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즘 communism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 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생산 수단을 사회 전체의 공유로 하여 모든 사람이 계급으로부터 해방되고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이론 및 사상”이다.
코뮤니즘이라는 낱말이 담고 있는 상태는 어디에도 없는 곳, ‘유토피아 Utopia’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현실에 그와 같은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를 바라는 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그려지곤 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상태가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코뮤니즘을 논할 때 흔히 언급되는 사람이 맑스와 엥겔스다. 하지만, 그들이 강조했던 것은 ‘이상 사회’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폭로’다. 그들이 쓴 [자본론]이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알고 있다.
맑스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사회는 ‘높은 단계’의 이상적인 사회라고 봤다. 그는 ‘현재의 상태를 부단히 지양하는 운동’을 강조했다. 그와 같은 이상적인 사회로 가고 싶다면 더더욱 ‘지금, 여기’가 어떠한 상태인지 ‘관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그에 기반한 운동을 통해서 더 나은 상태의 사회로 변화해간다는 것이었다.
엥겔스 역시 유토피아주의자들을 비판하며 과학적 사회주의를 강조한다. 엥겔스가 생시몽, 푸리에, 오언과 같은 천재적인 사람 몇몇이 세우려고 했던 유토피아를 비판하는 이유는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엥겔스도 맑스처럼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주의적인 상태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다.
체 게바라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했을 때, ‘불가능한 꿈’은 코뮤니즘과 같은 이상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그러기 위해서 리얼리스트가 되자고 했듯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운동을 통해 변화시켜가는 것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아도르노는 “차이 나는 것들을 서로 존중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유토피아이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모순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그가 강조했던 것도 ‘사태 자체’에 대한 촘촘한 ’미시론적 사유‘였다.
코뮤니즘과 같은 이상 사회가 나쁘다거나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사회로 가지 못하는 것이, 애초에 지금보다 나은 이상 사회를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것이 더 나쁘고 더 문제적으로 보인다. 지금과는 다른 지금 보다 나은 이상 사회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지금, 여기‘에서 기득 권력을 누리고 있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 이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 사회를 바라는 이들에게 논란이 되는 것은 어떻게 그런 사회로 가느냐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사태 자체에 대한 충실함일 것이다.
2025.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