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만나야 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별개일 수 없다. 만남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헤어짐의 의미는 달라진다.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울 수 있다. 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잊히지 않는 만남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헤어짐을 기다린 것 마냥 떠나게 되는 만남도 있다. 기억도 하기 싫어서 잊히기를 바라는 만남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만남의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가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시간의 길이만 다를 뿐 언젠가는 헤어질 만남이기에, 그럼에도, 영원히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만남이기 위해 만남의 시간을 어떻게 지내는가 중요한 것이다.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만남의 시간에 충실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늘 지금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일 테다. 해서,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만남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헤어짐이 못내 아쉽다면 만남의 시간에 충실했다는 것이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헤어짐의 시간이 아쉽지 않다면, 홀가분하다면 그 역시 충분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두 번째 만남을 이어가면 될 것이다. 첫 번째의 만남에 이은 두 번째의 만남이 아니라 두 번째 만나는 첫 번째 만남으로서 말이다. 그때의 우리와 다시 만날 우리는 다를 것이니 말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만남의 기쁨도 즐거움도 고통도 두 배다. 헤어짐의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절반이다. 만남도 헤어짐도 함께한다는 점에서,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인간의 행위임에 틀림없다.
기다림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기다림도 함께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비록 못 만나더라도 만남을 전제로 하기에 만날 대상에게로 간다는 의미에서 그 대상과 함께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설렘의 시간, 견딤의 시간이기도 하다.
한 해와 헤어지는 시간, 헤어짐은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서, 헤어짐은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기다린다. 다시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2023.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