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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Sep 25. 2023

헤어롤을 마는 기분으로

반짝이는 하루

저렇게 하루 종일 다닐 거면서 왜 하고 다닐까?

음... 뭔가 저걸 뺄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


지인과 길을 가던 중이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긴 머리 고등학생의 이마 위에 사뿐히 올라 있는 왕 헤어롤을 보고 나눈 대화이다. 그러고 보니 길에서도 대중교통에서도 저 나이 때 여성들의 헤어롤을 종종 보았다. 오늘 아침 둘째 등원 차량을 기다리던 중에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의 머리에도 있었고 조금 전 집에 들어오면서 마주친 꽃무늬 샬라라 원피스의 여자분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대화를 나눌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밖에 답이 없다. 솔직히 나보다 젊은 친구들의 차림새나 사고방식 등을 논할 때 소위 꼰대라 불리는 권위적이고 꽉 막힌 기성세대가 되고 싶지 않아 허용 범위를 넓게 잡고 얘기할 때가 많다.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등교하자마자 울상으로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다.

등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친구는 계단을 내려오다 평소 짝사랑하던 아래층 오빠를 만나 뛰는 가슴이 들킬까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머리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헤어롤 3개를 발견한 건 건물 1층에서 오빠와 헤어진 직후였다. 그 당시에는 머리에 롤을 말고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왜 하필이면 3개나 하고 있었는지. 그 오빠도 당연히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발견한 게 어디냐는 내 말은 친구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친구는 한동안 평소 등교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왔다.


나도 중학교 때 헤어롤을 했다. 복장 규정이 엄격했던 때 지역에서 가장 엄하기로 소문난 중학교에 다녔는데 귀밑 2센티미터가 뿜어내는 촌스러움을 봉긋 솟은 앞머리가 중화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머리를 감은 후 뻗치지 않게 드라이하고 축축 처지는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스프레이를 살짝 뿌렸다. 욕심내면 며칠 안 감은 머리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적은 양이 고루 분사되게 하는 스킬이 중요했다. 나중엔 자를 들고 잔소리하는 선생님들이 성가셔 쇼트커트로 자르는 반항심도 보였지만 그 순간마저도 앞머리는 살아있었다.




롤을 말 앞머리가 없는 지금의 나는 앞머리에 힘을 줬던 오래 전 중학생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면 그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약속된 것이 없어도 마냥 설렜다.


뭔가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신나든 놀랍든 평범한 것 같은 내 삶이 조금이라도 특별해지면 좋겠다.


길에서 만난 학생도 오늘 만난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헤어롤을 말지 않았을까 싶다. 눈이 안 떠진 상태로 양치를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신발에 발을 밀어 넣고 나오더라도 머리 손질을 할 때만큼은 반복되는 일상의 다른 하나를 기대했을 것이다.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기를 쓰고 힘주어 올리듯 가라앉는 마음을 견인해 줄 수 있는 그런 하나 말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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