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직을 고민할 때 경력자 커리어에서 체크할 값

4화 - 군고구마

by 해담
외부 평가 대신 나다움을 선택하기까지,
고민 많은 9년 차 마케터의 솔직한 회고.

여전히 일은 어렵고 매 순간 헷갈립니다.
정답은 없으니 그저 기록합니다.

고구마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자라,
나다움과 온기로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답게 살고 싶은 당신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고구마 사세요"




이직이 고민될 때 보통 채용 공고부터 연다. 회사 이름, 연봉, 복지, 직함이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계산기가 돌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 커리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숫자와 단어들.


마케터로서 하루는 대부분 대시보드를 켜는 것부터 시작된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어디에서 이탈하는지, 더 실험할 여지가 남아 있는지. 이직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어야 하나, 버텨야 하나, 옮긴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같은 질문이 떠오를 때, 나는 내 커리어를 향한 세 가지 값을 먼저 살핀다.


결과 값, 퍼널 값, 성장 값이다.



우선 결과 값은 내가 받고 있는 대가에 가깝다.

크게는 1. 연봉, 인센티브, 복지 같은 돈과 조건 2. 현재 직급, 담당 범위, 의사결정 권한 같은 포지션 3. 내가 다루는 서비스의 도메인과 산업 경쟁력 4. 이 자리에 있으면서 쌓이고 있는 스킬과 경험 레벨이다.


난 커리어 대부분을 현재 결과값보다 앞으로 가져갈 결과값, 즉 지금 눈앞의 대우와 안정성보다 앞으로 쌓고 싶은 경험을 기준으로 회사를 옮겼다. 주로 지금 이 회사에서 나는 어떤 가시적인 결과를 받고 있는가, 이 결과는 1~2년 뒤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이직을 한다면 무엇(연봉? 도메인? 역할? 또는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 정확히 더 나아지는가 에 대한 질문들이다.



두 번째로 보는 값은 퍼널 값이다.

우리는 유저 데이터를 볼 때 늘 노출, 클릭, 랜딩, 가입, 구매, 재방문 같은 퍼널을 떠올린다. 같은 전환수라도 어디에서 떨어지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액션이 필요하다. 회사도 사실 매우 다양한 퍼널 이슈가 숨어 있다. 회사의 비전과 나의 방향성이 어긋난 것인지, 산업 자체의 성장성이 애매한지, 조직 문화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인지, 혹은 역할이 나의 강점과 맞지 않는 구조인 건지, 아니면 지금 내 체력과 멘탈이 바닥이라 무엇이든 회색으로 보이는 시기인지.


이직이 고민될 때면 스스로의 퍼널을 그려본다. 출근해서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협업하고, 언제 가장 지치고, 어떤 순간에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살아나는지에 대해 나열하고 분석한다.


첫 회사에서는 육체노동의 비중이 문제였다.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는 퍼널보다 몸을 써야 하는 퍼널이 훨씬 컸다. 콘텐츠 플랫폼 회사에서는 브랜드와 캠페인 자체는 즐거웠지만 비즈니스 모델의 퍼널이 막혀 있었다. 장기적인 퍼널보다는 단기적인 형태로 비즈니스 구조가 변경되었고, 몇 번의 조직 개편 끝에 마케팅팀이 사라졌다. 글로벌 대행사에서는 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갈 수 있는 성장 퍼널이 제한적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이직을 고민할 때, 개인의 커리어 퍼널에서 병목 구간을 먼저 짚어 보게 됐다. 단순히 회사가 싫어서인 건지, 이 도메인 자체와 맞지 않는 건지, 역할 구조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지금은 쉬어야 하는 타이밍인지.


이 지점을 헷갈린 채 움직이면, 구조는 비슷하고 이름만 다른 회사를 다시 만나기 쉽다는 사실을 몇 번의 이직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값은 성장 값이다.

이 숫자는 회사가 요구하는 KPI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다음 레벨과 관련된 값이다. 이곳에서 지난 1년 내 새롭게 시도해 본 것이 무엇인지, 같은 업무 안에서라도 다르게 설계해 본 지점이 있는지, 직전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내가 직접 개선해 낸 결과가 있는지, 이 자리에서 앞으로 하나 둘 정도의 실험 여지가 남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선명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 한 번을 해보고 나서 움직이는 편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할 수 있는 시도를 해 본 감각이 남으면, 그 경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내 이야기가 되어준다. 반대로 더 해보고 싶은 것도, 구조적으로 시도할 여지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때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움직임을 한다. 물론 자의적으로 더 배우려 하지 않거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켜만 보고 있는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직은 어느 한순간의 선택을 넘어 커리어 퍼널의 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본인만의 대시보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서의 결과 값, 막혀 있는 퍼널 값,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성장 값. 이 세 줄을 솔직하게 적은 뒤에 회사 이름과 연봉, 복지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을 다시 바라보자.


괜찮아 보이는 커리어와 나다운 커리어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 비율을 조정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시기에는 현실의 무게 때문에 8:2로 괜찮아 보이는 쪽에 치우칠 수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5:5나 4:6 정도로 나다움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비율이 어떻게 흔들리든, 일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조금씩 더 단단하게 지켜 나가려는 마음이다.


지금 이직이 고민된다면 어쩌면 나만의 커리어 대시보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세줄이 또렷해질수록
스스로도 선명해질 테니까.


오늘의 데이터.
지금 당신의 커리어 대시보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값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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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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