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는 석사 1년 차가 되기 전에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던 막냇동생이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외국어대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오기로 하면서 방이 더 필요해진 것도 있었고, 좁은 원룸 방이 슬슬 답답해진 데다 가장 큰 이유는… 바퀴벌레가 줄줄이 출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으악)
서둘러 일본 UR공단에서 임대하는 아파트 단지를 알아봤다. 공단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지역 별 아파트 단지의 공실 및 평면도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나는 학교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어도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동네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했다. 선착순으로 입주자를 받기 때문에 부지런히 공실이 나왔나 확인했었다. 기다림 끝에 내가 원하는 평수의 집이 나와 곧바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는 며칠 후 기쁜 마음으로 집을 보러 갔다. 내가 보러 간 집은 2DK 집이었다.(2는 방이 2개, D는 Dining, K는 Kitchen으로 식사할 공간이 있는 부엌) 관리는 잘 되어 있었고 공단에서 보증하는 집이었기에 크게 고민할 것 없이 곧바로 계약했다. (추진력이 상당했구먼.)
우르르 떼로 몰려다니는 1mm 정도 되는 크기의 새끼 바퀴벌레들까지 눈으로 직접 본 뒤로 찝찝하기만 했던 기숙사를 뒤로 하고 나는 얼마 후 새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 전에 중고샵에 가서 침대, 에어컨, 라디에이터, 고다츠, 세탁기, 냉장고 등등 큰 살림살이를 한꺼번에 구입했다. 동네에 중고샵이 두세 군데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더 좋은 물건 없나 여러 번 오고 갔다.
그 아파트는 사는 내내 사람들이 과연 살기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막한 곳이었다. 가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 꼬마 아이와 같이 내려오는 젊은 엄마와 몇 번 마주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이사 간 집은 발코니로 나가면 전철 지나가는 게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잘 보이는 집이었는데… 살아보니 아침 5시만 되면 덜컹덜컹거리는 전철 소리에 잠이 깨버려서 지금이라면 선택지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집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아침 5시에 늘 눈이 떠지면서도 그럭저럭 잘 적응하며 살아갔더랬다. (아니다.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
모시모시~(여보세요) 사장님 에어컨에서 물이 새요~~
설치했던 에어컨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길래 중고샵 사장님께 전화해 조치를 취한 거 말고는 크게 손 볼 곳 없는 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단에서 관리하는 아파트라 전 세입자가 퇴실하기 전 집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수리할 곳들을 체크하고 그 세입자에게 청구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앞으로 2년 내가 살 집이구나~
타국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집을 구하고 이삿짐센터에 의뢰하고 이사라는 임무를 완수하니 뿌듯했고, 집에 대한 애정도 덩달아 샘솟았다. 그 뒤로 한동안은 집 꾸미기에 혈안이 되기도 했었다. 커튼도 직접 천을 사다가 만들기까지 했으니!(물론 일본에서 파는 커튼값이 비싸서 그랬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마트, 잡화점, 사진관, 서점과 다이소가 있는 3층짜리 쇼핑몰이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전철역, 한 정거장만 가면 멋진 동네 마쿠하리와 아울렛이 있는 데다 자전거로 10분쯤 가면 해변이 있고 봄에는 꽃도 많이 피어 예뻤던 동네.(이렇게 써 놓고 보니 굉장한 동네 같군.)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석사 1년 차와 2년 차에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으윽. 내 인생 최대의 암흑기는 그렇게 스멀스멀 엄습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