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동네에 우상 한분쯤 있잖아요
25년 9월 24일 아침 06시 09분
흐린 아침이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비 예보가 있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지만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올 거 같다. 그동안 너무 더웠는데 비가 올 때마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걸 느낀다. 정말 계절 바뀌는 게 제일 무섭다. 9월 초입까지만 해도 여름이 언제 떠나갈지 몰랐는데, 비 몇 번 오더니 벌써 가을가을 해져 있다. 게임하다 보면 아이템을 쓸 경우가 있는데, 하늘나라 날씨 관장하시는 분이 아이템을 잊고 있다, 아이고 하면서 지금 쓰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 똑바로 합시다. 요즘 자꾸 여름이 길어지고 있는 이유가 선생님이 아이템을 늦게 써서 그런 거 아닌가요? 라며 묻고 싶네. 물론 우리의 잘 못이 큰 거 압니다. 노여워하지 마시구요.
어제는 군산으로 이사 와서 몇 명의 친구들과 자전거에 대해 소개를 했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 사이에 자전거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기억이 떠 오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자꾸 미뤄지고 있는 우리 동네 형들과 동생들을 소개해야겠다.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사람은 TT형.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우리 집 주인댁 뒤에 살았다. 옆집이라는 소리다. 형네 가족은 누나가 2명, 남동생이 1명 이렇게 있었던 걸로 기억하며, TT형과 형의 동생과 난 주로 어울렸다(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이제부터는 TT라 호칭하겠다. TT는 기술이 좋았다. 동네 연못에서 미꾸라지도 잘 잡았고, 뒷산 수원지에서도 여러 가지 물고기와 각종 곤충들도 잘 잡았다. 우린 언제나 TT가 하는 걸 보며, 나도 언제쯤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지? 무슨 학원 다니나 할 정도로, TT의 채집 스킬에 매번 감탄을 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가을이면 밤을 주으러(가끔 따기도 했다) 산에 가면 언제나 제일 씨알 큰 것은 TT가 줍거나 따곤 했다. 정말 우리 동네 최고의 맥가이버이자(기억나지 않는가? 뭐든 잘하던 맥가이버. 아버지는 말하셨지…. 하면서…) 만능 재주꾼이었다.(순돌이 아빠와 버금가는) 이런 TT를 나는 항상 따라다녔고, 나뿐만 아니라 동네 동생 들고 다 같이 TT를 리더로 삼으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TT네 집엔 대문이 없어 언제나 오픈되어 있었고, 이쯤이 대문이다 싶은 곳에서 TT형을 부르거나 그 주변에 어슬렁거리면서, TT를 기다리곤 했다. TT집에는 큰 빨간색 대야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여느 아쿠아리움 보다 화려한 수생 동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미꾸라지를 필두로(주로 연못에서 잡힌다) 민물새우, 은어, 거북이, (붉은거북인 거 같다. 벌써 이때부터 우리 동네 침투해 있었다) 심지어 물뱀까지 있었다. 이렇게 TT에게 잡혀온 애들을 보면서 나도 언제쯤 이런 걸 잡아 보나 하며 부러워했었다. 별다른 도구 없이 TT는 이런 것들을 잘도 잡았다. 메인도구는 소쿠리. 소쿠리는 물고기나 기타 수생 동물을 잡는데 최적의 아이템이었고. 운이 좋을 때면, 누가 버린 모기장을 가지고 가서 그물처럼 수원지 이곳저곳을 저인망 어선 지나가듯 휩쓸고 다녔다. 나도 제법 연차가 늘어나면서 이것저것 잡기는 해 보았지만, TT가 잡았던, 그래서 신기하게 보았던 물뱀은 끝내 잡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난 뱀을 싫어해서 그런 거 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어 휴... 너무 싫어. 주로 수생생물 채집은 물에 들어가도 전혀 춥지 않은 5월~9월 사이에 많이 했던 거 같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산에 밤 따러 다녔고, 그러다 겨울이 오면 산에서 비료포대 눈썰매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 가을이 와서 뒷산에 밤 따러 가서 그 밤으로 소풍도 준비했고, 운동회도 준비했다. 밤나무 숲에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밤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러면 그 소리 나는 곳으로 잽싸게 뛰어가 양 발에 밤을 고정하고 나무로 밤을 까는 작업을 했다. 잘 익은 건 그냥 뭐 손으로도 쉽게 꺼낼 수 있는 행운을 주기도 했다.
