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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경력단절 그 시작은 미비해도 좋아요

by 세림

결혼 후 한 달 만에 임신을 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 아기가 당황스러웠지만 내 몸상태는 뇌하수체 이상으로 불임이 될지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기에 축복이고 기쁨이었다. 임신을 간절히 원해도 힘든 상황들이 많은 이 시대에서 기적처럼 찾아온 소중한 아이는 내 모든 것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키우겠다는 명목하에 집에 눌러앉아 자발적 전업주부가 되어버렸다. 장장 12년이었다.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워온 시간을 후회한 적은 없다. 오히려 행복했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에 결혼은 생각도 못했던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경력이 단절되는 불안감이 있더라도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었기에. 단 하나! 외벌이로 힘들어하는 남편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홀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야 하는 나를 눈에 보이지 않는 수갑을 찬 죄인처럼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아 휴직이 끝나고 아이 때문에 퇴사를 고민했던 그때 재택근무로 전환되어 1년은 월급을 받아 가계에 보탤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자금난으로 인해 폐업했다. 그나마 내게 숨통이 되어주었던 비상구가 그렇게 사라졌다.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부업들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때 했던 것이 한 때 유행하던 블로그 공구였다. 아이의 실내복으로 시작한 공구는 생각보다 잘 팔렸다. 공구에 빠져있던 어느 날, 컴퓨터를 하던 내게 아이가 다가와 작디작은 손으로 다리를 꼭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 책! 책!!.... 놀아...놀아주떼욤"


한참 걷기를 시작하고 말을 배워갈 때였다. 아차 싶었다. 육아를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를 발견했다. 마진도 얼마 남지 않는 일에 미쳐 있었고,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온라인 속 사람들의 칭찬과 댓글에 현혹되어 본질을 잃었다. 나의 본질은 바로 육아였음에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잔고가 남지 않은 통장과 쌓여가는 재고, 더러운 집안 꼴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정작 내 새끼 볼 시간도 없는데!
집에서 아이와 있으면 뭐 해! 정작 아이를 안아 줄 시간이 없는데...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은 찰나였다. 불가 5개월 동안 겪은 블로그 공구의 세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후 더 많은 시간을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함께 책을 읽고 서점을 가고 자연을 보며. 이렇게 보낸 시간들이 남편에게는 유유자적 마음 편한 여편네로 보였겠지만 아이에겐 자신이 찾으면 언제든 달려와주는 슈퍼맨 엄마로 13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는 어느새 친구와 관계를 넓혀가는 사회 속 꿈 많은 여학생으로 성장했다. 반면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나의 영역은 한없이 작아졌다.


사춘기가 다가오기 전에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 졌다. 아이는 예체능계열의 전공을 원했고 매달 나가야 하는 레슨비와 학원비는 남편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친정어머니도 연세가 많아지니 상대적으로 병원비가 늘어갔고, 마흔에 접어든 남편은 병원 한번 안 가도록 건강했음에도 하루가 다르게 면역이 떨어져 약 먹을 일이 많아졌다. 처해진 모든 상황이 나보고 '빨리 일해! 일하란 말이야! 이젠 네가 집에 있을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다.(실제로 악몽을 계속 꾸게 됨) 훌쩍 커버린 아이의 곁을 지키기보다 가정의 기울어진 자금력을 채우고 나의 노후를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애매한 나이 불혹. 그래도 다시 시작하기에 더 늦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오랜만에 잡코리아 홈페이지를 열었다. 이력서를 찬찬히 훑어봤다. 경력단절 기간이 너무 길다. 인사 총무, 경영관리, 회계 업무... 경력기간 12년... 이조차 부담스럽다. 이대로 이력서를 넣는다면 경력은 길지만 이미 물경력이 되어버려 어디에 채용되더라도 해낼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나를 믿고 채용해 준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에 민폐가 될 게 분명했다. 무기력하게 있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찾은 것이 사회복지사였다. 사이버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졸업증과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취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연락 한통이 없었다. 어쩌다 연락이 오는 곳은 집과 거리가 멀었고 최저 임금에 근무여건조차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일까? 아무래도 경력이 없어서겠지...


