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마다 파트가 바뀌다 보니, 거의 매달 회식 자리가 있다. 교수님과 전공의만 자리를 가지는 달도 있고,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대대적으로 회식을 하는 달도 있다. 사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 회식은 항상 부담스럽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좋지만, 직장 상사와 직장이 아닌 곳에 대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개인의 시간이 중요시되는 시기엔 모두가 참석 가능한 회식 일정을 잡기도 어렵다.
1년 차 때는 코시국이라 회식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점이 좋기도 했다. 퇴근 후의 시간이 자유로웠고, 어려운 술자리에서 맛없는 술을 마실 필요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술은 주종보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술맛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어려운 교수님들, 낯선 펠로우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긴장한 탓에 술맛을 느낄 새도 없었다.
2년 차가 되자 조금씩 거리두기 규제가 없어졌다. 그동안 비축해놓은 회식비로 여러 파트에서 회식 자리가 생겨났다. 자리의 이름도 많았다. 연차 별 회식, 파트 별 회식, 외과 전체 회식 등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었다. 애매하게 행사가 겹치는 달엔 한 달에 2-3번씩 회식이 생겼다. 3월에는 외과 입국 후 첫 회식인 탓에 처음엔 신기했다. 회식 때 먹었던 고기도 좋았고, 병원 외적인 얘기를 하며 친해지는 자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자리가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긴장한 탓에 술기운은 항상 회식이 끝난 후에 올라왔다. 다음날의 피곤함도 회식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한 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달의 회식은 달랐다. 평소 부족한 노티도 친근하게 받아주시던 중환자 파트 교수님들 덕에 회식 자리는 시작부터 편안했다. 병원 얘기뿐 아니라, 개인적인 얘기까지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다들 고기 값보다 술 값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목적 아래 열심히 먹고 열심히 마셨다. 하하호호 사담을 나누는 와중에 순간순간 기억에 남는 말들도 있었다.
"operator 입장에선 수술하면서 assistant 가 정말 중요하지. 다음에 하려는 걸 assistant가 미리 알고 잡아주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 그 순간에 희열을 느낄 수 있어."
중환자의학과 대장 교수님의 말씀이셨다. 수술장에선 항상 assistant를 하다 보니 내 생각은 assistant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혼이 나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큰 소리가 안 나고 수술장을 나올 수 있을지.'만 떠올렸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과의 의사소통은 뒷전이었다. 그럴수록 assistant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소극적으로 한정지었고, 교수님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매일 수술장을 가더라도 편할 리가 없었다.
수술에 대한 operator의 입장을 떠올려 본 적은 처음이었다. 수술을 통해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덕분에 앞으로의 수술장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야 할지 알게 되었다. '교수님한테 방해 안되게, 어떻게 하시는지 잘 봐야지.'가 아니었다. '이 환자 케이스를 교수님이랑 같이 잘해봐야지.'란 마음가짐은 아마 앞으로 남은 수련 기간에 수술장에 더 나은 배움을 가능케 할 것이다. 나중에 분명 operator 입장에서 또 다른 assistant를 볼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떤 assistant와 어떤 무언의 대화를 하게 될지.
다음날 hangover가 이렇게 마땅한 회식은 오랜만이었다.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고, 감사한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이렇게 회식이 좋을 때도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