴원 예정이었던 할머니는 회진 시간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내가 퇴원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랑가?"
"가벼운 산책이나, 집안일 정도는 살살하시면 되죠."
"아니 우리 바깥양반이 허리가 주져 앉았다고, 수술해야 한다고 입원해 있는디 병간호는 어뗘?"
"아니, 본인 지금 암 수술하고 이제 일주일 됐는데 누구 병간호를 해주시겠다는 거예요. 식사 잘하시고 집에서 잘 쉬어도 모자라실 판이신데."
"바깥양반 수술은 어쩌지.."

할머니는 위암, 할아버지는 척추 압박 골절. 노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질환을 앓고 있었다. 몸이 성치 않아도 할아버지를 챙기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과연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까. 문득 마취과 교수님이 말씀하신 '짠함'이 떠올랐다.



결혼 후 몇십 년을 한 사람과 살 수 있으려면 어떤 덕목이 필요할까? 성인이 되고 난 후 답을 못 내린 가장 어려운 물음 중 하나였다.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고, 웃음코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우정 또는 의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는 각 시기마다 중요한 요소들이 다르고, 한 가지 명확한 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배운 '짠함'이라는 감정은 생각해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항목이었다.

이 사람이 짠하고, 이 사람한테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짠함'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느끼는 동정심이 아니다. 삶의 굴곡을 함께 견딜 때 찾아오는 감정이 '짠함'이다. 가족의 연을 맺으면서 부부는 많은 happening을 같이한다. 함께 역경을 견디고, 함께 슬픔을 이겨낸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현실적 이유들로 다투기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에게 '짠함'을 느낄 때, 끝까지 함께 시련을 견뎌나간다. 그리고 서로가 함께였다는 안정감과 함께였기에 이겨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게 또 한 번 부부의 관계는 연장되고 단단해진다.

즐거운 순간을 함께 하기보다, 힘든 순간을 함께 견디는 과정이 남녀의 관계를, 그리고 부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연애도 결혼도, 오늘도 상상만 하는 전공의의 병원에서 배운 결혼생활 지속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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