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중환자실 인턴의 귀환
찰나의 순간에 느낀 세월과 인연의 힘
매달 첫째 주 병원 스테이션은 분주하다. 전공의들은 물론, 여러 선생님들의 파트가 바뀌는 주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첫날은 더욱 부산스럽다. 낯선 얼굴들과 나누는 어색한 인사와, 익숙한 얼굴들과 나누는 반가운 인사 덕분에 아침은 한층 더 시끌벅적하다. 그리고는 스테이션의 컴퓨터 비밀번호는 무엇인지부터, 회진 시 브리핑 위치는 어딘지. 머쓱하고 조심스러운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3일간의 긴 연휴가 끝나고 10월의 첫 업무 시작인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3월에 한 달간 근무했던 암병동 중환자실 두번째 근무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두번째라 그런지 조금은 편했다. 낯익은 간호사 선생님들과 안부 인사를 나눴고, 중환들로 둘러싸인 스테이션이 이전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 회진 브리핑도 마찬가지였다. 이곳 중환자실 아침 회진은 팀으로 돈다. 교수님, 전공의 2명, 펠로우 선생님 1분, 약사님, 영양사님, 수간호사 선생님, 파견의 등등 6-7명이 함께 회진을 돈다. 3월 첫날엔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벌벌 떨며 회진 브리핑을 하였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오늘은 그래도 한결 나았다. 이런 것이 '짬'이 누적된다는 것일까.
두 번째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10월 첫 주, 첫날이었다. 괜히 더 정신이 없었다. 새벽 6시부터 준비한 회진은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한숨 돌리려는 찰나, 낯선 타과 펠로우 선생님 한 분이 걸어오셨다. 회진을 끝난 것을 확인하시고는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전 우리 병원에서 인턴을 했던 분이었다. 마침 중환자실 인턴을 했었고, 교수님이 챙겨주시고 회식도 불러주시며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교수님도 얼굴을 기억하셨다. 12년 전 일이었다. 한 달간 근무했던 중환자실에서 보았던 교수님을 12년 만에 다시 본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환자실 인턴 선생님은 내과 전공의를 수료하고 신장내과 전문의가 되어 펠로우 기간까지 거친 후 다시 조교수로 돌아왔다. 그리곤 교수님에게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달라는 인사와 함께 본인의 업무로 돌아가셨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세월과 인연의 힘이 느껴졌다.
인턴과 내과 조교수의 지식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환자를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특히 세부 전공을 가진 내과 전문의 선생님들과 얘기를 해보면 가지고 계신 지식을 훔쳐오고 싶을 정도이다. 외과를 전공하고, 중환자의학은 전공하신 교수님도 신장(kidney)에 관련하여서는 신장 내과 조교수님의 의견이 필요할 때가 있다. 12년의 기간 동안 꾸준한 수련으로 지금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된 것이다.
교수님에게는 매달 거쳐가는 '인턴 선생님 중 한 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12년 전 인턴 선생님에겐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잘 챙겨주신 기억에 남는 '한 분의 교수님'이었을 것이다.
'인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이다. '이것도 인연인데-'로 시작하는 말처럼 보통 이 단어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반대는 '악연'이다. 사실 '관계'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이 시간에, 지금 이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관계'가 후에 '인연'으로 돌아올지 '악연'으로 돌아올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그 관계의 행로는 결정된다.
인연은 우연히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연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12년 전 교수님이 인턴 선생님을 존중해 준 결과, 지금은 동료 교수로 환자를 함께 보게 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인턴 중 한 명으로 거들떠 보지도 않았더라면, 지금은 서로 모르는 직장 동료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지금껏 나와 마주쳤던 많은 인턴 선생님들에게 나는 어떤 전공의이었을지. 앞으로 교수님들에게는 또 어떤 전공의로 기억에 남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10월의 첫 회진 후 쌀쌀한 아침 퇴근길.
다시 찾아온 중환자실의 새벽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