바닥에 있거나 바람에 떨어지는 밤의 양이 줄기 시작하면 다음 산에 올라갈 땐 어떻게 할지 궁리를 했고, 그때 주변 막대기를 밤나무줄기에 던진다던 지, 아니면 실내화 주머니를 무겁게 해서 나뭇가지 주변에 던 지 곤 했다. 정확도가 부족하면 밤을 떨어트리기는커녕 엉뚱하게 떨어지는 실내화주머니 주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이러다 겨울이 오면 다른 계절과 달리 더 넓은 지역을 TT를 따라 움직였다. 왜냐고요? 겨울이면 군산에는 눈이 많이 왔다. 그리고 우리 동네 뒤에는 산들이 많았다. 바로 눈썰매를 타기 위해 가파른 산들에서 놀기 좋은 최적지를 고르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리만의 썰매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이때 TT는 역시나 우리들의 리더답게, 사설 눈썰매장의 에르메스, 루이뷔통인 남해화학 비료포대(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거북선 밑에 남해화학이라 브랜드가 적혀있다. 그리고 일반 비닐보다 두껍고 잘 찢어지지 않아 썰매를 타고 다닐 때 쉽게 바지가 젖지 않는 탁월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한 번쯤은 타보고 싶어 했던 명품 중의 명품이다)를 가져왔고, 우리처럼 별거 없는 애들은 두루마리 휴지 비닐(이건 나다), 기타 잘 미끌릴만한 것들을 가지고 와서, 열심히 썰매를 탔다. 나중에 소개할 거지만 잠시 스치는 정도로 JJ가 안나 올 수 없다. 이때 JJ는 중학생이었고, TT가 우리 초등들의 리더라면, JJ는 우리 모두의 리더였다.
역시 우리와 클라스가(학년도 달랐다) 달랐던 JJ는 우리가 앉아서 눈썰매 아니 비닐 썰매를 탈 때, 혼자 우아하게 서서 파이프 스키를 탔다.(파이프 스키는 플라스틱 파이프를 반으로 자른 후 앞부분을 불에 곡선 모양을 만들다. 신발에 걸릴 수 있게, 기술이 부족하면 그냥 반으로 나눈 후 타기도 했다)) 파이프 스키는 우리의 썰매보다 한 차원 더 빨랐고, 더 멋 졌다. 우아하게 신 비탈을 타고 내려가는데 빠르고, 속도도 높아 우리보다 훨씬 먼 곳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된다는 걸 이때도 깨달았다. 형들이라 그런지 클라스가 정말 달라.
TT는 우리 동네 두 갈래 길에 위치에 있어서(TT집 옆으로 메인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7통이 나온다. 메인 길 옆으로 JJ형 집으로 가는 길이 있고) 언제나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내 전공 전문단어를 빌려오자면 허브(HUB) 같은 곳이었다.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중심. TT집 앞 전봇대에서 숨바꼭질을 수도 없이 했고, 다망구(다방구) 및 구슬치기 등 계절마다 시기마다 놀이를 바꿔가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다.
이 공간 옆에 TT가 살고 있었다. 요즘도 가끔 군산에 가면 그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는데 길이 정비되면서 조금은 바뀌었지만, 우리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은 그때 그 모습과 현재의 다른 모습 사이에 오버랩되면서 남아 있는 거 같다. 단 주변에 예전 우리처럼 놀고 있는 애들이 없어, 여기가 예전에 어떤 곳이었는지, 우리의 어떤 추억이 남아 있는지 알려줄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다음에 울 집 애들 이랑 이곳을 지나게 되면 설명을 해줘야겠다. 아빠의 추억이 묻어 있는 추억의 공간이라고.
TT는 정말 인심 좋은 동네 형이었다. TT는 나의 보스이자 내가 꼭 챙기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 같다 7 통인지, 9 통인지 정확지 않다. 형들 중 하나가 우리의 TT를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 우리의 공간에서 놀고 있을 때 그 형이 지나갔다(봐라 우리 동네 HUB 아닌가) TT에게 이야기를 익히 들은 지라, 난 그 형과 시비가 붙었고, 둘이 멱살잡이를 하며 싸웠던 기억이 난다. 누가 이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불타는 정의감? 에 감히 선배 형에게 달라 들어 싸움을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로지 우리 TT를 괴롭히지 말라는 명분을 가지고 한 싸움이었기에, 형에게 대들었다가 아니라, 동생이 TT에게 충정을 바친 뭐 그런 거. 이게 소문이 나서 다른 형들의 귀에 들어갔더라면, 분명 학교에서 혼쭐이 났을 텐데, 다행히 학교에서 큰 이슈는 없었던 거 같다. (별다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렇게 난 TT를 잘 따르는 동생이자 TT를 보호하고 싶은 조금은 형 같은 마음으로 항상 TT와 지냈었다. TT는 나를 비롯해 다른 어느 동생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고, 언제나 우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늘은 뭐 하고 놀지를 고민하는, 우리들의 고독한 리더이자, 유쾌한 리더였다. TT형 잘 살고 계십니까? 가끔 형집 지나가는데 예전처럼 형님 기다리면서 있어 볼까 하다 가도, 혹시나 형님이 나오면 어쩌나 해서, 잠시 추억만 생각하고, 누가 볼 새라 다리를 재촉해서 쓰윽 지나가곤 합니다. 형님이 제게 만들어준 추억들은 아직 까지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도 남겨 평생 잊히지 않게 해 두려고요. 형님과 함께 했던 날들은 내 어린 시절 최고의 시절이었고, 그때 그렇게 놀았기에 어디 가면 어릴 적 기억하며, 물고기도 잡아보고 잠자리도 잡아보곤 합니다. 우리의 TT 보고 싶네요. 술은 한잔 하시는지? 저야 이제 몸이 망가져 술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형님을 뵙게 된다면 술 한잔 마시며 어릴 적 추억에 흠뻑 취해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TT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