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의 일각
첫째 택이는 아기였을 때부터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다. 택이는 늘 낯선 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빙어하며 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애썼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 이모 삼촌들이 택이가 귀여워서 다가오다가도 아이의 날선 모습때문에 뒤로 물러나기가 일쑤였다.
보통의 아이들보다도 더 날카로운 택이를 보자면 내 안에는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태교를 잘못했나?’
‘임신 기간동안 남편과 많이 싸워서 아이가 저렇게 뾰족한 걸까?’
태교의 영향이 있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둘째 셋째가 태어나고 그들이 택이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으며 굉장히 온순한 모습들을 지켜보며 택이의 본래의 ’기질‘ 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아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택이는 여전히 짜증이 많다. 무언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살짝만
흘겨 보아도, 엄마의 말투가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드러내며 짜증을 내거나 불안해 한다.
택이의 과도한 자기 방어는 마음 속에 깃든 불안함에서 나오는 표현일 뿐이다.
아주 커다란 불안이라눈 빙산의 일부가 외면으로 쏟아나 와 짜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보이는 일부만 바라보려 고치려해도 고쳐지지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택이를 대하며 때로는 아이의 과도한 반응에 나조차도 짜증이 나서, 아이를 몰아세우거나 잘못을 일일히 지적할 때가 많다.
그러나 늘 그렇듯 비난은 결코 아이를
바꾸지 못한다.
택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택이는 자신이 ‘평정심’을 유지하기를
그 누구보다 원한다. 그러하기에 늘 평온함을 깨트리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택이는 자신의 ‘평안’과 ‘안전’에 대한 갈망이 크므로, 엄마에게도 늘 그것을 요구한다.
“엄마, 웃어주세요. 화난 얼굴은 싫어요.”
“엄마, 어디 아파요? 표정이 안좋아요.“
택이는 나의 표정을 누구보다
자세히 살핀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평안함의
이유가 된다.
낯선 자극에 힘들어하며,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
택이.
택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주어야할까?
새로운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엄마,
늘 변함없이 자신을 안아주는 엄마,
빠른 적응을 재촉하기보다는 느긋히 기다려주는
엄마. 그런 엄마를 택이는
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다.
여전히 택이가 내는 짜증에 같이 짜증이 나고,
아이의 신경질적인 말에
일일이 응수하며 지적해주는
나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 하루 하루를 성장한다.
오늘도 나는 실패할 수도 있는 ‘언어의 연습’을 한다.
택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말,
따뜻한 말,
짜증 섞인 말을 그대로 받아치지 않고 그 짜증 그대로 품어준 말.
그래서 택이가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늘 신경질적인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보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려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