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인도 여행의 맛을 알았다
아루나찰라와 진지 포트(Ginge fort)
여행에서 싸우지 않기 위해 오버하고 텐션 높이는 건 남을 위한 배려다. 어느 순간 지칠 때 서로 예민해져서 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른들 사이에서 재롱 피우며 여행 텐션을 높이고 있었다. 어렸기에 나의 재롱은 여행을 잘 조율시켰다. 하루만 탐험파와 휴식파로 나뉘어서 여행했다.
날 잡고 ginge fort와 아루나찰라 산을 가기로 계획했다. 아침 일찍 폰디체리 bus station은 인도인들로 북적였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인 6명만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오히려 북적거리는 걸 즐겼고 당황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냉철함 덕분에 티루반나말라이행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인도 여행에서 버스와 기차 타는 게 너무 싫었다. 마치 신기한 원숭이 보듯이 인도인들은 나를 쳐다봤었고 내가 예약한 자리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이 앉았었다. 그래서 우버를 불러 릭샤 택시 타는 것을 항상 선호했었다. 티루반나말라이행 버스는 자리가 없어서 각자 따로 앉아야 했다. 잔뜩 예민한 채로 표정을 구기며 3시간을 버텼다. 수도 없이 인도 여행을 많이 해도 인도 버스 안에서 일어났던 뉴스를 생각하면 나조차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창 밖으로 거대한 요새가 보였다.
"이야 저게 진지포트야? 진지하게 멋있네"
L 아저씨가 감탄하며 말했다.
L아저씨는 창가에 앉아서 끊임없이 감탄하고 신기해했다. 나와 장난도 치고 옆에 있는 인도인에게 끊임없이 인도 문화에 대해 물어봤다. 아침부터 너무 지쳐서 버즈를 귀에 꽂아 오프라인 저장된 노래를 틀었다. 끊임없이 덜컹덜컹 거리는 버스는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구글 지도 4.0 평점 식당에서 밥 먹고 아루나찰라로 향했다. 힌두교는 시바신이 정상에서 내려왔다고 믿으며 산을 사바신의 화신으로 믿는 아루나찰라는 모든 수행자들이 모이는 성지이다. 아루나찰레슈와 르 사원을 가로질러 아루나찰라로 갈 수 있다. 보통 사원 입구에서 신발을 맡기는데 우리는 산으로 바로 가야 했기에 신발을 맡기지 않고 걸어갔다. 경비원들이 우리를 불렀고 인도인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산을 넘어 반대편을 가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에겐 산이 집 앞마당 같았다.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이후, 어떤 산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아루나찰라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 그냥 등산이 아니라, 신성한 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아루나찰라는 가볍게 밥 먹고 소화시키기 좋았다. 걷다 보면 석공 장인들이 “링감, 옴, 부처님” 등 다양한 석상을 판다. 어른들은 거기에서 링감을 사며 딸 아들들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선물 주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산에서 사는 석상들의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Ginge fort? ginge fort?"
내려와서 진지 포트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유창한 영어도 아니고 그냥 진지포트 두세 번만 말했더니 진지포트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누구보다 외국인들 버스 찾아주기 위해 인도인들은 적극적이었고 생각보다 버스여행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I love you lets go together"
L 아저씨는 끊임없이 옆에 있는 인도인과 대화했다. 짧은 영어로 어쩜 그렇게 소통을 잘하는지 대단했다. 옆에 머리에 빈디가 있고 발목부터 팔목까지 주렁주렁 치장되어 있는 아줌마는 L 아저씨랑 끊임없이 웃었다. 장난식으로 결혼(?) 하자, 두 번째 남편은 나다 이러면서 가는데 아저씨의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웠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진지포트는 남인도 한 왕국의 요새였다. 세 개의 거대한 언덕 위에 요새들이 나뉘어 있었다. L 아저씨와 버스로 지나가면서 봤는데 도무지 사람이 옮겼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크기의 돌이 엄청나게 쌓아져 있었다. 직접 가보니깐 더 어마어마하게 커 보였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요새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3시 이후부터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새 아래 정원들만 한번 둘러보고 나왔다.
4시가 넘어서자 차가 점점 많아졌다. 정류장에서 폰디체리행 버스를 기다렸는데 도무지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릭샤나 택시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는데 기다릴 거냐고 물어봤고 L 아저씨는 버스 여행만이 주는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면서 현지사람들이랑 동화되고, 낯선 곳에서 끊임없이 기다리고 생각하면서 이 긴장감이 여행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너무 무섭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 상황을 즐겨봐”
L 아저씨의 조언을 통해 버스 여행만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L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여행은 긴장과 낯섦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릭샤를 포기했다. 대신 인도와 더 가까워지기로 했다.