일하려고 마음먹으니 하루라도 빨리 회사로 출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는 경력이 없어 채용이 힘들었고, 쌓아온 경력은 단절된 기간이 길어 채용되기 어려웠다. 무엇으로 돈벌이를 해야 할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엄마의 손이 덜 필요할 때 일을 다시 시작하려 했던 단순함'은 미련함이었을까. 마음처럼 취직이 되지 않으니 이런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았고 어디에서도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취직을 못하니 남편도 내심 아줌마가 되어버린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안도와 우울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채용공고를 찾고 또 찾았다. 잡코리아에서 출발한 이력서 제출은 알바몬과 당근 알바까지 진출했다. 경력과 상관없는 사무직 알바부터 사무실 청소, 약국 보조까지 이력서를 넣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거나 경력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채용되지 않았다. 특히 식당 청소나 사무실 청소도 생각했지만 집청소도 제대로 못하는 내겐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눈에 꽂힌 그곳이 바로 알바몬 구인 광고에 올라온 통계 관련 파견직이었다. 경력과 전혀 상관없었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사무직이었고 집과 걸어서 20분 거리에 나이, 학력, 경력 무관이었다. 경력을 인정받으면 3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겠지만 내 경력은 이제 무용지물. 그렇다면 차라리 신입으로 입사해서 부담 없는 월급으로 출퇴근 정확하고, 연차가 있어 아이의 학교 행사가 있을 땐 당당하게 쉴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 상황에 딱 맞는 회사라 생각했다. 고민은 짧게 결정은 빠르게! 이력서를 제출했다. 감사하게도 면접 제의가 왔고 다음 날 면접을 보기로 했다.


파견직이면 어떠하리.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것을


면접을 보러 가는 길.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는지. 살이 쪄서 맞지 않는 정장을 억지로 꾸겨 입고, 오랫동안 신발장에 넣어놨던 구두를 꺼내 신었다. 사뭇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한 23년 11월의 아침이었다.(감격적이라 생생히 기억함) 회사 입구에 도착한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약직도 아닌 파견직이라 '채용되면 감사하고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을 온 회사의 건물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면접 오기 전에 미리 업체에 대해 검색을 했고 상장 회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큰 회사라니. 경력단절에 자발적 은둔형 집순이로 살아왔던 내게 넘사벽 회사처럼 느껴졌다. 또 불합격 예상이었다. 가볍게 생각한 면접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폭발했다. 그래도 어쩌랴. 오늘만 버티자!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면접 질문을 이야기해 보자면.


회사 근무를 오랫동안 안 했는데 이유가 뭔가요?
경력이 꽤나 되시는데 신입으로 입사해도 괜찮으신가요?
정규직이 아니라 파견직으로 채용되시는 건가 괜찮으신가요?
MBTI는 어떻게 되세요? 소극적이면 힘드실 텐데요...
마지막으로 회사 채용 연령이 평균 20~30대가 많은데 그 사람들을 상사로 함께 일 하는 거 괜찮으세요?


대충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다. 당연한 걱정이고 궁금증이라 생각했다. 일을 오래 하지 않은 이유도! 경력이 많은데 신입으로 입사하려는 이유도! 정규직이 아닌 파견직으로 입사하려는 이유도 얼마나 궁금했을까. 질문들에 답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창피할 것도 없었기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모든 대답을 마무리했다. 이런 내 모습이 회사 측에서는 진심으로 느껴졌는지 감사하게도 면접 당일 늦은 오후 함께 일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난 그렇게 43살! 신입으로 파견직을 시작했다.



파견직이면 어떻고 어느 사무실 미화원이면 어떠하리. 하물며 구내식당 보조 조리사도 일만 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 된다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그분들의 퇴근 후는 그 누구보다 화려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실제로 사무실 미화를 하시는 지인은 '자가 집'있지만 살아있다는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일을 하기도 하며, 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하는 어떤 지인은 아이가 학교 간 사이 자투리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 일을 하기도 한다. 하물며 파견직, 계약직, 정규직이면 어떠한가. 불법적인 일이 아닌 합법적인 일을 통해 당당하게 월급 받는 처지는 어떤 직장인이든 모두가 다 같은 것을.


경력단절 전업주부를 끝내고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 회사생활을 하지 못한 내게 (1) 다시 9to6를 적응하게 하는 감사함이었고, (2) 집에서 아이와 남편만 기다리던 내게 동료와 함께 하는 소속감과 즐거움을 선물했으며, (3) 누구 엄마 누구 아내가 아닌 내 이름 석자를 다시 불려지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파견직 신입사원. 이것이 바로 경력단절을 마무리 짓고 육아만 하던 전업주부가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의 시작이 되었다. 당연히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이제 시작이다. 맘처럼 되지 않던 육아를 이겨낸 우리다. 습관도 생활패턴도 너무 다른 남편을 매일 만나며 이미 지독한 멘탈 훈련을 하지 않았는가. 어느 곳에서 일하든 강철 멘탈이 우리들을 더욱 성장시켜 준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결코 우리는 보잘것없는 주부, 엄마, 아내가 아닌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눈을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면 물경력에 경력단절이어도 채용될 곳은 반드시 나타난다. 남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는 용기로 자신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상황을 바꾸는 마인드셋>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 눈에 보이는 이것부터 시작하자!

내가 왜 이런 곳에 가야 해? - 이곳에서 인정받고 말 거야

내가 뭐가 부족한데? - 내가 더 무엇을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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